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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희 Nov 22. 2021

나의 슬픔이 창피했다

엄마가 죽고 언제까지였는지도 모를 긴 시간 나는 참 작아져있었다.

우리 집에 닥친 불행이 창피하다고 느꼈다.

누가 봐도 평생을 힘든 시간을 겪어야 한다는 것 역시 그랬다.

내가 무언갈 잘못한 게 아닌데, 준비 못한 이별에 슬퍼하기도 힘든데, 창피함까지 느껴야 한다니 여전히 나도 나를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그 당시 나는 사람들을 만나는 게 창피하여 버거웠다.


장례식에 와준 고마운 친구들에게 인사를 하기 위해 약속을 잡았다.

버스를 타고 친구들을 만나러 가는 짧은 시간에도 난 어찌해야 할 바를 몰랐다.

고맙단 인사를 어찌 건네야 할지 어떤 얘기를 나눠야 할지.

이런 고민들을 안고 약속 장소에 나갔는데 어린 나이였던 나의 친구들도 마찬가지 고민을 했던 것 같다.

친구들은 꽤나 경직되어 있었고 내가 먼저 말을 꺼내기까지 어색한 침묵을 지키는 친구도 있었다.

내 슬픔이 친구들에게 무거운 불편함이 되어야 한다니 못 견디게 미안했다.

그래서 아무 일 없던 듯이 친구들을 대했다.

평소 민폐를 끼치는 것을 견딜 수 없어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이었다.

그 결과 친구들과 헤어질 무렵 '네게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랐는데 괜찮아 보여 다행이야'라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그 이후 지금까지 난 단 한 번도 친구들에게 힘든 내색을 해본 적 없다.




엄마가 돌아가신 뒤 보름쯤 후 내 생일날이 되었다.

난 밖에서 술을 먹고 집 앞에서 펑펑 울다 집에 들어갔다.

너무 놀라웠던 광경은 평생 생일이라고 생일 케이크를 해본 적 없는 우리 집에서 아빠와 남동생이 케이크를 사두고 기다렸다는 점이었다.

엄마가 떠나고 바로 있는 딸의 생일

미역국은 없어도 케이크를 챙겨주려는 아빠의 진심에 난 전혀 울지 않은 척 기뻐하였다.

하지만 초를  뒤 아빠와 남동생 그리고 나는 급하게 각자의 방으로 들어갔던 것 같다.

핸드폰 사진을 보니 내 눈은 너무나 뻘겋게 부어 누가 봐도 오열한 붕어 눈 그 자체였다.

슬프면 슬퍼하면 그만인데 시뻘건 내 눈이 가족들에게 또 창피했다.




엄마는 49세 되던 해 세상을 떠났고

아빠는 51세 되던 해 아내를 떠나보냈다.

동생은 17살, 나는 22살 되던 해 엄마와 영원한 안녕을 했다.


걷기와 등산을 좋아하고

 한 방울 입에 못 대고

건강한 반찬만 좋아하던 우리 엄마가 왜 짧은 생을 살다 떠나야 했는지 신이 원망스러웠다.


태어나 처음 보는 아빠의 눈물은 낯선 불편함이었고 그 눈물의 무게는 내게 참으로 무거웠다.

그래서 나는 아빠와 친구들 앞에서 울어본 적이 없었다. 내 슬픔이 누군가에게 무거운 분위기가 되길 원하지 않았다.

그렇게 혼자 견디다 보니 엄마의 짧은 생이 불쌍하던 내게

남겨진 내 삶이 불쌍해지는 짐 하나가 더 내려앉았다


돌이켜보면 누군가에게 의지하지 못한 내가 신기하다.

하지만 솔직히 털어놓고 부둥켜안고 한바탕 해봤자 완벽히 털어지지 않는 슬픔이란 생각은 여전하다.

슬픔이 나눠진다면 참 좋겠지만 엄마의 '죽음으로만' 울어야 할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나와 엄마와 쌓은 추억이 많으니 그것과의 헤어짐.

그것은 오롯이 내 몫의 슬픔이다.

그리고 그땐 나도 몰랐지만 그 극복은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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