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크루아상이 드러낸 큰 진심
언니가 운영하는 작은 빵집. 나는 언니의 요청으로 가끔 카운터를 봐주곤 했다.
그날도 평범한 오후였다.
햇살은 따뜻했고, 빵 굽는 고소한 냄새가 가게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문이 열리고, 한 여성이 들어섰다.
우아한 단발 파마 머리, 고급스러운 코트,
어디서 봤을 법한 디자이너 브랜드의 의상이 단번에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말없이 빵을 고르더니, 만 원어치 정도 계산을 했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 5천 원짜리 크루아상을 집어 들었다.
“이건 보너스로 줄 수 있죠?”
처음엔 농담인 줄 알았다. 하지만 “죄송해요, 그건 따로 드릴 수 없어요”라고 답하자
그녀는 단박에 표정을 바꿨다.
“아니, 겨우 그거 하나 안 된다고? 서비스가 이래서야 어디 장사 되겠어?”
잠시 숨이 막혔다.
그녀의 말투는 무시로 가득했고, 눈빛은 ‘내가 누군지 알아?’라는 뉘앙스를 풍기고 있었다.
나는 정중히 다시 설명했다.
이벤트도 없고, 보너스 제공 정책도 따로 없다고.
그녀는 결국 자신이 고른 빵만 들고, 크루아상은 제자리에 내려놓은 뒤
굳은 얼굴로 가게를 나섰다.
그 일이 끝난 뒤에도 나는 기분이 묘했다.
사람이 '돈을 쓰는 자'의 입장에서 얼마나 쉽게
'일하는 사람'을 무시할 수 있는지를 느꼈기 때문이다.
그리고 몇 달 후. 방송 프로그램 촬영차 한 고등학교를 방문했다.
교장실 문이 열리고, 바로 그 여성이 나를 맞이했다.
“멀리서 오셨죠? 아이고, 귀한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차 한 잔 드릴까요? 요즘 학교 이야기 참 많거든요~”
순간, 눈앞이 아득해졌다.
그녀는 그때의 크루아상 손님. 하지만 전혀 나를 기억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아니, 기억하지 못하는 ‘척’을 했을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놀라웠던 건,
그녀가 한 학교의 ‘교장 선생님’이었다는 사실.
아이들을 가르치고, 모범이 되어야 할 위치.
하지만 그가 보여준 ‘카운터 앞의 얼굴’은,
내게 그 직함보다 훨씬 강한 인상을 남겼다.
나는 그날 이후 이런 생각을 자주 한다.
사람의 품격은 ‘대등한 관계’에서가 아니라,
자신보다 약자에게 어떻게 행동하느냐에서 드러난다는 것.
어쩌면 그날의 크루아상은 그냥 빵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그것을 ‘자격 없는 사람에게도 함부로 요구할 수 있는 권리’쯤으로 여겼고,
나는 그것을 통해 누군가의 인격을 보았다.
크루아상 하나에 인격이 담긴다니 우습게 들릴 수도 있지만,
사실 우리 모두는 아주 사소한 장면에서 자신을 드러내곤 한다.
‘사회적 지위’라는 외투가 벗겨졌을 때,
내가 보여주는 태도는 어떤 모습일까?
그날 이후, 나는 자주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지금 누군가의 카운터 앞에 서 있지는 않은가?
그리고, 나는 정중한 사람인가? 친절한 사람인가?
혹은, 그 둘을 가장하고 있는 사람인가?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이 꼭 고귀한 사람은 아니다.
그리고, 우리가 진짜 존경해야 할 사람은
직함이 아니라 일상의 순간에도 공정하고 예의 있는 태도를 지킨 사람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