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세, 퇴사하고 대만 한 바퀴
타이난에서의 마지막 아침.
타이난에서 머무는 시간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가오슝행 기차가 11시 30분에 출발하기 때문에 그 안에 최대한 많은 것을 보기로 했다.
아침 일찍 타이난 숙소를 체크아웃하고, 프런트에 짐가방을 보관하기로 했다.
이번에 이용했던 타이난 숙소(LIHO호텔)는 비록 시설은 낡았지만, 위치가 타이난 도심 한가운데에 있어서, 교통이 무척 좋았다.
나는 호텔 밖을 나와 서둘러 안핑행 버스를 탔다.
타이난에 왔던 첫날, 아쉽게 보지 못했던 안평고보를 다시 방문하기로 했다.
타이난에는 네덜란드와 관련된 역사 건축물들이 많이 있다. 안평고보 역시 마찬가지로 네덜란드와 깊은 연관이 있는 장소이다.
안평고보(질란디아 요새)는 1624년부터 약 10년에 걸쳐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가 세운 요새로,
현재는 타이난의 대표적인 관광지이자, 랜드마크라고 할 수 있다.
이제는 흔적밖에 남지 않은 붉은색 벽돌성벽을 바라보며 당시 안평고보의 규모를 상상해 보았다.
안평고보의 건축물은 당시 이곳을 지배했던 네덜란드와 정성공의 영향으로 인해 네덜란드의 건축 양식과 중국풍의 건축양식이 조화롭게 뒤섞여있었다.
타이난과 타이난 바닷가를 지키던 이 안평고보를 지은 네덜란드는 안평고보를 기점으로 타이난 일대뿐만 아니라 대만 서부 지역을 무려 38년간 지배했다. 하지만 1661년, 명나라의 장군인 정성공이 안평고보를 공격하였고, 약 9개월 간의 전투 끝에 안평고보와 대만 서부 지역은 다시 중국(명나라)에게 돌아가게 되었다.
성벽 한쪽 구석에 놓인 낡은 대포 한 대가 저 멀리 바다를 향해 있었다.
이것이 네덜란드의 대포인지, 정성공의 대포인지는 모르겠지만, 이곳이 타이난의 입구이자 중요한 군사적 위치였다는 것은 실감할 수 있었다.
대만의 역사를 살펴보면 참 여러 가지로 한국과 비슷하다.
특히 여러 외세의 침략을 받아왔고, 똑같이 일제강점기를 겪었고 더 나아가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했던 역사가 그러하다. 그래서일까 나는 대만에 대해 묘한 동질감과 애정을 갖게 되었다.
타이난에서의 마지막 코스인 적감루를 보러 가기 전,
마지막으로 안평에서 떠우화를 먹기로 했다.
아직 오픈 준비 중인 가게 앞을 얼쩡거리다가 조심스럽게 들어가서
"영업하시나요?"하고 물어보자, 사장 할머니께서 흔쾌히 자리에 앉으라고 해주셨다.
나는 팥 또우화를 하나 주문했다.
팥의 은은한 단맛과 두부의 담백함이 참 적절했다.
달콤한 시럽이 입안에 삭-맴돌자, 여행의 피로가 모두 풀리는 기분이었다.
'와, 한국 가서 떠우화 장사 하고 싶다.'
처음 이 떠우화를 접할 때는 순두부와 시럽의 조화를 의심했던 나인데, 어느 순간 대만 디저트의 매력에 흠뻑 빠져버렸다.
이제 진짜 시간이 없다. 마음이 급해져서 또우화 가게 앞으로 우버를 불렀다.
우버 아저씨는 외국인인 나에게 타이난에 왔으면 이건 꼭 먹어야 해! 라며 이것저것 추천해 주셨는데… 나에게는 이제 1시간 30분 밖에 남지 않았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기차에서 만났던 할머니부터 떠나기 직전에 만난 우버 기사님까지 모두가 너무나 친절하고 다정했다. 여자 혼자 환도여행을 하고 있다는 말에 마치 가까운 친인척이라도 된 것처럼 응원하고, 용기를 주었다. 사실 나는 그동안 대만의 역사와 문화, 아날로그적인 감성을 좋아하기 때문에, 이 타이난이 나와 잘 맞는 것 같다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어쩌면 이 상냥한 사람들 때문에, 그래서 이곳이 더 사랑스럽게 느껴지는 건 아닐까?
우버기사님께서 구글맵까지 동원해 가며 나에게 맛집을 소개해주었다.
나는 곤란한 얼굴로 아쉽지만 이제 곧 가오슝으로 떠나야 한다고 말씀드렸다.
우버 기사님은 무척이나 아쉬워하셨다.
"아니, 타이난은 미식의 도시라서 맛있는 음식이 많지만, 이 가게들은 정말 맛집인데.. 아쉽네요.
그래도 적감루 앞에 있는 쌍생녹두빙수는 꼭 사서 가져가세요. 그건 기차에서 먹을 수 있으니까. 꼭!"
적감루 앞에서 내려주는 순간까지, 우버 기사님은 나에게 꼭 하나라도 더 먹고 가라며 신신당부를 하셨다.
숙소 바로 앞에 있는 적감루를 타이난의 마지막 코스로 오게 되었다.
적감루 역시 안평고보와 마찬가지로 네덜란드인에 의해 1653년에 지어진 요새이다.(당시 이름은 프로방시아 요새) 훗날 정성공의 의해 네덜란드인이 쫓겨났고, 정성공은 이곳은 '동도승천부'라 명명한 후 최고 행정 기관으로 삼았다.
진짜 적감루는 현재 공사 중이라 진입할 수 없었고, 아쉬운 대로 문창각만 다녀오기로 했다.
문창각 안에 마침 소원을 빌고 나무토막을 던져서 운세를 점치는 것이 있어서 나도 한번 해보았다.
문창(文昌)이라는 이름답게 이곳은 학업을 담당하는 신상이 모셔져 있는데, 나는 이 신께 학업과는 전혀 관계없는 소원을 빌어보았다.
“제 여행이 무사히, 끝까지 즐겁고 행복하게 마무리할 수 있게 해 주세요.”
그리고 나무토막을 살짝 던졌는데, 하나는 위, 하나는 아래가 나왔다.
Yes라는 뜻이다.
신도 yes를 말해줬으니,
내 여행은 앞으로도 즐겁고 행복할 것 같다.
적감루 없는 적감루 관람을 마치고, 출구로 나오는 길.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 수 없듯이, 내 발걸음 역시 자연스럽게 출구 옆 기념품 가게로 향했다.
대만 여행하면서 동전지갑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는데 마침 펑리수 그림이 그려진 동전지갑이 있어서,
하나 구입했다.
적감루를 나와 서둘러 호텔로 돌아갔다.
짐가방을 들고 다시 우버 아저씨가 추천해 주신 쌍생녹차빙수가게(双生绿豆沙牛奶)로 향했다.
11시 오픈이라서 사람이 별로 없겠지? 라며 갔는데, 이게 웬걸? 가게 앞에는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있었다.
기차시간 때문에 마음은 급하고, 사람은 많고, 마음이 조급해졌다.
긴장감에 어버버거리는데 어떤 커플 중 여자분이 오더니 “한국인 이세요?”라며 말을 걸어왔다.
“네, 한국인이에요.”라고 하니, 엄청 좋아하며 이곳의 녹두빙수가 맛있다고 꼭 먹어야 한다고 추천해 주었다.
그리고는 내 순서가 되었을 때 먼저 나서서 내 주문을 도와주었다.
"고맙습니다."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를 하니, 커플은 무척이나 예쁘게 웃었다. 그리고는 여행 잘 하라며 응원해 주었다.
그렇게 유명한 쌍생녹두빙수를 들고 우버택시를 불렀다.
사실 이곳에서 역까지는 걸어서 20분 거리인데, 마음이 급했다.
"허억허억!!"
출발시간 3분 전에 초인 같은 힘으로 미친 듯이 달려, 기차에 올랐다.
정신없이 움직였던 나의 타이난 여행은 이렇게 마무리되었다.
기차 의자에 몸을 푹 기대고는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리고는 창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타이난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끽했던 쓰차오.
역사와 전통이 가득했던 안핑.
아기자기하고 사랑스러웠던 타이난의 골목길들.
다정한 사람들, 맛있는 음식들이 나를 행복하게 해 줬던 사랑스러운 타이난, 안녕.
이제 가오슝으로 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