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초희 Nov 25. 2021

산사람인 아빠보단 내겐 오로지 엄마였다.

아빠의 재혼

어떤 때는 이렇게 조금씩 아물어가는구나 싶어 하며 회사 밖에서도 평범히 웃는 날들이 늘어갔다. 아빠와 남동생 그리고 나, 우리는 함께 맛집 외식을 하기도 했고, 엄마와 함께 했던 콘도에 여행을 가기도 했다.


그즈음 아빠는 말했다.

엄마와 이 집에서 함께 칼국수 면을 뽑아 먹던 때가 가장 행복했다고.


아빠가 회상한 그 시절은 나와 동생이 중학생, 초등학생 때의 시절로 면을 좋아하는 우리 가족이 함께 국수를 만들어 먹던 주말이었다. 아빠는 직접 반죽을 하여 국수 뽑는 기계에 그 반죽을 넣어 손수 돌려 면을 뽑아냈다. 그럼 엄마는 끓이던 육수에 국수를 넣었고 새콤달콤하게 양념한 김치를 가운데 두어 점심을 완성시켰다.


주말이라고 학원을 가는 일도 없었고, 남자 친구와 논다며 주말에 집을 비우는 일도 없었던 자녀들의 어린 시절. 젊은 엄마, 아빠가 함께 음식을 만들면 네 가족 모두 함께 둘러앉아 밥을 먹던 그 시절을 아빠는 가장 행복했다고 말했다.


행복한 시절을 툭 던지듯 말하며 더 이상 울지 않는 아빠를 보며 치유는 어려워도 극복은 할 수 있겠다 싶었던 시간이었다.





하지만 아빠는 더 이상 우리 앞에서 울지 않았던 것뿐이지 여전히 한없이 외로운 사람이었다.

엄마가 떠나고 3년이 안된 시점에 재혼을 거론할 만큼.


믿기지 않는 상황이었다.

죽을 때까지 내 가족은 죽은 엄마와 살아있는 아빠, 남동생, 나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3년의 시간 내내 괜찮은 날보다는 괜찮지 않은 날들로 힘들어했던 내게 너의 고통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며 벼락이 치는 순간이었다.


아빠는 혼자이고 싶지 않다고 했다.

한없이 외롭고 힘들다고 했다.

하지만 아빠의 막한 감정 전달로는 다른 여자를 집으로 데리고 온다는 말이 내겐 배신으로 느껴졌다.


엄마를 생각하면 어떻게 이럴 수 있냐고 화를 냈고 아빠는 한 번을 화내지 못했다.

이렇게 빠른 재혼은 잘못됐으니까,

우리에게 그리고 엄마에게 정말 잘못하는 거니까.


엄마를 배신했다고 느끼던 감정들은 우리를 향한 배신으로 느껴졌고 어떤 것에도 집중할 수 없었다.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엄마를 생각하며 울었고 그다음으로 불쌍한 건 우리라는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가족에게도 친구에게도 기대지 않고 3년에 가까운 시간을 씩씩한 척 견뎠는데  어떻게 아빠라는 사람이 이럴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알음알음 아는 사람도 아닌 생판 모르는 사람을 아빠에게 소개해준 친척을 저주하고 원망했다.

어떻게 참고 견딘 회사인데 회사생활이 위태로울 만큼 스트레스를 받았다.

엄마의 제사를 제외하고는 처음으로 집안일로 조퇴를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치의 화를 내며 방법을 찾았다.

동생과 따로 나와 살며 아빠를 안 볼 작정으로.


수없이 많은 고함과 윽박.

아빠는 언젠가 나지막이 말했다.



"너는 어떻게 늘 그렇게 엄마만 생각하냐.

그럼 나는...

나는 안 불쌍하냐?"





이전 10화 '엄마'라는 이름의 단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