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코이카(KOICA)라고 아세요? 저희는 코이카 단원으로 우즈베키스탄에서 1년 동안 봉사하고 이제 귀국하는 길이에요. 그래서 한국 음식이 얼마나 반가운지 몰라요."
다솜이 밥솥에서 흰 밥을 한 주걱 떠 라면 그릇에 담으며 네 사람이 다같이 파리로 여행오게 된 이유를 설명해주었다.
"아... 코이카... 유튜브에서 본 적 있긴 해요. 그럼 우즈베키스탄에서 바로 오신 거예요?"
"맨 먼저 터키 갔다가 이탈리아 갔다가 지금 파리로 온 거예요. 파리 여행 마치면 런던으로 갈건데요. 런던에서 3일 관광하면 인천으로 돌아가요. 1주일 후에는 진짜 귀국하는 거죠."
"1년 동안, 타국에 있었으면 빨리 한국 들어가고 싶으셨을텐데요."
희철은 1년간의 봉사를 마치고 바로 집으로 가는 대신, 먼 여행을 떠나온 구 봉사단원들의 이야기가 조금 이해가지 않았다. 잘 모르겠지만 열악한 나라에서 지내다보면 빨리 집에 가서 가족을 만나고, 편하게 쉬고 싶을 것 같았다.
"바로 한국으로 들어가기는 아쉬워서 다같이 유렵여행하고 들어가기로 했어요. 귀국행 비행기표 비용은 코이카에서 지원해주니까 유럽까지 오는 비행기표만 개인적으로 보태면 되서요."
그런 희철의 반응에 지연이 봉사활동 후, 바로 유럽행을 하게 된 이유를 설명해주었다. 한국에서 유럽까지 여행하러 오는 건 어지간히 마음먹지 않은 이상 쉽지 않으니 중간 지점인 우즈베키스탄에서 출발하는 김에 유럽에 들렸다 한국으로 돌아가기로 한 것이었다.
"우와. 정말 괜찮은 봉사네요!"
"대신, 여행 경비도 있고 또 보험도 봉사활동 기간이 끝나고 14일까지만 유지되어서 열흘 동안 총 4개의 도시를 돌기로 하고 바쁘게 움직이고 있어요."
네 사람의 대화는 야경투어를 위해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는 내내 이어졌다. 다솜과 희철은 동갑이었고, 나머지 세 사람은 모두 희철보다 두세살 많았기 때문에 어느 새 서로 편하게 말을 놓으며 대화가 이어졌다. 희철은 해외에서 1년 이라는 긴 시간 동안 봉사활동을 했다는 이야기가 무척 흥미로웠는지 이것저것 질문을 했다.
네 사람은 코이카에 대해 궁금해하는 희철에게 출국 전 함께 합숙훈련 했던 이야기며, 우즈베키스탄에서 말도 안되는 고생을 하며 눈물콧물 쏟은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다. 봉사 직종도 다양했는데, 지연과 다솜은 한국어 강사로, 수희와 현아는 컴퓨터 강사로 봉사를 하고 왔다. 지연은 국문학과를 졸업해 한국어 강사로 일한 경력이 있었고, 나머지 세 사람은 비전공자였지만 관련 자격증을 차근차근 취득하며 코이카 봉사단 서류와 면접을 준비했다고 했다.
'봉사단에 선정되는 것도 왠만한 스펙으로 되는 게 아니구나.'
봉사야 누구나 충분히 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했던 희철은 자신의 생각이 우물안 개구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희철이 생각하는 봉사는 연탄을 나르거나, 우물을 파거나, 벽화를 그리는 정도의 활동이었지, 전문성을 가지고 대학생들이나 공무원들에게 교육을 제공하는 봉사는 생각해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오랫동안 공부를 했지만 지금 자신의 상황에서는 개발도상국에서의 봉사활동 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도 충격으로 다가왔다.
"왜? 너도 코이카에 관심있어?"
구체적으로 이것저것 묻는 희철에게 다솜이 물어봤다.
"꼭 가고 싶다기보다는 신기해서."
네 사람은 정말 밀도있는 1년이라는 시간을 보내고 오는 길이었다. 한달 동안의 국내교육과 현지에서의 한달 교육과정을 거쳐, 각 대학에서 강의를 했던 네 사람은 우즈베키스탄 언어로 제법 의사소통까지 가능할 정도로 열심히 어학 공부를 하며 일했었다. 열흘 남짓한 짧은 국내 휴가를 이용해 실크로드의 중심지였던 부하라(Bukhara)에 다같이 여행간 이야기도 무척이나 흥미진진했다.
"유럽 여행오려고 1년 동안 코이카에서 나오는 생활비도 엄청 아꼈었어. 물론, 그렇게 모아봤자 모을 수 있는 돈이 크지 않아서 알뜰하게 여행해야하지만. 대학생 때 못해본 유럽여행을 이렇게라도 하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워. 어차피 대학생 때 유럽여행 와도 이렇게 궁핍했을 것 같아. 큭큭."
"누나, 봉사활동 하는데 생활비도 나와?"
희철은 돈을 모았다는 수희의 말에 놀라 물었다. 수희는 우즈베키스탄에 같은 기수로 파견된 네 사람 중, 가장 나이가 많은 30대였다.
"응. 주거비와 생활비가 나오거든. 주거비는 월세 내고 나면 남는게 없지만, 생활비는 아끼려면 아낄 수 있으니까. 우리끼리 머리도 잘라주고, 다같이 모여서 음식 해먹고 그랬었어."
수희는 대학 졸업 후, 오랫동안 컴퓨터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강사로 일을 했었다. 그러던 중, 학교 교사가 되고 싶다는 꿈이 생겨, 교육대학원에 입학했고 졸업해서 교원자격증을 취득했을 때는 서른 살이었다. 하지만 자격증만 있다고 해서 교사가 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수희는 게속해서 학원 강사나 계약직 교사 자리를 전전하며 일해야했고, 그러던 중 번아웃이 심하게 왔다. 잠시 쉬고 싶긴 했지만, 마냥 놀 수는 없는 형편이기에 선택한 것이 코이카 봉사단이었다.
"사람들이 나이 서른에 봉사하러 간다니까 다 미쳤냐고 했어. 지금 계산해보니까 코이카에서 봉사단 활동하면서 저금한 돈이 한국에서 일할 때랑 비슷하더라고. 보험료나 월세 걱정도 없고. 귀국하면 월 60만원씩 적립한 '국내 정착 지원금'이 있는데, 그럼 1년에 720만원이잖아.
나 한국에서 일할 때도 이 정도 저금하기 쉽지 않았어. 물론, 대학 학자금 다 갚자마자 대학원 학비 내고 하다보니 그런 것도 있지만. 사실 그 적은 월급에서 36개월 할부해서 명품가방 사서 들고다니고 했었거든. 해외여행도 일본이나 홍콩이라도 3-4 년에 한 번씩은 가야 할 것 같았고.
그런데 우즈베키스탄은 이방인으로 사니까 아무도 나를 모르잖아. 그냥 검소하게 살다보니 살아지더라고. 유럽 여행 비용도 홍콩 다녀오는 비용이랑 별 차이 안나고. 그냥 사는 방법이 참 다양한건데 우물안 개구리처럼 내 눈에 보이는게 전부인 줄 알고 살았다는 생각이 들어. 어차피 1년 더 한국에서 노력한다고 해서 뽀죡한 답이 나오는 것도 아니었거든."
"그래서 번아웃은 극복했어?"
"응. 나한테 필요했던 건 '전력질주'가 아니라 '일시정지'였던 것 같아. 일단 일하는 시간부터 한국과 비교 안되게 적었거든. 일주일에 3일만 일하면 되니까. 그리고 1년 동안 할 일이 정해지니까 일자리에 대한 초조함도 없잖아. 남은 시간에는 거의 운동하고 책 읽으며 보냈어. 주말에는 동기들과 카페 나들이가거나 시장 구경가고. 그렇게 삶에 틈이 생기기 시작하니까 조금씩 숨이 쉬어지더라고. 스트레스가 주니까 자연스럽게 살도 많이 빠졌어. 물론, 지금 비쥬네 민박집에서 도로 찌고 갈까봐 걱정되긴 하지만."
"야경투어의 마지막 코스인 에펠탑이에요."
"밤에 보니까 더 멋있어요!"
에펠탑을 처음보는 희철 뿐만 아니라, 이미 어제 에펠탑을 한번 보고 구 봉사단원들도 어둠 속에서 밝게 빛나는 에펠탑을 보며 탄성을 질렀다. 센느 강이나 루브르 박물관을 걸을 때도 무척이나 즐거워했었는데, 아무래도 여자들끼리 삼일에 한 번 꼴로 낯선 나라를 다니다가 현지에 익숙한 미주와 남자인 희철과 함께 움직이다보니 긴장감이 덜해서 마음껏 풍경을 즐긴 이유도 있었다.
"우리 여기서 사진 찍어요!"
"자, 한 번 더요!"
구 봉사단원들은 혼자 셀카를 찍기도 하고 둘 씩 찍기도 하고, 희철이나 미주와 함께 찍기도 하고, 다같이 사진을 찍기도 하면서 파리의 밤을 즐기고 있었다.
"자, 이제는 챌린지 갑니다!"
"또 챌린지를 해?"
구 봉사단원들은 야경투어를 하면서 관광 명소마다 사진을 찍는 것에 더해 희철과 미주까지 합세하게 해서 요즘 유행 중이라는 챌린지 영상을 짧게 찍었는데 에펠탑에서 또 찍자고 했다.
"장소마다 찍어야 합해서 영상을 올리지. 여기가 하이라이트인데 빠질 수가 없어. 자! 다들 서고, 사장님도 얼른 서세요!"
미주 입장에서야 SNS에 올려준다니 민박집 홍보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싶어서 참여했고, 희철은 누나들의 성화에 울며겨자먹기로 참여했다. 사실 나서길 좋아하지 않는 희철이지만 깨발랄한 구 봉사단원들과 함께여서인지, 외국에 나와 느끼게 되는 해방감 때문인지 싫다고는 하지만 또 시키는대로 챌린지 영상을 잘 찍었다.
"좋아! 이제 민박집 가서 편집만 하면 되겠어."
"저희가 국내 휴가를 다같이 가면서 그때부터 하나씩 만들어서 올렸었거든요. 유럽 여행 중에도 만들어 올리고 있어요. 민박집 계정도 태그할게요. 반응 좋으면 좋겠다."
"맞아. 그때 제일 조회수 높은 건 1만도 넘었었잖아."
"1만이요?"
미주는 깜짝 놀라서 물었다. 미주도 틈틈히 SNS를 한다고는 하지만 조회수가 영 나오지 않아 고민이 컸었기 때문이었다.
"에이. 1만 넘는건 정말 어쩌다 한 번이고요. 보통은 몇 천 정도예요. 그래도 영상 한 번 올릴때마다 팔로워가 늘어나요."
"그렇군요. 저도 홍보 때문에 SNS를 잘 하고 싶은데, 손에 영 익지 않아서 힘들더라고요."
"그럼, 제 계정 한번 보실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