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게 가장 좋은 환경이란

비밀 없는 아이로 키우기 위하여

by 파파레인저

어릴 적 지독한 마마보이였다. 엄마가 보이지 않는 날엔 지독하게도 찾았다. 초등학교 3학년 때인가? 집 근처 고모네에 누나와 맡겨졌다. 아빠, 엄마는 한창 볼링을 치던 때였다. 낮 동안 잘 먹고, 잘 놀았다. 환하던 밖이 캄캄해지자 집에 가고 싶었다. "엄마 언제 와요?"라고 고모에게 물으니 정확한 답을 주지 않았다. 모두가 잠잘 준비를 하고, 방에 이불을 깔았다. 잠잘 생각까지 없었던 나는 불안했다. 지금처럼 스마트폰이 있었더라면 연신 카톡을 했을 거다. 하지만 휴대전화라고 불리는 것은 없었던 터라 마음대로 전화할 수도 없었다.

잠자리에 누워 모두가 잠이 들었다. 나만 빼고. 집에 가고 싶었다. 나는 눈물이 터졌고, 고모를 깨워 집에 가고 싶다고 했다. 결국 고모는 새벽 1시쯤 전화를 걸었고, 엄마가 데리러 왔다. 이후로도 시도 때도 없이 엄마에게 치댔다. 무릎에 눕기도 하고, 업히기도 했다. 눈앞에서 엄마가 사라지는 게 싫었다. 분리불안 증세였다.

부모님은 지독하게 부부싸움을 하셨다. 작은 집에서 큰소리가 잦아들 날이 없었다. 이때 장난 반, 진담 반으로 엄마는 '엄마 도망간다'라는 말을 했었다. 어린 마음에 이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 갑자기 엄마가 사라지는 상상을 여러 번 했다. 엄마가 늦게 들어오는 날이면 잠에 들지 못하는 이유가 되었다. 아이에게 부모는 세상 전부인데, 그 세상이 흔들리고 있었다.


아이를 키우면서 좋은 환경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한다. 유해시설이 없는 곳, 차가 많이 다니지 않는 곳, 학교와 학원 교육이 가능한 곳, 대중교통이 잘 갖춰져 있는 곳, 공원과 놀이터, 놀 거리가 많은 곳 등 아이에게 필요한 것들을 떠올려 본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화목한 가정'을 만들어 주는 일이다. 클레이 키건의 소설 '맡겨진 소녀'에서 맡겨진 소녀에게 아주머니가 말했다. "비밀이 있는 곳에 부끄러운 일이 있는 거야. 우린 부끄러운 일 같은 거 없어도 돼." 어릴 적 부모님의 부부싸움은 나에게 감춰진 수많은 비밀 중 하나였다. 집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아무도 몰라야 했다. 이런 마음이 어린 나를 불안하게 했다. 집이 안전한 곳이 아니라 조심해야 하는 곳이 되어버렸다. 불안하면 불안할수록 엄마를 찾았고, 엄마를 꼭 안았다.


결혼을 하고, 아이가 태어났을 때 다짐한 게 있었다. 바로, 아이 앞에서 다투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 일이다. '다투지 않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은 이유는 지키지 못할 일이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사람이 만나 가정을 이루고, 생활 습관을 맞춰 가는 일은 생각보다 복잡하다. 아침에 일어나서 자기 전까지 각자가 가진 생활 방식으로 살아간다. 아이가 없을 때는 충분히 대화하고, 다툴 수 있는 시간이 있었다. 하지만 아이가 태어나면 온전히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다. 게다가 육아로 몸과 마음이 지쳐 있는 상태에서 다툴 수 있는 요소가 더 많아진다. 특히 육아의 균형이 맞지 않는 부부들은 더욱 그렇다.


우리 부부가 다투는 날은 아침 식사부터 말이 없다. 최대한 아이에게 다투는 걸 티 내지 않으려고 애쓴다. 최근에는 아이가 어린이집에 등원하면서 대화할 시간이 생겼다. 온전히 붙을 수 있는 시간이 생긴 거다. 하지만 아이가 어리면 어릴수록 함께 하는 시간이 많기에 제대로 싸울 시간도 없다. 결국 이는 앙금으로 남아 차곡차곡 쌓인다. 어느새 빵! 터져 더 큰 싸움을 일으킨다. 마음의 앙금은 쌓아두는 게 아니라 빨리빨리 풀어내는 게 제일임을 깨닫는다. 딸이 5살이 되고부터 부부싸움에 대한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비밀처럼 숨길 게 아니라 '잘 싸우고, 잘 화해하자'는 쪽으로 마음을 먹었다.아내와 다툼이 있고 나서 싸한 분위기 속에서 아침을 먹었다. 그리고 아이와 함께 커피를 사러 단둘이 나가면서 아이에게 말했다.


"아빠, 엄마가 다퉈서 미안해."

아이가 말했다.

"괜찮아, 아빠. 엄마한테 미안하다고 해."


아이의 말을 옮기며 아내에게 먼저 사과를 했다. 부모도 부모라는 이름에 적응하듯, 아이 또한 마음의 크기가 점점 커짐을 느꼈다. 때로는 아이가 어른보다 더 어른스럽다.


좋은 환경은 화목한 가정에서 온다는 건 불변의 법칙이다. 아무리 좋은 동네, 좋은 집, 좋은 환경이라도 부모가 화목하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 하지만 요즘은 모든 관심이 외부에 쏠려있다. 그러니 결혼도, 아이 갖기도 쉽지 않다. 부부가 되려면 갖춰야 할 것, 부모가 되었을 때 갖춰야 할 것들을 물건으로만 생각하지 않으면 좋겠다. 집으로만 생각하지 않으면 좋겠다. 당연히 부모로서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고 싶은 마음은 충분히 이해한다. 나도 그러니까. 하지만 좋은 환경보다 중요한 건 부모가 화목한 가정을 만들기 위해 애쓰는 일이라 생각한다. 내부 결속이야말로 아이가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가장 큰 힘이자 무기가 되기 때문이다. 아이는 부모가 사랑하는 모습을 보며 사랑을 배운다. 부모가 화해하는 모습을 보며 관계를 배운다. 비밀이 없는 아이로 키우는 일. 그게 내가 부모가 되고 결심한 일이다. 완벽한 부모는 없지만, 진짜 부모는 있다.


KakaoTalk_20250613_143939363.jpg 양양에서 가족 사진
KakaoTalk_20250613_144010219.jpg 신나? 나도 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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