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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썸머 Oct 26. 2024

1년 후, 우리는

1년 후,


"도대체 왜 여기로 신혼여행을 오는 거야?"


미주는 2일 동안, 가족룸을 예약한 손님을 맞으며 볼멘 소리를 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비수기라서 3일 동안은 민박집을 예약한 다른 손님이 없어 신혼부부가 편하게 지내다 갈 수 있다는 것이었다.


"당연히 여기로 신혼여행 와야지. 안그래?"


"맞아. 우리가 처음 만난 곳이니까."


주인은 별로 환영하지 않는 눈치였지만, 손님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민박집으로 들어왔다. 커플로 맞춘 캐리어를 하나씩 들고 들어오는 신혼부부는 재경과 수환이었다. 한국에서 결혼식을 마치고, 수환이 박사 과정을 밟는 런던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하기로 한 두 사람은 신혼여행으로 비쥬네 민박집을 찾았다.


"아휴, 사장님. 이거 캐리어 하나는 사장님 선물입니다. 진규 형이 사장님 갖다드리라고 바리바리 싸줬어요."


수환은 캐리어 하나를 아예 거실로 가지고 와서 풀어보였다. 1년 전, 포닥 생활을 위해 파리에 왔던 진규는 얼마 전, 국가 연구소에 연구원으로 합격하여 한국으로 돌아갔었다. 소라는 1년이 채 안되는 유럽 생활이 아쉬운 듯 했지만, 딱 아쉬울 때 돌아갈 수 있어 다행이라고 말했다. 이제 한국에 돌아가면 복직을 해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이 싫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딱히 할일이 없는 유학생 와이프로서의 삶은 자기일을 해야하는 소라에게는 1년이면 족해보였다.


"뭐 이런걸 다 보냈어."


캐리어 안에는 샬롯이 좋아할 한국 과자들과 미주가 좋아할 믹스 커피가 있었다. 거기에 기장 미역과 깻잎 통조림 반찬까지 빈틈없이 차곡차곡 담겨진 것이 꼭 꼼꼼한 소라를 다시 보는 것 같았다.


"노총각으로 객사할 뻔한 저를 구원해주신 사장님께 드리는 작은 선물이라고 하네요. 하하."


"두 사람이 인연이었던거지."


수환과 재경의 결혼에 미주는 딱히 한 일이 없다고 생각했기에 겸손하게 물러섰다. 


"맞아, 언니. 우리는 인연이었어. 천생연분이지."


"어이구."


야경투어 후, 수환은 재경을 공항 근처 승무원 지정 호텔까지 데려다주었는데 40여분 되는 그 시간 동안, 두 사람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했다. 미주가 보기에 두 사람은 별로 공통점이 없어보였다. 굳이 공통점이라면 수환은 교통공학을 전공했고, 재경은 교통에 관련된 서비스 직에 종사한다는 것? 그게 아니라면 둘다 한국인이라서 한국말이 통한다는 것?


수환은 안정적인 삶을 선호해보였고, 계획적이고 이성적이었다. 반대로 재경은 지루한 일상을 견디지 못했고, 즉흥적이고 융통성있게 삶을 살아가는 편이었다. 그런 두 사람이 그 짧은 시간 동안 서로가 잘 맞는다고 느꼈다니 천생연분이라면 천생연분이었다.


파리에서 헤어진 두 사람이 다시 만난 건 재경이 런던으로 비행을 오면서였다. 재경은 이상하게도 연속해서 런던 비행이 나왔고, 수환을 만나는 것이 재밌어 나중에는 아예 런던 비행을 신청해서 오기까지 할 정도로 두 사람은 부쩍 친해졌다.


"결정적인건 제가 카타르에 놀러갔던 거예요. 정말 모처럼 짬을 내서 카타르로 재경이를 만나러 갔거든요."


"내가 얘기 듣고 너무 놀랬어요. 카타르까지 만나러 갔다니!"


"공항에 내리니 재경이가 저를 기다리고 있더라고요. 그리곤 저를 맛집이라며 양고기 집으로 데려가더라고요. 거기서 양고기를 먹고 나니, 사막투어를 하러 가자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사막에 갔죠. 함께 낙타를 타고, 그 뜨거운 사막에서 차를 마시고, 나중에는 페르시안만을 바라보며 노을까지 바라봤어요. 그때, 느꼈죠. 아, 이렇게 내가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여자가 또 있을까? 이 사람과 결혼하면 편하겠다!"


"뭐야! 나를 무슨 가이드로 생각한거야?"


"멀리서 돈도 못쓰게 하더라고요. 얼마나 멋있던지 몰라요. 아랍어를 하는 것도 너무 멋있어보였고요. 나중에는 시간 맞춰서 공항으로 배웅까지 해줬어요. 그렇게 알찬 해외여행은 난생 처음이었어요."


"가이드 맞네!"


"정말 그 모습에 반한거야?"


수환의 이야기에 미주는 박장대소를 했다. 1년 전, 파리에 왔을 때는 일에 지쳐있어서인지 사람이 무척이나 피곤해보이고 말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보니 무척이나 재경과 닮은 모습이 많았다.


미주가 한국에서 가져온 간식 거리를 꺼내 접시에 담고, 뜨거운 물을 끓여 달달한 믹스커피를 세 잔 타서 내오자 세 사람은 소파에 둘러 앉아 밀린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실 미주와 재경은 수시로 메시지를 주고 받으며 근황을 주고 받긴 했지만 직접 만나서 할 수 있는 이야기는 따로 있었으니까.


"너 일은 그만둬서 괜찮아?"


"응. 사실 카타르 항공에서 퍼스트 클래스까지 승진해서 일했잖아. 물론, 조금 더 했으면 부사무장까지는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긴 하지만 승무원으로서 그 정도 커리어를 쌓은 걸로 만족해. 퍼스트 클래스에서 일하면서 여러 에티켓이랄까? 이런 것들도 많이 배웠고."


"그럼 이제 런던에서는 뭐하면서 지내려고?"


"글쎄. 아마 전업주부로 지내겠지? 물론, 내 성격에 전업주부로 마냥 지내기는 어려울 것 같고. 화상으로 영어 면접 코칭해주는 아르바이트하면서 신혼을 즐기려고. 주말에는 영국의 시골 구석구석 여행도 다니고 말이야. 화려한 관광지는 이제 그만 가도 될 것 같으니까."


이미 카타르에서 오랫동안 생활한 재경은 해외생활에 큰 무게를 두지 않았다. 재경에게 중요한 것은 안정적이고 다정한 성품의 수환과 함께하는 일상이었다.


"재경이는 그렇다고 해도, 수환씨는 신혼여행을 멋진 곳으로 가고 싶지 않아요?"


"저요? 뭐 그렇긴 한데 한국에서 결혼식 하는 것 만으로도 시간을 많이 빼야해서요. 어디 여행까지는 무리였어요. 재경이가 이해해줘서 너무 다행이었죠. 보통 여자들은 신혼여행을 중요하게 여긴다는데, 제가 미안하죠."


두 사람은 양가 부모님을 위해 한국에서 결혼식을 올리기로 했다. 하지만 박사 과정 중인 수환이 시간을 무한정 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에 할수 없이 신혼여행을 생략하기로 한 것이었다. 아주 생략했다고 볼 수는 없다. 주말 동안, 비쥬네 민박집에서 2밤을 자는 것이 신혼여행이라면 신혼여행이었으니까. 두 사람은 낭만적인 파리에서 시간을 보낼 겸, 민박집 운영을 위해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한 미주를 따로 방문할겸, 파리로 짧은 여행을 왔다.


"민박집 운영은 잘 되가? 우리 온다고 손님들 다 안받고 그런 건 아니지?"


"지금 비수기에 주중이라 잠깐 없는 것 뿐이고, 금요일부터 곧 만실이야. 사실 이제는 비수기에도 이렇게 손님 없는 날은 잘 없어. 이제는 비수기에도 스탭 한 명이랑 나랑 둘이 일해야 할 정도니까."


다솜이 SNS에 부지런히 비쥬네 민박집 계정을 태그하고 후기를 올린 것에 더해, 스탭으로 일했던 희철이 유럽 민박 스탭이라는 주제로 브이로그까지 올리면서 비수기에도 손님이 많아졌다. 만실임에도 문의가 끊이지 않아 아예 같은 건물 5층에 하녀방이라고 불리는 원룸을 2개까지 추가로 계약했다. 화장실까지 딸린 하녀방 하나는 가족룸처럼 손님을 받았고, 다른 하나는 스탭 숙소로 아예 사용 중이었다.


"그럼, 성수기에는 어떻게 하려고?"


"뭐 극기훈련하듯 살아야겠지. 큭큭. 희철이가 또 필요하면 자기 부르래. 여름방학동안 와서 일하고 가고 싶다고."


"아, 그때 그 조카분 말이죠? 고민하다가 사촌동생이 오셔서 함께 일하다 갔다고요."


"네. 맞아요. 복학해서 학교를 잘 다니고 있는데 방학 때만이라도 와서 일하고 싶다고해서 지금 고민 중이에요. 대학생은 방학이 길긴 하니까 졸업 전까지 한 번 정도는 더 올 수 있을 것 같아요. 아직 못가본 유럽 도시가 많아서 꼭 가보고 싶다고 엄청 진지해요."


[파리 한인민박집 스탭 일상 vlog]


[5수를 하고 후회한 점. 복학생.]


[파리 워킹홀리데이 후 치뤄본 토익 점수는?]


희철은 복학해서도 틈틈히 유튜브에 영상을 올리곤 했다. 조회수가 많지는 않지만 토익 점수, 영어 회화, 자격증 취득 등와 같은 자신과의 약속을 증명하는 공간으로 사용하는 것 같았다. 기자의 말로는 희철이 이제야 정신을 차린 것 같아 기숙의 얼굴이 피었다고 했다. 


그렇게 세 사람이 서로 밀린 이야기를 하느라 정신없는 동안, 어느 새 시간이 흘러 해질 무렵이 되었다.


'딸깍.'


그때, 현관문이 열리고 새로운 스탭이 들어왔다.


"사장님, 야경투어 시간이라서 내려왔어요. 윗층에 묵는 가족분들이 참여하신다고 하셔서요."


"그러고 보니 이제 야경투어 시간이네요. 내 정신 좀 봐. 아, 소개해줄게요. 이 쪽은 4층 가족룸에서 2박 하는 부부예요. 수환씨랑 재경씨인데, 우리 민박집 야경투어에서 인연이 되어 결혼한 분들이죠."


"꺅! 정말 만나뵙게 되어 영광이에요! 비쥬네 민박집의 역사 같은 커플이시잖아요."


"역사? 우리가 그렇게 유명한 존재야?"


수환과 재경이 결혼을 하기로 결정하면서, 미주는 야경투어를 시작하기 전에 두 사람의 이야기를 짧게 들려주곤 했다. 주로, 젊은 남녀들이 섞여 투어가 진행되는 경우 분위기를 업시키기 위해서 그리고 서로 잘 보이고 싶은 마음에 예의있게 투어를 마무리했으면 하는 마음에서 시작한 이야기였는데 예상 외로 반응은 뜨거웠다.


"저도 여기서 인연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괜히 헛꿈 꾸게 된다니까요?"


처음 만나는 수환과 재경이지만, 비쥬네 민박집이라는 인연 때문인지 특유의 높은 붙임성 때문인지 새로온 스탭은 편안하게 대화를 이어나갔다.


"아, 이 쪽은 우리 민박집 새로운 스탭, 다솜씨. 우리 민박집 손님으로 인연이 되어서 지금은 워킹 홀리데이 비자로 우리 민박집에서 일하고 있어. 물론, 프랑스어는 관심이 없고 스페인어와 스페인 문화에 관심이 많아서, 휴무일에는 무조건 스페인으로 여행을 떠나고 있고. 별명은 열정 만수르야."


"소개가 너무 거창하네요. 계신 동안 잘 부탁드릴게요!"


다솜은 수환과 재경에게 씩씩하게 인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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