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초희 Nov 19. 2021

엄마를 잃은 지 얼마 안 된 당신에게

나는 이 글을 쓰면서 남편이란 사람에 대해 쓰지 않으려고 한다.

엄마가 없이 엄마가 됐음에도 열심히 살고 있는 나의 글이 필요한 당신에게 오롯이 내 이야기만 하고 싶다.

게다가 '내 남편 연봉이 억에 가까워요', '나밖에 모르는 바보예요'라 한들 엄마 없는 설움을 채운진 못한다는 걸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남편에 대한 글을 배제한들 '넌 형제가 있잖아', '유년시절이 불행하지 않았잖아', '너는 평범하게 자랐잖아'라고 한다면 할 말이 없다.


하지만 엄마를 잃은 슬픔에만 온전할 수 없게 만들었던 외적인 상황들은 모두 비슷하지 않을까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




엄마를 잃은 직후 나에겐 가족이란 말이 가장 잔인했다. 그래서 그들과의 인연을 끊었다.

이 글을 쓰는 지금까지도 이런 선택이 나의 나날들에 다행이란 생각은 변함없다.


안 그래도 힘든 시기,

지나친 걱정으로 과한 쓴소리로 당신 마음을 괴롭게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게 가족이라 한들 먼저 관계 정리를 하는 게 어떨까 싶다. 미래의 당신이 괜찮다 느껴질 때 연락하여 관계 회복을 위한 노력을 할지라도.


당신은 힘든 일이 겹겹이 쌓인 상황에 놓여있다.

당신의 회복에 어떤 사람들로 하여금 지금 당신의 상황이 더 힘들게 되진 않았으면 좋겠다.


지금 당신에게 그만 슬퍼하라고 미련 떨지 말라며 다그치는 사람은 결코 없어야 한다.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힘든 시간, 지금의 슬픔이 가실 때까지 마음을 다해 힘들어하기도 벅차다.




깊은 슬픔에 어떤 날은 '죽고 싶다', '죽으면 엄마를 만날 수 있겠지'라는 생각이 드는 날들도 있을 것이다. 

그럴 땐 누군가 한 명이 잘 못되면 그 파장은 남은 사람들에게 온전히 남겨진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 

지금 당신도 엄마의 부재에 죽고 싶을 만큼 힘들 테니까. 

당신이 잘 못된 생각을 한다면 당신 주위의 사람들 역시 지금의 당신처럼 힘들 것이다. 

당장 내 곁에 없는 엄마보다 남아있는 사람들을 생각해야 한다.


난 당시 아빠와 남동생보다 엄마를 더 사랑했다. 하지만 죽은 엄마보다 남아있는 나의 가족이 더 힘들다는 걸 뼈저리게 깨달았기에 나는 살아가야만 했고 이왕이면 잘 살아야 했다.

와이프의 빈자리가 클 아빠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아 평범한 딸이 되고 싶었고

엄마의 빈자리가 클 동생에겐 어쩌면 내 용돈이 많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 열심히 일해야 했다.




"난 우리 아버지 돌아가셨을 때 실감이 안 났어.
그러다 몇 달쯤 지나 실감이 나는데 그제야 슬프더라고"

막내 외삼촌이 장례식장에서 내게 해 준 말이다.


태어나 가장 처음 만난 엄마,

평생 이별은 생각해보지도 않은 엄마가 떠났다.

미친 듯이 슬픈 날도 있었지만 견딜 것 같은 날도 있었다. '내 삶은 앞으로 이렇게 힘든 나날들이겠구나'라고 생각하며 지냈다. 하지만 몇 달뒤 늦은 실감에 나는 매일같이 더 밑일 수 도 없는 지하로 가라앉았다. 그때 외삼촌이 해준 저 말이 떠올랐다. '아 이거구나' 하고


엄마를 보낸 지 얼마 안 되는 당신에게

어떤 날은 힘내라는 위로보다 사실을 알려주는 게 도움이 될 때가 있어 이 말을 전한다.

지금의 아픔은 시작일 뿐이라고.











이전 06화 여전히 가장이었던 아빠는 방황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