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리퍼를 신고 떠난 중년 신사

그가 담긴 것은 무엇일까?

by 한 사람의 깊이

유명한 시민운동가의 장례식장.
생전 약자들의 곁에서 묵묵히 싸워온 ‘진짜 어른’을 배웅하기 위해 많은 이들이 모였다.
정치인, 시민단체 관계자, 지역 원로들까지.
나 역시 방송 촬영을 위해 현장에 있었고, 그곳에서 잊을 수 없는 장면을 목격했다.

빈소 한편에서 조용한 소동이 일었다.
말쑥한 정장 차림의 중년 신사가 신발장을 오래도록 살피고 있었다.
곁에서 조용히 나직이 말했다.


“제 신발이 없어졌습니다. 누군가 신고 가신 것 같습니다.”


그는 얼굴이 알려진 인물은 아니었지만, 오래된 사회단체의 고위급 활동가로 알고 있는 분이었다.
곧 KTX를 타고 돌아가야 한다는 말에 주변이 더 분주해졌다.


“비슷한 신발 아무거나 신고 가세요.”
“시간 없잖아요. 놓치면 다음 기차도 없대요.”
“그냥 편하게 가시고 나중에 연락하시면 되죠.”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선택을 권했다.
그 순간, 그는 조용히, 그러나 단호하게 말했다.


“제 신발이 없다고, 제가 남의 걸 신을 순 없습니다.”
“그분도 집에 가셔야 하잖아요.”


그리고는 장례식장 한편에 놓인 고무 슬리퍼를 신었다.
영정 앞에 다시 한번 고개를 깊이 숙인 뒤, 조용히 기차역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 뒷모습이 유독 오래도록 남았다.


그날 장례식장엔 유명 인사들이 많았다.
하지만 내가 마음 깊이 존경하게 된 사람은, 바로 그 슬리퍼를 신은 무명의 신사였다.

불편함은 누구나 피하고 싶다.
특히 기차 시간에 쫓기고, 멀리 돌아가야 할 길이라면 더더욱.
하지만 그는 불편함을 감수했다.
‘나 하나쯤이야’가 아니라, ‘나부터라도’의 태도였다.


요즘 한국을 두고 외국인들이 말한다.
“지갑을 잃어도 돌아오는 나라.”
“지하철에서 누가 우산을 가져가도 다시 놓고 가는 나라.”


나는 믿는다.
그런 칭찬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그날 슬리퍼를 신은 신사처럼,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불편함을 감수해 온 이들의 선택들이 쌓여,

지금의 우리 사회를 만들었다는 것을.

그분이 남긴 건 신발이 아니라, 우리가 지켜야 할 태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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