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에게 진짜 필요한 것

학원 다 망해라!!!

by 파파레인저

유명 학군지라고 불리는 목동에서 일했을 때의 일이다. 근무지가 있던 건물은 100개가 넘는 학원으로 채워진 곳이었다. 일정 시간이 되면 계단에 아이들이 오르락내리락하며 학원을 이동한다. 아이들은 건물 안에서 오후 일정을 보내다 노란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간다. 당시 만난 사립초 2학년 친구는 학습적인 부분에서 꽤 뛰어난 아이였다. 물어보면 모르는 게 없었고, 잡학다식해서 다양한 정보들도 곧잘 말했다. 부족함 없어 보이는 그 친구가 학원에 오게 된 건 '번아웃' 때문이었다. 번아웃은 심신이 지친 상태를 뜻한다. 이는 어른들에게만 해당되는 줄 알았는데, 수많은 아이들이 번아웃이 온 줄도 모르고 생활하고 있다. 앞서 말한 친구도 시들어가는 꽃처럼 항상 멍하니 있었다. 학부모와 상담을 하며 '후회된다'는 말을 여러 번 하셨다. 학교와 학원에 치여 사는 친구들이 참으로 많다. 최근에는 '4세 고시'라는 말이 나오며,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에게까지 사교육이 스며들었다. 앞서 말한 학생도 이른 나이에 사교육을 시작했다. 아이는 가르치는 족족 잘 흡수했고, 돈이 아깝지 않았다고 했다. 어느새 학원 한 곳이 두 곳이 되고, 두 곳이 세 곳이 되며 학원 스케줄표가 생겼다. 나와 만났을 때는 눈에 총기라곤 찾을 수 없는 아이가 되어 있었다.


학원에 지친 아이를 학원 공간에 앉혀 두는 게 미안했다. 아이를 위한다며 아이를 망가뜨리고 있었다. 어떤 방도를 찾아야 했다. 그래서 학부모께 양해를 구하고 그냥 놀았다. 비록 작은 공간이지만, 보드게임도 하고, 과자도 먹고, 공원에 가서 산책도 했다. 한두 달 수업 아닌 놀이를 했을 무렵, 아이는 말했다. "어차피 해야 하잖아요. 그러니까 하는 거예요." 9살 입에서 나올 법한 말은 아니었다. 아이 스스로도 번아웃에서 빠져나오기 위한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에리히 프롬은 '아이들이 병들었다면 그것은 아이들이 마음껏 놀지 못한 것에 대한 복수다'라고 했다. 학원을 8년째 하고 있지만, 학원이 모두 망했으면 좋겠다.


딸아이가 5살이 되자 놀이터에서 엄마들과의 대화 주제가 달라졌다. 어느샌가 '학습'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4살 때쯤 어린이집에서 선생님이 아이가 이름을 쓰는 장면을 사진으로 보내주신 적이 있다. 이름을 쓴다기보다는 선 긋기 정도 수준이었다. 아내는 신기한 마음에 카톡 프로필로 해두었다.

시간이 흘러 놀이터에서 "벌써 이름을 쓸 줄 알아요?" "한글 시작하셨어요?"라고 묻는 분들이 많았다. 지금은 대놓고 한글 학습지와 창의 미술 수업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여러 교육 프로그램을 보면 '창의'라는 말이 참 많이도 붙어 있다. (앗, 우리 교재에도 있었네) 아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창의적이다. 휴지심으로 망원경을 만들고, 놀이 매트로 기차를 만들고, 텐트를 만든다. 어른들이 상상치도 못한 일들을 아이는 한다. 그런데 우리는 그 창의성을 '학습'이라는 이름으로 틀에 가두려 한다. 숲을 뒤흔드는 바람에 맞서 뿌리를 더욱 굳건히 해야 한다. 부모가 흔들리면, 아이도 흔들리기 때문이다.


90년대 집 앞 놀이터를 상상해 본다. 학교가 끝나면 운동장에서 놀았다. 운동장에서 집으로 가다가 친구를 만나면 또 놀았다. 그러다 놀이터에서 또 놀다 해가 지면 집에 들어갔다. 세상이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놀고 싶은 마음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다름없다. 아이들은 언제나 놀고 싶어 한다. 학원에서 수업하는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이 있다. 전교 1등이다. 학원 원장이지만, 딸을 둔 아빠로서 궁금했다. "공부를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어?" 학원 원장이 학생에게 물을 질문은 아니지만, 나도 1등은 커녕 2등도 한 적이 없으니 물었다. 학생은 덤덤하게 말했다. "무조건 많이 놀아야 해요. 진짜 공부해야 할 시기에 대부분 이미 지쳐있거든요."

뒤이어 '잘' 놀아야 한다는 말도 해주었다. 부모들이 원하는 '공부 잘하는 아이'들을 옆에서 지켜본 결과, 대부분 잘 놀면서 공부하는 학생들이었다. 이 점에 주목해야 한다. 학원 학생들에게, 학부모님들에게 종종 말한다. "학원이 다 망했으면 좋겠어요." 이런 말을 할 때면 원장인 나의 밥벌이를 되려 걱정해 주신다. 학생들도 "그럼 선생님 돈 어떻게 벌어요?"라고 할 정도니까. 내가 알아서 해(ㅋ).


세월이 많이 변했음에도 좋은 대학, 좋은 직장을 위한 치열한 경쟁이 끝나지 않는다. 하지만 세상에는 수많은 방향이 있다. 남들 다 하는 게 정답이 아니라는 것을 부모가 알아채야 한다. 우리 아이만의 속도가 있고, 우리 아이만의 시간이 있다. 적절한 교육 시기란 정해진 바 없다. 한글을 배울 시기란 없는 거다. 우리 아이를 위한 기준을 바로 세우고, 흔들림 없이 양육해야 한다. 뿌리 깊은 나무처럼 사계절 내내 푸르른 아이를 모두가 키워내길 소망한다. 딸아이 태명처럼 눈이 '초롱초롱' 항상 빛나는 아이였으면 좋겠다. 시간이 많이 흘러 목동에서 만난 그 학생은 중학생이 되었을 것이다. 중학생만의 파이팅이 넘쳐나길, 엄마에게 또박또박 한 마디도 지지 않는 아이가 되어있기를. 그리고 지금 이 글을 읽는 모든 아빠들에게. 아이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강하고, 훨씬 지혜롭다.


KakaoTalk_20250613_142201766.jpg 가나아트파크 깨꾸미 전시회 앞에서
KakaoTalk_20250613_142220608.jpg 초롱초롱한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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