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도, 가난도, 그 아이를 무너뜨리지 못한 이유
지역 청소년 장학금 프로그램을 제작하던 중,
한 인문계 고등학생을 담임교사의 추천으로 만나게 되었다.
광주의 한 영세민 아파트에 살고 있는 그는 의대를 지망하는 학생이었다.
학교에서 집까지 이어진 촬영 내내 그는 말수가 거의 없었다.
하지만 그 조용함 너머엔 숱한 이야기들이 켜켜이 쌓여 있었다.
“광주로 온 건… 살기 위해서였어요.”
어머니의 목소리는 조용하지만 단단했다.
“전 남편의 폭력 때문에 아들과 함께 도망치듯 내려왔어요.
그때 가진 게 아무것도 없었죠. 지금 사는 이 집 가구들도… 다 주운 거예요.
의자, 테이블, 선반까지. 하나하나 닦고 고쳐서 쓰고 있어요.”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그녀의 말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집안은 정갈했다.
다들 놀라고 있을 때 그녀가 작은 웃음을 머금고 말을 이었다.
“우리 아이가요… 저를 원망한 적이 한 번도 없어요.
늘 묵묵히 자기 할 일을 해요. 제 자식이라는 게 그저 감사할 뿐이에요.”
“정수(가명)는 참 대단한 아이예요.”
담임 선생님도 조용히 말을 보탰다.
“전학올 때 개인사를 들었는데, 그런 힘든 환경에서도 상위권을 유지했어요.
그런데 학년이 올라가면서 힘들어하더라고요.”
그러면서 선생님은 장학금 후원 요청 당시를 떠올렸다.
“머리 좋은 아이라도 요즘 세상에 혼자 공부해서 상위권 유지하기 어려워요.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학원에 가서 보강을 하죠.
정수도 조금만 도와주면 성적을 올릴 수 있겠더라고요.
그래서 학교 선배들, 지역 커뮤니티에 손을 뻗었죠.
다행히 많은 분들이 기꺼이 함께해 주셨고, 그렇게 장학금이 이어졌어요.”
촬영 내내 정수는 말이 없었다.
그는 가난했고, 혼자였고, 상처받은 채로 자랐다.
하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버려진 가구로 집을 꾸미던 엄마,
눈에 띄지 않게 장학금을 모은 선생님,
그리고 그를 바라봐 준 몇몇의 따뜻한 시선들.
정수는 혼자가 아니었다. 그 믿음이 그를 일으켜 세웠다.
"당신이 포기하지 않으면, 온 우주가 도울 준비를 한다."
촬영을 마친 순간, 그 말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