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티에서 다시 본 한국인의 또 다른 얼굴
요즘 세계 곳곳에서 K-팝을 따라 부르고, 한국 드라마와 영화가 국경을 넘어 사랑받는다.
나 역시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새삼 자랑스럽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그러다 문득, 10여 년 전 아이티의 작은 도시에서 마주했던 장면들이 떠올랐다.
지진의 상처가 채 아물지 않은 아이티의 작은 도시.
아침 햇살이 퍼지기도 전에 이미 마을 입구에는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내과, 소아과, 산부인과, 정형외과, 피부과, 감염내과….
한국에서 온 의료진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한국 같으면 금세 치료받고 회복될 질병들조차,
이곳에서는 방치된 채 더 큰 고통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열흘째 열에 시달리던 아이,
출산 후 합병증으로 힘들어하던 여성,
작은 상처가 감염으로 악화된 환자들….
“이곳에서는 우리가 가진 약과 장비가 너무 부족합니다.
그래서 가능한 건 조금이라도 더, 환자에게 해주려 합니다.
설명 한 마디라도 더, 약 한 알이라도 더.”
의료진의 목소리에는 절실함이 묻어 있었다.
그러나 진료 현장에서 내 시선을 가장 오래 붙잡은 사람들은 따로 있었다.
아이티에 의류공장을 세우고, 현지와 함께 살아온 한국 기업의 직원들이었다.
그들은 봉사의 자리를 마련한 주최자에 머무르지 않았다.
약국과 진료실 사이의 번거로움은 도르래 장치로 해결했고,
링거에 묶여 움직이지 못하던 환자들을 위해 바퀴 달린 거치대를 만들었다.
몰려드는 사람들로 혼잡이 심해지자 번호표를 나눠주고,
동선을 설계해 진료가 매끄럽게 이어지도록 했다.
“여기서는 작은 불편이 곧 환자의 큰 고통이 됩니다.
우리가 만든 장치 하나가 고통을 덜어주었다면, 그걸로 충분합니다.”
“쇠붙이 하나, 종이 한 장이 환자의 불안을 줄여줄 수 있다면…
그게 우리가 여기 있는 이유 아닐까요.”
땀에 젖은 작업복과 거친 손길 속에서, 나는 의료진 못지않은 헌신을 보았다.
현지인들은 그들을 “미친 한국인”이라 불렀다.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에서도, 필요하다면 무엇이든 뚝딱 만들어내는 사람들이라는 뜻이었다.
그러나 내게 그것은 조롱이 아니라, 가장 뜨거운 찬사였다.
아이티의 작은 도시에서 나는 한국인의 또 다른 얼굴을 보았다.
환자의 아픔을 덜어주고, 의료진의 손을 가볍게 하며, 끝내 희망을 만들어낸 얼굴들.
요즘 세계 무대에서 한국 문화가 주목받는 이유를
단순히 음악이나 드라마의 화려함으로만 설명할 수는 없다.
그 밑바탕에는 어려움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끈기,
눈앞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려는 주도성,
그리고 나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함께 살아남아야 한다는 공동체적 마음이 흐르고 있다.
아이티에서 본 의료진과 기업인들의 모습은 바로 그 증거였다.
자원이 부족해도 방법을 찾아내고, 조건이 열악해도 끝내 해내는 힘.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창의성과 연대가 한국인의 저력이자,
오늘 우리가 세계에서 인정받는 진짜 이유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