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살, 퇴사하고 대만 한 바퀴
추위에 떨다가 따뜻한 차 안에 올라타자 금세 잠이 쏟아졌다.
한참 졸고 일어나 보니, 다른 사람들도 모두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다행히 나만 졸고 있는 건 아니었다.
차 안은 고요했고, 모두가 잠든 사이 나는 가이드 아저씨와 조용히 이야기를 나눴다.
대만 곳곳을 여행하면서 각 지역마다 저마다의 독특한 매력과 개성을 느꼈다는 말을 하자, 가이드 아저씨께서는 "지금 가는 곳도 굉장히 인상적일 거야."라며 미소 지으셨다..
그리고 도착한 곳, 금산 옛 거리(진바오리 거리)였다.
사실 아저씨께서 금산이 어떤 동네인지, 무엇이 유명한지 조금만 알려주셨다면 훨씬 흥미로웠을 텐데…
아무런 기초 정보 없이 돌아다녀야 했던 게 아쉬웠다.
나중에 스스로 찾아보니, 금산은 스린과 함께 무역로로 이용되었던 곳이라고 한다.
또한 이 지역의 특산품은 고구마라고 했다.
그래서 그런지, 재래시장 곳곳에 다양한 고구마를 판매하고 있었다.
기초 정보 하나 없이 그냥 발길 닿는 대로 걷기 시작했다.
분위기는 한국 재래시장과 참 많이 닮아 있었다. 오래된 역사를 지닌 거리답게 붉은 벽돌 건물이 곳곳에서 눈길을 끌었다.
그리고 역시 고구마! 생고구마부터 말랭이까지, 다양한 고구마 상품들이 가득했다.
한바탕 비가 내린 금산은 무척 추웠다.
아침에 가이드 아저씨가 "추울 것 같은데..."라고 걱정하실 때, 빨리 숙소에 가서 옷을 갈아입고 올 걸.
괜히 후회가 되었다.
추위에 지쳐 들어간 위위안 가게에서 따뜻한 위위안을 한 그릇을 먹기로 했다.
한국의 단팥죽같이 새알심이 잔뜩 들어 있는 팥죽 같은 느낌이었는데,
따뜻한 온기 덕분인지, 몸이 서서히 녹아내리는 기분이었다.
몸을 좀 회복한 후에는 금산 특산품 판매장으로 향했다.
나는 여행지에서 늘 그 지역을 떠올리게 해 줄 기념품을 고르는 편인데, 이번엔 금산의 특산품인 고구마를 활용한 간식을 조금 샀다.
꿀고구마 말랭이 같은 간식이었는데, 정말 맛있었다.
아쉽게도 조금만 산 게 후회될 정도로.
다음에 다시 간다면 최소 10 봉지는 기본으로 챙겨야겠다.
금산 라오제(진바오리 거리)를 후다닥 둘러보고, 투어 차량은 다시 북쪽으로 달려 라오메이 쓰차오에 도착했다.
그런데…
라오메이 마을은 솔직히 쓰차오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해안가 주변은 관리되지 않은 폐건물과 쓰레기들로 가득해, 마치 잊힌 유령 도시 같았다.
흐리고 바람 거센 날씨가 그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더 짙게 만든 듯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오메이 쓰차오는 너무나 신비롭고 아름다웠다.
자연이 만들어 낸 초록빛 바위의 물결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어제 보았던 예류가 바람과 파도가 빚어낸 예술품이라면, 라오메이 역시 같은 맥락의 작품이었다.
혼자 셀카를 찍으며 거센 바람을 만끽하다가, 순간 “아, 서핑하기 좋겠다.”라는 생각까지 했으니…
나란 인간은 참 뜬금이 없다.
이 아름다움이 오래도록 잘 보존되어 수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으면 한다.
(물론 주변 폐건물과 시설물 정리부터 좀 하자.)
흐리고 바람 많은 날씨 탓에 마을 전체가 썰렁했지만, 번잡한 타이베이 도심을 벗어나 잠시 한적함을 맛본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웠다.
이후 1시간 정도 달려 타이베이 메인 스테이션에 도착했다.
함께 했던 투어 팀과 다정하게 악수를 하고는 헤어졌다.
숙소에 돌아가 씻고 나서 밥을 먹으려 했지만, 하루 종일 추위에 시달린 탓에 움직일 기운조차 없었다.
다행히 타이베이 메인역 지하상가에 김밥과 닭강정을 파는 가게가 있어 그것을 저녁으로 간단히 해결했다.
대만에 와서는 늘 대만 현지식만 고집했는데, 추위와 피곤함에 지친 몸에는 역시 한국 음식이 최고였다.
매콤 달콤한 닭강정이 한국에 대한 향수를 달래기에 딱 좋았다.
든든히 먹고 나니 다시 에너지가 차올랐다. 이제 출국까지 딱 3일.
남은 시간, 더 알차고 보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