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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아름다운 꽃망울

고운 향을 머금은 아름다운 매화처럼

청화 (2017), 캔버스에 아크릴, 112.1 x 162.2 cm

학교라는 울타리를 벗어나면 말 그대로 각자도생을 해야 하는 서바이벌 정글이 기다리고 있다. 이 정글은 푸른 초원이 끝없이 펼쳐지는 것 같다가 갑자기 사막이 나온다. 저 멀리 오아시스가 보여 가다 보면 갑자기 늪지대에 빠져버리기도 하고 어찌어찌 빠져나오면 우기의 열대우림이 기다리고 있다. 오, 신이시여! 도대체 왜 이러시나이까? 저절로 절규가 나오다가도 그럴 힘이 있으면 눈앞에 어른거리는 오아시스를 향해 조금이라도 걸어가는 게 낫겠다 싶은 판단이 든다. 하지만 오아시스는 손에 닿을 듯 닿지 않고, 오아시스로 가까이 다가가는 것 같지만 여전히 오아시스로 가는 여정의 끝은 알 수 없다. 대학교 혹은 대학원에서 공부했던 전공과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다가오는 도전과제이다. 단지 누가 어떻게 자신만의 방법으로 이 정글의 생태에 적응하고 도태되지 않으면서 새로운 길을 개척해 앞으로 나갈 수 있는가가 다를 뿐이다. 


처음 갓 대학교를 졸업했을 때의 막막함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돈은 벌어야 하고, 전공을 살려서 취업을 하자니 딱 맞는 직업군은 생각보다 '거의' 없었다. 그렇다고 취업을 준비하자니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나 자신이 바보가 아니고 멍청이가 아닌 것을 잘 알고 있지만 서바이벌 정글에서의 나는 환쟁이인 애송이밖에 불과했다. 각오하고 미술 공부 시작했다고 자부했었지만, 나는 세상 속을 헤쳐나갈 준비가 하나도 되어 있지 않았다. 그 막막함의 시간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길의 양 옆은 낭떠러지이고 가시거리가 30cm도 채 안 되는 밤 안갯길을 운전할 때 조심하세요!'라는 문구를 보고 머리로 받아들이는 것과  직접 그 길을 운전해 보는 것은 천지 차이이다. 나의 막막한 시간은 이 밤 안갯길을 직접 운전할 때의 불안함과 비슷할 것 같다.


2017년 연 초에 부모님과 함께 매화 보러 여행을 떠났다. 산에 매화가 흐드러지게 한가득 피어있던 광경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한옥의 돌담을 배경으로 환한 달빛에 반사된 매화나무는 우아하게 몽환적이었다. 낮과 밤, 매화와 함께한 모든 시간은 고전적인 아름다움 속에서 함께였다. 매화는 모를 땐 못 맡았지만 알고 나면 맡을 수 있는 우아하고 기품이 있는 향을 품고 있다. 눈이 소복이 내리는 추운 겨울날 봄 곧 오고 있음을 알리는 달콤한 향기였다. 잔뜩 긴장하고 있던 마음이 사르르 녹아내리는 기분이었다. 왠지 매화가 지금처럼 묵묵히 나아가다 보면 답이 보일 것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매화가 건넸던 향긋한 위로를 다른 이들에게도 나누어주고 싶은 마음이 들어 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다른 이들에게 나누어주고 싶었던 매화의 위로를 어쩌면 내가 나에게 해주고 싶었던 말일지도 모르겠다. 아직 '인생'이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그리고 앞으로 어떤 힘듦이 찾아올지 모르겠지만, 아름다운 매화와 꽃망울처럼 기품을 잃지 않으며 살아갈 수 있길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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