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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썸머 Oct 26. 2024

열정 만수르와 번아웃 환자들

누군가의 쉼은 누군가에게 도전

민박집으로 돌아오는 길, 지하철에서 다솜이 미주와 희철에게 SNS 계정을 보여주었다. 지하철 의자에 나란히 앉은 두 사람은 챌린지 릴스가 꾸준히 올라온 다솜의 계정을 함께 보았다.


[som_som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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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이카해외봉사단 #우즈베키스탄 #유럽여행ing]


"제가 한국어 강사로 갔잖아요. 학생들과 K-pop 노래에 맞춰서하는 챌린지를 거의 한 달에 한 번씩 해서 올렸거든요. 공부는 열심히 안하는 학생은 많았지만, 챌린지를 소홀히 하는 학생은 없었어요. 같이 노래 한곡 공부하고, 챌린지 연습해서 찍었었어요."


평소 SNS를 잘 하지 않던 다솜은 한국어 수업에 흥미를 갖게 하기 위해 챌린지를 생각해냈고, 그렇게 SNS를 시작하게 되었다고 했다.


"다솜이는 코이카의 인플루언서예요."


"인플루언서는 무슨. 그냥 학생들 챌린지 업로드용으로 하다가 조금씩 일상을 올리기도 하고 여행기도 올리고 그렇게 하고 있어요. 사실 우즈베키스탄에서는 한국에 있을 때보다는 시간이 많거든요. 그래서 1년 동안, 새로운 일에 도전해보자고 시작한 거예요."


다솜은 우즈베키스탄에서의 1년이라는 시간을 수희와는 아주 다르게 보낸 모양이었다. SNS 계정도 열심히 키우고, 우즈베키스탄 언어를 배우는 것 뿐 아니라 매일 집에서 혼자 스페인어를 독학했다고 했다. 함께 우즈베키스탄으로 온 언니들과 운동하기도 하고 여행을 하는 것은 덤!




다솜의 SNS를 구경하다보니 어느새 파리 14구까지 도착했다. 미주는 지하철에서 일행과 헤어져 집으로 돌아갔고, 남은 다섯명은 피곤함도 잊은 채 민박집 거실에서 못다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섯 사람은 각자 파란 병맥주를 하나씩 들고 소파 앞에 깔린 카페트 위에 편하게 둘러 앉았다. 가운데에는 희철이 한국에서 올 때 챙겨온 한국 과자 몇 봉지가 펼쳐져있었다. 안주라고는 한국에서는 마트만 가면 살 수 있는 저렴한 과자들이지만 한국의 맛에 굶주려있는 구 봉사단원들은 진귀한 음식인 듯 맛있게 먹으며 하루의 피로를 풀었다.


"스페인어는 왜 공부하는거야? 이미 한국어랑 우즈베키스탄어까지 할 줄 알잖아?"


"희철아! 다솜이는 영문과 출신이라서 영어도 잘해."


"우즈베키스탄어는 여기 언니들이랑 비슷하게 손짓발짓하며 살아가는 정도고. 영어는 누구나 하잖아."


다솜은 자신의 언어능력에 대한 사람들의 칭찬이 무척 쑥쓰러운 듯 보였다. 


"스페인어가 전망이 좋을 것 같아서. 스페인어 사용하는 인구는 많은데, 아직 한국에는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사람이 별로 없거든. 반대로 영어 같은 언어는 다들 할 줄 아니까 취업에 큰 메리트가 없더라고."


한 지방대학의 영어영문과를 졸업한 다솜은 취업이 되지 않아 꽤 고생을 했다고 했다. 비록 지방대학이었지만 학점과 토익 점수가 출중했던 다솜은 작은 무역회사라도 취업이 될거라고 막연히 생각했었다. 하지만 취업이 되지 않았고, 결국 다솜은 영어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취업 준비를 병행했지만 게속 떨어지기만 했다.


"내가 해외 경험이 없어서 취업이 안되나 싶더라고. 언어를 전공했지만 유학은 커녕 어학연수도 다녀온 적이 없으니까. 그런데 또 유학할 돈은 없으니 너무 답답하던 차에 코이카 봉사단 활동을 알게 되었고, 한국어강사 자격증을 따서 지원한거였어. 어쨌든 외국에서 생활하니까 영어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하는 단순한 생각이었어."


"그렇구나. 그래서 영어랑 우즈베키스탄어 모두 늘은거야?"


"영어는 거의 사용할 일이 없었어. 사실 유럽 여행하면서 영어는 제일 많이 쓰고 있을 정도로 봉사기간에는 현지어가 더 중요했거든."


"우즈베키스탄어를 잘 하게 되었으면 됐지."


"휴. 그런데 한국에서 우즈베키스탄어를 써서 뭐하겠어. 어디 일할 곳이 없잖아. 그래서 조금 실망하고 있던 중, 다른 국가로 가는 단원들이 했던 이야기가 생각나더라고. 나는 사실 우즈베키스탄이 치안도 좋고, 한국이랑 그래도 가까워서 선택했었거든. 그런데 그 단원들은 모두 남미로 가는 거였고, 일부러 남미 공고가 날 때만 지원했대. 그 이유는 스페인어를 무료로 배울 수 있어서였어."


"아, 이왕 봉사하는거 무료로 언어도 배울 수 있도록?"


"응. 스페인어를 아무리 못해도 국내 교육과 현지 교육에서 스파르타식으로 배워야하고, 또 스페인어를 쓰면서 일해야하고. 현지에서 과외까지 받으면 엄청 빨리 배울 수 있다는거야."


"우즈베키스탄 언어를 배우는 건 너무 재밌었지만 과연 내가 이 언어를 한국 가서도 쓸 수 있을까싶은 생각이 들더라고. 이미 영어 하나 만으로는 경쟁력이 안된다는 걸 알았으니, 나도 스페인어를 공부해보자 생각했지."


"우와. 그러면 2개 외국어를 동시에 공부한 셈이네."


"그래서 좀 힘들긴 했지만, 어차피 우즈베키스탄어는 기본을 한 상태라서 스페인어는 초급부터 조금씩 공부했어."


"그럼 스페인어로 취업 준비하려는거야?"


영어 하나도 초등학생인 샬롯보다 못하는 희철은 여러 언어를 끊임없이 공부하는 다솜을 보며 놀라서 물었다.


"바로 스페인어로 취업은 힘들것 같고. 한국으로 돌아가서 다시 강사일을 하면서 스페인어 공부를 계속 할거야. 그리고 다시 남미 지역으로 코이카 지원하려고. 그렇게 1년 동안, 코이카 봉사단원으로 일하며 남미에서 일한 경력을 쌓고 스페인어를 마스터하는 게 목표야."


"다솜이 완전 열정 만수르지? 번아웃 와서 놀고만 있는 내가 아주 민망할 정도였다니까."


다솜의 이야기에 수희가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1년 동안, 최대한 충전하는 것이 목적이었던 수희는 열심히 사는 다솜을 보며 자신도 뭐라도 해야하는 것이 아닌가 싶었지만 그냥 두눈 꾹 감고 최대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물론, 봉사단원으로서 주어진 일은 열심히 했고, 요리와 청소를 하며 자신을 돌보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미래에 대한 불안과 초초함으로 무엇이라도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었던 시간에서 잠시 벗어나는 것이 목적이었으니까.


"맞아. 수희 언니랑 나는 숨가쁜 한국 사회에서 쉴 곳을 찾아 간 거라서 다솜이처럼 열심히는 안했어. 그래도 여행도 많이 다니고, 우즈베키스탄에서 진짜 크고작은 프로젝트 진행했어. 백수는 아니니까 죄책감도 안느끼면서 적절히 쉬었지. 하하."


한 대학교 부설 어학원에서 몇 년 동안 한국어 강사로 일하다 코이카 봉사단으로 지원했다는 지연은 수희에게 공감하며 말했다. 한국어 강사는 계약직으로 한 학기 즉, 10주마다 계약을 한다고 했다. 석사 학위자에 비하면 적은 급여이지만, 적게 일하는 만큼 적게 버는 것에는 큰 불만이 없었다. 하지만 방학 때에는 그 작은 월급 마저도 받을 수 없다는 사실과 재계약 문제로 매번 면접을 보러 다니는 것이 가장 힘들다고 했다.


"어차피 1년 동안은 할 일이 있는 거잖아. 심지어 방학에도 말이야. 면접 보지 않아도 되고 서류 준비 안해도 되고. 물론, 한국 돌아가면 다시 시작이지만. 그래도 1년 동안, 봉사활동한 경력으로 다문화센터에 일하거나 할 때 도움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어. 우즈베키스탄어도 기본적인 건 할 줄 아니까."


1년 간의 봉사가 모두 끝난 네 사람의 얼굴에는 후련함과 함께 다시 부딪혀야할 한국에서의 삶에 대한 불안감이 공존하고 있었다. 희철은 마치 군에서 막 제대했을 때 자신이 그랬었다는 것을 기억해냈다. 그때 자신도 무언가 새로운 것에 도전해보거나 코딩이나 외국어 같은 실용적인 공부를 해보면 어땠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려운 걸 생각할 필요도 없어. 운전면허 시험이라도 봐둘걸.'


재수, 삼수, 군수를 위해 해야할 많은 이들을 지금까지 미뤄온 탓에 또래라면 누구나 있는 운전면허 시험조차 아직 취득하지 못한 희철이었다. 운전면허라도 있었으면 하다못해 군대에서 운전병으로라도 일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고, 친구들과 제주도로 여행이라도 다녀오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밀려왔다.


"그런데 너희들은 국내정착지원금으로 뭐할꺼야?"


지난 시간에 대한 후회가 밀려드는 희철의 속마음은 아는지 모르는지 수희가 난데없이 목돈의 사용 계획을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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