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쉽게 놓치는 '존중의 거리'
어린이 합창단과 함께 동남아로 촬영을 간 적이 있다.
거리에서 맨발로 뛰어노는 현지 아이들을 보던 순간,
우리 아이들 중 누군가가 말했다.
“불쌍하다… 저렇게 사는 거 좀 안 됐다.”
그 말은 그저 아이의 솔직한 반응이었을 것이다.
어릴 적 우리도 그렇게 배웠고, 그렇게 생각했다.
‘힘들게 사는 건 불쌍한 거다.’
‘우리가 도와야 한다.’
그 순간, 여행 가이드가 조용히 아이들 옆에 다가와 말했다.
“얘들아, 현지 아이들을 불쌍하다고 생각하지 마.
그 아이들은 자기가 살아가는 방식을 선택한 건 아니지만,
그 안에서 충분히 웃고, 친구랑 어울리고, 하루를 잘 살아가고 있어.
누군가를 돕고 싶다면, 먼저 동등하게 바라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해.”
아이들은 말이 없었고, 그 옆에서 나도 잠시 멈췄다.
그 장면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그 말투, 그 거리감, 그 시선.
함부로 감정을 덧입히지 않고,
정중하면서도 단단하게 아이들의 시선을 바로잡는 그 모습.
나는 생각했다.
그래, 어른이라면 저렇게 말할 수 있어야지.
아이들이 ‘불쌍하다’고 말할 때,
함께 맞장구치지 않고,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자라날 수 있도록 방향을 잡아주는 일.
그게 어른의 역할이라는 걸 그날 배웠다.
우리는 종종 우리가 조금 더 산다는 이유로
조금 더 가진 나라라는 이유로 다른 사람의 삶을 가볍게 단정 짓는다.
하지만 돌아보면, 우리도 불과 몇십 년 전 ‘불쌍하다’는 시선을 받던 나라였다.
내가 좋아했던 그 가이드는,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하지 않았다.
“그 말하면 안 돼.”
대신 이렇게 말했다.
“다르게 살아도, 그건 틀린 게 아니야.”
나는 그 말이 참 좋았다.
비난 없이 말의 방향을 틀어준 그 말.
그때 나는, 누군가의 눈을 바꿔주는 어른의 말이 어떤 힘을 가질 수 있는지를 처음으로 목격했다.
눈으로 세상을 보는 법은, 결국 누군가에게서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