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씩씩한'척'하는 사람이다.
장례식 내내 그랬다. 정말 한 방울의 눈물을 흘리지 않았고 오히려 나를 찾아온 친구들이 울었다. 그럼 내가 달래주었다. 찾아와 준 친구들이 고마워 웃다가 "호상도 아니고 엄마가 일찍 돌아가셨는데 웃는 건 좀 아니지 않을까"라는 친척 어른의 얘기를 들었을 정도로 멀쩡하게 보냈다.
하지만 아빠는 달랐다.
장례식 내내 찾아와 준 모든 사람과 술을 마시며 슬픔에 젖어있던 아빠는 장례가 3일 차로 넘어가던 새벽 큰 울부짖음과 같은 소리를 지르며 잠에서 깼다. 아빠의 형제들이 달래 눕혀 다시 잠에 들었고 나중에 동생과 내 앞에서 그날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장례식장 코너에서 엄마를 보았다고
진짜 마지막 인사를 하러 온 듯 아빠를 바라보고 있었다고 한다.
아빠는 나도 데려가라고 말했다고 한다. 우리에게 들렸던 아빠의 울부짖음이 그 소리였다니.
엄마가 돌아가시고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아빠는 죽은 사람 옷을 가져가는 업체를 불렀다.
돈을 쓸 줄 모르는 검소한 엄마였지만 꽤 많은 짐이 나왔다.
엄마가 시집올 때 해 온 솜이불도 한몫했다. 내가 기억하는 엄마에 대한 물질 적인 정리는 그뿐이었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그 당시 아빠는 장례식장, 화장터, 추모관, 그리고 사망신고, 재산정리, 보험금 수령 등 내가 지금도 다 알지 못할 많은 정리를 혼자서 했을 것이다.
난 아빠 카드로 장을 봐서 아빠와 동생을 먹이는 것 외엔 내가 더 할 수 있다는 게 알지 못했다.
그저 술에 절어 사는 아빠가 어려웠다.
어떤 날은 예전 내 아빠로 돌아온 것 같았지만 어떤 날은 가까이 갈 수 조차 없는 남보다 무서운 아저씨였다.
아빠는 여러 사람들과 술을 마셨다.
당시엔 연락하던 형제들, 그리고 엄마가 만나는 걸 싫어해 멀리하던 고향 친구들, 오랜 사회친구들과 함께 늘 취해 있었다.
아빠는 그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했을까?
엄마에 대한 미움도 야속함도 있었을 것이다. 더 잘하지 못한 후회도 있었을 것이다.
앞으로 애들과 셋이 살아야 한다는 두려움도 있었을 것이다.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도 있었겠지.
어떤 날은 아빠가 엄마를 어디까지 그리워하는지 알게 된 일도 있었다.
우리 집, 옆집 아주머니와 엄마는 내가 유치원 때부터 타지에서 친구가 되어 내가 22살이 될 때까지 친구로 지냈다. 당연히 오랜 시간을 알고 지냈으니 좋지 않은 날도 있었을 것이다. 소심하던 엄마는 본인이 직접 말하지 못할 그 아주머니에게 섭섭한 점을 나와 아빠에게 푸념하곤 했었다.
어느 날 아빠는 그 옆집 아주머니, 아저씨에게 부축받아 집에 들어왔다.
잔뜩 취해 신발장이 넘어질 정도로 술이 돼 있던 아빠에게 아주머니는 소리를 지르며 서운함을 표현했다.
"그래요! 애들 엄마 그렇게 된 거 다 제 잘못이에요! 속이 시원해요?
초희 아빠 힘든 건 다 이해하지만 저는 안 힘들겠어요? 저한테 꼭 그렇게 말해야 속이 시원하냐고요!"
술은 어디까지 아빠를 데려다 놨던 걸까.
'내가 더 신경 썼더라면'
'아프다고 할 때 더 좋은 병원에 데려다줬더라면' 꼬리의 꼬리를 무는 많은 후회가 있었겠지.
'내가 먼저 미안하다고 할걸', '잘해줄걸 더 많이 사랑해줄걸' 본인을 자책하며 괴로웠겠지.
'돌팔이 새끼, 병원을 그렇게 다녔는데 암이 그 정도로 퍼진 걸 몰라?', '그 여편네 때문이야. 이기적인 여편네' 하며 남에게 그 핑계를 떠넘겨야 아빠가 살 것 같은 날들도 있었겠지.
그 이후 우리는 다른 동네로 이사 왔다.
하지만 아빠는 여전했다. 아빠는 지독한 주정뱅이가 되어 있었고, 난 복도에서 아빠 구두 발소리가 들리면 무서워서 이불을 덮어썼다. 아빠는 폭력적인 사람이 아니다. 그저 밤늦게 술이 취해 들어오면 나와 동생을 거실로 불렀다. 그리고 끝없는 눈물을 쏟아냈다. 본인에 대한 가여움과 엄마를 그리워하는 말들은 너무도 끝이 없어서 우리의 내일에 지장이 생길 정도였다. 난 잠든 체했고 고지식하여 나보단 아빠를 더 참아주던 동생 역시 어느 순간 나와 같아졌다.
죽음에 대한 가장 큰 슬픔은
배우자를 잃은 슬픔이라고 한다.
아빠는 그 해 1년 중 반년만 겨우 출근할 정도로 슬픔을 이겨내지 못하는 주정뱅이로 살았고 난 대화로도 장문의 문자로도 설득이 안 되는 아빠와 사는 집이 숨막히게 싫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