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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오나PYONA Nov 04. 2022

음력 생일

나.. 진짜 성장했나? 

부모님은 항상 내 생일을 음력에 맞추어 챙겨주셨다.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매년 새해 달력을 들여다볼 때마다 작게 쓰인 내 생일이 올해는 언제인지 찾아놓는 습관이 있었다.


내 또래만 해도 음력 생일을 챙기는 친구들은 드물었다. "난 음력 생일 해!"라는 말 자체를 이해 못 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달력 작은 글씨로 0월 0일인 날짜가 내 진짜 생일이야!"라고 딴에 친절한 설명을 덧붙여도

뜬금없이 양력 0월 0일을 챙겼던 친구, 작년 날짜를 올해에 축하한다며 어긋난 타이밍에 연락을 주던 친구들.


유난히 생일을 특별한 날처럼 여겼던 어린 시절의 나는 친구들의 그런 행동에 속상할 때가 많았다. 그럼에도 축하를 받는 하루여서 괜히 행복했고, 선물을 받는 것도 기뻤고, 가족과 친한 친구들과 함께 맛있는 것을 먹는 생각에 설레 그저 항상 기다렸던 날이었다.


어김없이 11월이 다가오면 이 기대감은 주책맞은 습관처럼, 3n년 넘어서도 아주 조금 나를 상기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올해는 뭔가 달랐다. 늘 그랬듯, 어제와 다르지 않았던 오늘처럼, 나는 평온한 보통날을 보냈다.


올해가 유독 더 생경하다 느껴지는 이유는 '낯선 가을 풍경'인 이유도 있다. 음력 생일을 챙기게 되면 어느 해에는 달이 바뀌게 될 때가 있다. 정말 공교롭게 내 생일엔 항상 눈이 펑펑 내렸었는데, 그래서 늘 '겨울'이 부쩍 체감되었던 날이었는데, 눈은 커녕 오늘은 단풍이 울긋불긋 절정이다.


올해는 내가 좋아하는 계절을 오래 누릴 수 있어서 이 또한 행운으로 느낀다. 특히 내가 매년 기다리는 이 날짜에 어느 해에는 흰 눈을 볼 수 있고, 어느 해에는 단풍을 볼 수 있어서 어쨌든 그 하루를 좀 더 풍부하게 느낄 수 있으니 그게 참 행복하다고.


이 소회를 엄마와 나누면서

이제 나이를 먹었나보다 하고 웃어넘기기도 했지만

유난히 조용하고 소박하게 지나는 오늘 하루가 이전과 다른 기분인 것도 확실해서 신기하다.


이 고요함이 더 행복하고 특별하게 다가오는 이유엔

한참 시끌벅적한 축하를 받던 지난 날 속에서도

무엇이 진심인지를 감히 재단하는 마음으로 무의미한 검열에 

스스로 외롭기를 자처했던 어떤 텅 빈 하루가 기억나서인지도 모르겠다.


진심으로 나를 위하는 마음으로 축하해주는 가족과 함께 할 수 있음에

따뜻한 미역국을 함께 나눠먹을 수 있는 것 이 사실 자체에

큰 의미와 감사함을 느낄 수 있어서, 

그리고 이제는 보다 따뜻해진 마음으로

내 삶과 일상, 그리고 존재 자체를 오롯이 사랑할 수 있는 여유를 

조금 더 실감할 수 있게 되어서 감사하다.


이 또한 나이 듦 때문이라면 그 또한 감사하다!



+

생일날은 받는게 당연한 줄만 알았던 어린 나.


"엄마. 나 낳아주고 여태 건강하게 키워주셔서 감사해요."

작은 꽃다발과 직접 인사를 엄마께 건넸던 건,

그리고 그 인사를 받는 엄마의 환한 웃음을 마주한 건,

내 평생, 참 잘 한일.


더없이 행복할 수 있는 마음을 이제는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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