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대란을 겪으며 다시 떠올리게 되는 명의(名醫)
2024년 2월 말 이후 시작된 의료대란으로 온 국민이 열악한 의료서비스 속에 큰 불편을 겪었다.
나 역시 병원에 갈 일이 있어 그 답답함을 온몸으로 느꼈다.
긴 대기줄, 짧아진 진료 시간, 예전 같지 않은 진료 환경….
그 순간 몇 해 전, ‘명의 프로젝트’를 촬영하며 만났던 한 위암 전문의가 떠올랐다.
의료 현장이 흔들릴수록, 그가 보여준 태도와 철학이 더 절실하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처음 만난 건 외래 진료실이었다.
그는 환자에게 최대한 쉬운 단어로, 친절한 목소리로 설명했다.
의학적 지식을 뽐내려는 듯한 태도는 전혀 없었다.
환자가 알아듣고 안심할 수 있도록, 차근차근 풀어주는 모습이었다.
잠시 진료가 끝난 뒤, 나는 호기심에 물었다.
“교수님은 왜 그렇게 자세하고 친절하게 설명하세요?
보통 의사들은 바빠서 짧게 말하고 끝내시잖아요.”
그는 웃으며 이렇게 답했다.
“사실 병원 지침이기도 해요.
그런데 지침이 아니라도 전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환자가 자기 병을 이해하지 못하면 불안만 커지잖아요.
치료 과정에 동참하려면 설명부터 쉬워야 하죠.”
그 짧은 대답 속에서,
환자를 단순히 치료 대상이 아니라 ‘동행자’로 대하는 그의 철학이 엿보였다.
며칠 뒤, 촬영을 위해 수술실에 들어갔다.
수술 준비가 한창이었는데, 카메라가 등장하자 의료진들이 긴장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때 그는 농담을 던지며 분위기를 풀었다.
“와~ 카메라, 환자보다 제가 더 떨리네요. 혹시 제 얼굴이 너무 크게 나오면 어떡하죠?
수술보다 편집이 더 무섭네요.”
의료진 사이에 웃음이 번졌고, 금세 긴장이 사라졌다.
그는 그렇게 사람들을 편안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그런데 내 눈길을 잡아끈 건 다른 장면이었다.
수술을 마친 휴식 시간, 그는 복강경 기구를 붙잡고 있었다.
이미 수백 차례 수술을 집도했을 텐데, 구슬땀을 흘리며 반복 훈련을 하고 있었다.
나는 놀라서 물었다.
“교수님, 이미 수차례 수술하셨을 텐데요. 아직도 이렇게 연습하세요?”
그는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며 단호하게 말했다.
“아무리 익숙해도 환자 앞에서는 작은 실수도 용납될 수 없습니다.
수술은 늘 같은 패턴 같아 보여도, 환자마다 상황이 다 달라요.
의술은 기술이고, 기술은 연습으로 다져져야 합니다. 저는 아직도 부족합니다.
그래서 연습을 게을리할 수가 없어요.”
그 말은 짧았지만, 강하게 가슴에 꽂혔다.
의술은 재능이나 경험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는 것. 끝없는 연습 속에서만 환자의 생명을 지킬 수 있다는 것.
촬영을 마치고, 후원 프로그램 덕분에 친해진 병원 사회복지사와 차 한잔을 하며 그 의사 이야기를 꺼냈다.
사회복지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저도 한 번 큰 도움을 받았어요. 부서 간 협조 문제로 곤란한 상황이 있었는데,
교수님이 직접 중재해 주셨거든요. 어느 한쪽 편을 드는 게 아니라,
양쪽 이야기를 다 들어주신 다음 합리적인 방법을 찾아주셨어요. 덕분에 상황이 잘 해결됐죠.”
그 순간 나는 확신했다.
내가 촬영장에서 본 그의 모습은 결코 연출이 아니었다는 것을.
그는 이미 ‘명의 프로젝트’에 선정될 만큼 실력으로 인정받은 인물이었다.
하지만 내가 그에게서 더 크게 느낀 건,
끝없는 자기 훈련, 환자와 동료를 존중하는 태도, 그리고 책임감 있는 리더십이었다.
의료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결국 환자가 의지하는 건 ‘사람’이다.
진정한 명의란 단순히 수술을 잘하는 의사가 아니라,
기술·태도·철학을 두루 갖춘 사람이라는 사실을 나는 그를 통해 배웠다.
의료대란 속에서 다시금 생각한다.
환자와 의료진 모두가 신뢰할 수 있는, 이런 명의가 우리 사회에 더 많아지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