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악을 쓰지 않는다,
노래할 뿐이다

세 아이의 엄마이자 활동가, 그녀가 노래로 버텨내는 이유

by 한 사람의 깊이

"잠깐이면 돼요. 금방 끝낼게요."


그녀에게 이렇게 말을 건넨 순간부터,

나는 오늘의 촬영이 결코 ‘금방’ 끝나지 않을 거라는 예감을 했다.
1명의 장애아, 그리고 2명의 비장애 형제를 키우는 엄마.
그녀는 장애아 인권과 교육권을 위한 시민단체 활동가였다.
나는 그녀의 일상과 활동을 담기 위해 집을 찾았고, 그저 짧은 인터뷰 하나면 충분할 줄 알았다.

하지만 촬영이 시작되자마자 예상은 산산이 부서졌다.


카메라를 들자, 아이들이 엄마를 찾기 시작했다.
특히 장애를 가진 아이는 그녀의 등에 매달려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엄마, 엄마~"
"엄마 간식 주세요."

"엄마 스마트폰 하고 싶어요. 폰 어딨 어요?"


결국 촬영팀 한 명이 두 비장애 아이를 놀아주며 달래야 했다.
그 사이 나는 그녀의 옷에 마이크를 달고, 서둘러 구도를 잡고 촬영을 이어갔다.
예정된 질문은 대부분 생략됐다.
그녀의 일상이, 그녀의 몸짓이 이미 그 어떤 말보다 많은 걸 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인터뷰 촬영 대신, 그녀가 아이를 달래며 간식 준비를 하고
다시 작은 책상 앞에 앉아 숙제를 봐주고, 사회단체 활동계획을 점검하는 모습을 담았다.
때로는 아이의 기저귀를 갈고, 때로는 형제 싸움을 말리면서도
그녀는 늘 아이와 사회를 동시에 품고 있었다.


“장애아를 키운다고 하면 다들 불쌍하다는 눈빛을 해요.

근데 전 그렇게 생각 안 해요.
우리 아이는 그냥…

좀 더 많은 도움이 필요한 아이일 뿐이에요.”


그녀는 조용히 말했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은 듯 다시 아이를 안고, 눈을 맞추더니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하루만, 단 하루만 너보다 늦게 죽고 싶다…

이 세상 떠나는 날에 이렇게 말할 거야

살아있는 동안 겁나게 힘들었지만,

그래도 참 행복, 참사랑을 알았노라…

그렇게 엄마는 훨훨 날아가고 싶다…”


나는 조용히 그 모습을 촬영했다.

그건 누군가에게 들려주기 위한 노래가 아니었다.

자신을 다독이고, 하루를 버텨내기 위한 의식처럼 느껴졌다.

그 노래는 그녀가 직접 쓴 것이었다.

어떤 노래도 자신의 심정을 대변해주지 못해

결국 스스로 지어 부르기 시작했다는 노래는 깊은 울림이 있었다.


촬영을 마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나는 계속 생각했다.
오늘 촬영의 어려움

—반복되는 중단, 아이들 소리, 조명 설치 실패, 재촬영—
그 모든 ‘어려움’은 그녀가 매일 겪는 일상의 극히 일부였을 것이다.

그녀는 매일, 한 번도 쉬지 않고
한 아이의 엄마이자 세 아이의 중심으로 살고 있었다.
그리고 동시에,
자신처럼 살아가는 많은 이들을 위해
목소리를 내고, 사회를 향해 손을 뻗고 있었다.


장애를 둔 부모에게 다들 말한다.

“장애아 키우는 건 너무 힘들지 않아요?”
“애가 셋에, 한 아이는 장애라니… 어떻게 견디세요?”

"평생 책임져야 할 텐데... 불쌍해서 어째."


그녀는 그 말에 고개를 젓는다.


"불쌍한 게 아니라… 그냥 함께 살아가는 거예요."


그녀에게 필요한 건 연민이 아니라, 연대였다.

그녀가 감당하는 일상은 세상의 기준으로는 ‘불편’할지 모르지만
그 안에는 진짜 사랑과 희망이 있었다.

나는 그날, 촬영자에서 벗어나
한 사람의 엄마, 한 사람의 활동가,
그리고 한 사람의 ‘살아가는 사람’을 만났다.

그리고 진심으로 기도했다.


그녀가 건너는 이 고요하지만 치열한 다리를,
우리가 함께 건널 수 있기를.

그리고 누군가 이 글을 읽는다면
그녀의 삶에 잠시 발을 들인 나처럼,
그들도 누군가의 짐을 조금은 함께 들어줄 수 있지 않을까?

우리가 전하는 ‘작은 응원’이,
누군가에겐 ‘버틸 수 있는 오늘’이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