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초희 Nov 24. 2021

'엄마'라는 이름의 단어

평생 상실감일 수밖에 없는 그 단어

별 탈 없어 보이는 회사생활이었다.

일은 차차 몸에 익어갔고 요령도 생겼다.

잠시의 업무 공백, 그 잠시의 쉬는 시간에도 엄마 생각으로 눈물이 고이기도 했지만 회사 자체는 버겁지 않았다.

전 날 펑펑 울어 출근을 못한다던지, 내 처지를 비관하여 생각이 많은 밤을 보내 지각을 한다던지 하는 문제도 전혀  없었다. 성실은 엄마에게 배운 것이니까.

다른 사람들이 출근할 시간에 출근을 하고, 월급을 받을 땐 나 역시 월급을 받아 조금씩 저축도 하면서 보통의 사람들과의 큰 차이 없이 생활하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시간들이었다.


22살 어린 나이인 나보다는 모두 언니였던 직원들.

면접 때 가족관계에 엄마가 없고 이런 일을 겪은 지 3개월밖에 되지 않았다는 말을 해서인지 가까운 직원들은 내가 엄마를 여읜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에겐 나의 '사건'이 큰 불편함이 되지 않았고 그 점이 가장 좋았다.

그래서 언니들과 밥을 먹고 대화를 나눌 땐 '엄마'라는 단어가 거리낌 없이 나왔지만.


그녀들의 나이 20대 후반-30대 초반

그녀들의 이야기엔 엄마와 함께한 일상이 많았다.

쉬는 시간에도 엄마 생각을 하면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그래도 그러한 이야기를 듣는 것마저 괜찮았다.

사실 나는 되게 주눅 들어 있고 맘 속 깊이 한없이 외로운 사람이지만

그들과의 관계에선 크게 상관없는 바여서 평범한 사람인 체 그들과 함께하면 된다는 게 오히려 위로가 되는 시간들도 있었다.

이따금씩 힘들 때면 슬픔은 나의 몫이고 이런 힘듦은 내가 이겨내야 할 몫이라는 자기 체면을 했던 것 같다.

하지만 견뎌지지 않는 말이 있었다. '친정엄마'라는 단어.




22살. 결혼은 선택지에 없었고 오직 엄마가 없음을 극복하려 노력하던 나였다.

하지만 친정엄마라는 단어를 듣자

'지금 내게는 엄마가 없지만 미래의 나에게는 친정엄마도 없겠구나'라고 가슴이 쿵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결혼 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그녀들의 친정엔 늘 엄마가 있었다.

결혼 후 남편과 엄마를 모시고 하는 나들이, 여행, 그리고 반찬을 얻어온다던지 맛있는 걸 먹으러 다닌다던지라는 일상적인 대화 모두에 친정엄마가 등장했고 난 그녀들과의 대화에서 엄마를 떠올렸다. 그럴 때면 조절할 수 없는 슬픔 감정에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도 같았지만 자리를 벗어나진 않았다.

여러 번 도망치듯 자리를 피하다 보면 그녀들에게 한없이 주눅 든 내 모습을 들킬 것만 같았다.

내가 괜찮은 척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인 회사에서 나의 처지를 들켜버린다면 정말 견딜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이전 09화 공기 같던 엄마의 칭찬이 없으니 주눅 들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