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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희 Nov 23. 2021

공기 같던 엄마의 칭찬이 없으니 주눅 들었다.

엄마와 이별 후 재취업

엄마의 입원과 함께 회사를 관뒀으니 집에 있는 시간들이었다.

뭐라도 하고 싶었지만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내 의지로 뭔가를 하기엔 의욕이 없어 나도 아빠와 별반 다르지 않게 과음과 규칙적이지 않은 일상을 보냈다.

그저 우리 가족 밥을 해 먹이는 일 그것에 몰두하던 나날들이었다.

그러다 번뜩 3개월이 지났는데 엄마도 직장도 없이 늘어져만 있는 나를 견딜 수 없어 워크넷에 이력서와 자소서를 업데이트해뒀고 곧바로 면접 제의를 받아 취업했다.


취업난은 늘 있는 일.

쉽게 이뤄진 취업에 기분이 좋았다. 아빠 역시 언제 면접을 보고 온 거냐며 한시름 덜었다고 좋아했다.

집 가깝고 번듯한 직장, 누가 들어도 잘했다고 좋겠다고 말할 수 있는 직장에 취업해버렸다.


먼저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않는 아빠는 동생이 전교 1등을 해도 '걔 공부 못해 별 볼일 없어'라고 말하는 사람인데 회사에 초희가 좋은 직장에 취직했다고 말했다고 했다.

3개월 간 엄마와의 이별 못지않게 장녀인 내 걱정도 깊었는지 정말 오랜만에 아빠가 웃는 모습을 봤다


모든 게 순조로운 듯 출근하고 일을 배우고 적응해나갔다.

집에 늘어져 있을 땐 엄마가 TV를 보던 모습, 부엌에 있던 모습, 내게 하던 잔소리 등이 떠올라 괴로웠다면 회사에선 긴장을 늦출 수 없으니 괴로움이 덜했다. 모든 게 정상화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 평범한 사람이 되어가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집에 돌아오면 적막은 여전했다.

셋이 앉아 맛있는 걸 먹기도 했지만 깊은 어둠이 내려앉은 우리 집은 각자 방문을 닫고 들어가 지냈으며 아빠가 취해 집에 오는 날은 억지로 잠든 척을 하다 잠이 들었다.


아주 어릴 적부터 직장인이 돼서까지의 나의 일상은

'오늘은 이런 일이 있었고 이 사람이 이랬어' 하며 엄마와 대화를 나누던 삶이었는데 취직을 하고 다시 사람들 속에 들어갔지만 그런 일상은 두 번 다시 만들 수 없으니 외로웠다.


하지만 그렇다고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 합리화를 해서라도 버텨야 했다. 

다시 집에 늘어져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엄마만 그리워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엄마가 돌아가신 뒤 3개월 만의 재취업을 내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세뇌시켰다. 

'이 직장은 엄마가 준 기회이다', '이 회사는 엄마가 준 선물이다'라는 생각으로 열심히 버텼다.


첫 사회생활, 회사에서 힘들어하고 적응 못하던 날 보며 함께 울었던 엄마가 

이제야 번듯한 회사에 취업해 씩씩하게 적응하던 내 모습을 봤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너무도 컸다.

일과 중 문자로도 집에 와 대화로도 늘 나를 향하던 공기 같던 엄마의 칭찬

엄마가 기뻐하며 칭찬과 응원을 해줄 순간마다 엄마가 없다는 게 날 주눅 들게 했지만 

그래도 대부분의 시간을 사람들 틈에 일하며 평범함과 가까워지려는 눈물겨운 노력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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