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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롱롱 Oct 28. 2021

우리에게 딱 맞는 연대의 핏은 어디에?

느슨·끈적·달콤·쌉쌀·뾰족한 연대의 맛



첫 모임에서 너무 패기로운 의견을 낸 것 같다. ‘연대’라는 걸 너무 대단한 시선으로 보고 있는 건 아닐까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 주변에서 소소하게 일어나는 연대를 관찰하고 연대가 작동하는 원리와 사례를 모아보겠다고 했다. 일단 나는 연대를 ‘조금 손해보더라도 같은 자리에서 같은 가치를 공유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이런, 하지만 생각보다 연대해서 잘 굴러가고 있구나 하는 곳을 찾기 어려웠다. 어쩌면 연대란 건 ‘정말 위대한 일’인건지도 모르겠다. 일단 연대에 대해 정의를 내렸다.연대를 일상에서 쉽게 만날 거라고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또 연대로 보기에 애매한 사례도 많았다. 


단체명에 연대나 협의가 들어가는 단체를 살피기도 했다. 깊이감 있게 보지 못해서 일 수도 있지만, 내가 바라는 연대를 하는 곳은 딱히 없었다. 오히려 답답함이 가중된 느낌이 들기도 했다. 항상 아래 이미지에 뼈를 맞기만 했는데, 연대를 외치는 이들을 살피며 사례를 찾다보니 갑자기 깊은 감정이입이 됐다. 연대야 어딨니. 연대야 살아있니? 


연대인 듯 연대 아닌 연대 같은 너?


‘오, 이거 연대 같은데’로 살핀 사례가 있다. 어떤 단체가 공익을 앞세워 조직운영 법률에 대한 개정과 관련정책의 실행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주장했다. 공익적인 목적을 포함해 만들어진 단체이기도 해 어찌보면 연대처럼 보였다. 자세히 살폈다. 보다보니 연대라기 보단 집단의 이익을 위한 주장에 더 가까워 보였다. 


더 아쉬운 점도 있었다. 대부분의 내부 구성원이 함께하지 않았다. 꽤 많은 사람이 모여있는 단체였지만, 의견에 동의를 구하는 청원에는 전체의 2%도 채 모이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그 단체의 의견은 아직도 조율중이다. 추구하는 공동의 가치가 공익적인 이익 보다 단체의 이익 쪽에 가깝다면 그걸 연대로 봐도 될까? 하지만 결과로 나타나는 일부가 긍정적이라면 그것도 연대로 봐야할까? 조금 애매해져 시선을 돌렸다. 



서울시장이 바뀌면서 사회적경제를 비롯한 제3섹터의 상황이 좋진 않다. 답답한 일들이 많이 벌어지기도 했고 꽤나 바쁜 하루를 보냈다. 와중에 어쩌면 여기서 연대가 마구 나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무릇 어려움을 같이 겪어 나가는 것이 연대니까. 꽤 많은 단체가 직접적인 어려움을 겪었지만 연대의 목소리는 보이지 않았다. 세상에, 살짝 충격 받았다. 


사실 나는 잃을 게 없는 청년 실무자에 가깝다. 그래서 연대의 목소리 정도를 내는 건 ‘조금 손해’를 감소하는 정도로 보였는데 아니었나보다. 몇몇 이들에게 뭐 안할거냐(?) 물으니, ‘우리쪽은 아직 그 정도로 급하지 않다’거나 ‘우리는 그 바운더리가 아니다’라는 뉘앙스의 답들이 돌아왔다. OMG! 


연대하는 구성원이 썰려(?)나가도 이후 각자가 잘 살아나가는 건 고차원적인 연대는 아닌 것 같다. 거 참, 똘똘 뭉쳐도 될까 말까인데. 함께하지 않는다면 연대가 아니라 1차적 연결일 뿐이다. 느슨한 연대도 좋지만, 어느정도 끈적함의 필요성도 느꼈다.

 

오 드디어 찾았다, 연대!


협동조합에서 첫 번째 사례를 발견했다. 정신장애인 당사자와 가족 및 사회복지사가 뜻을 모아 설립한 협동조합이다. 다양한 이해관계자 50여 명이 조합원으로 있고 카페사업을 진행한다. 서비스 업종이다 보니 코로나19로 인한 피해가 컸다. 그럼에도 조합원들이 출자금을 늘려 버티고 있다고 한다. ‘조금 손해보더라도 같은 자리에서 같은 가치를 공유하는 것’에 해당하는 것 같아 연대의 사례로 꼽았다. 


위 사례를 보니, 연대 레시피의 재료를 하나 발견한 거 같다. ‘손해에 대한 기준이 좀 다른 것’이다. ‘미래의 우리 삶이 조금이나마 안락해지는 것은 길게보면 손해가 아니다’라는 생각이 중요하다. 그게 어쩌면 지금 보기엔 좀 어설퍼보이는 연대가 가능하게 하는 것 아닐까.

약 한 달여 간 만났던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의식적으로 연대를 찾았다. 하지만 아쉽게도 사례로 소개할만한 건 더 이상 떠오르지 않는다. 좀 더 열심히 연대를 찾아봐야겠다.



연대 그게 뭔데, 그거 어떻게 하는 건데


연대가 왜 어려운지 곰곰이 생각했다. 과거에는 그래도 명확한 적이나 목표가 있어서 뭉치기 더 수월했던 게 아닐까 싶다. 전쟁이나 독재 같은 일에는 상징적인 목표물이 있다. 하지만 자본주의가 만든 세상은 세련되고 편하다. 내가 마시는 우유 때문에 젖소는 갓 태어난 새끼와 생이별하고 우유생산을 위해 임신한 상태를 유지한다. 면 옷을 소비한 결과로 아랄해가 말랐다. 현실이지만 SF소설 같기도 하다. 누가 적이고 뭐가 나쁜 행동인지를 알기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연대는 어떤 모습을 해야할까. 


조심스레 연대의 이상적인 모습을 떠올렸다. 순간 삼성역의 별마당 도서관이 생각났다. 코엑스 스타필드 중앙에 위치한 큰 공간이다. 지금도 그런진 모르겠다. 초반의 코엑스 스타필드는 복잡한 길로 악명 높았다. 걸어도 걸어도 보이는 건 오직 별마당 도서관뿐이라는 우스개 소리도 있었다. 별마당 도서관에서는 누구나 책을 보고 공간을 이용할 수 있다. 책의 도난을 방지하는 보안 시스템이 없다. 운영사는 책 도난의 위험이 있음을 알고 있지만 ‘어느 정도’ 감수하겠다고 발표했다. 


어찌보면 지금의 상황에 맞는 연대의 핏이 아닐까 싶다. 복잡한 현실에서 의도적이든 그렇지 않든 간에 자꾸만 보이고 그래서 머물다 가는 곳. 어느정도의 손해는 감수하는 곳. (어디에서나 잘 보일 수 있도록 뾰족하게 다듬는 방법에 대한 고민은 필요하겠지만) 쓰고보니 당연한 소리라 머쓱하다. 


아직 연대가 뭔진 잘 모른다. 하지만 누군가는 모르는 게 약이라고, 몰라서 할 수 있는 게 있다고 했다. 최근 내가 일하는 분야에서 모임을 만들었다. 또래의 실무자들이 우리 분야의 문제를 이야기하고 해결을 위한 고민을 해 나갈 예정이다. 우리의 거대한 목표는 청년들이 ‘연대’하는 커뮤니티다. 부딪혀가면서 연대의 달콤함과 쌉쌀함을 느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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