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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희 Dec 01. 2021

모든 시간 나를 버티게 한 엄마의 말로 버텼다

셀 수 없이 많은 방황과 절망이 가득한 20대 초반이었다.

엄마의 죽음, 아빠의 재혼, 도망치듯 시작한 독립.

난 대부분의 시간 엄마의 기억과 함께였다.


토요일 점심 따뜻했던 어느 날

엄마와 나는 햇볕이 잘 드는 식탁에 마주 앉아 

'대학 신입생 제출서류는 별게 다 있네'하며 심리검사(?)를 함께 하고 있었다.

'죽고 싶단 생각을 해본 적 있는가?'라는 질문 앞에 

우물쭈물되던 내게 엄마는 나의 체크가 그어지기도 전 말했다.

"세상에 죽고 싶다는 생각 안 해 본 사람이 어디 있니?"






엄마가 없는데 재벌이라고 한들 세상 전부의 사랑을 받고 자랐다한들 어떻게 죽고 싶단 생각을 해보지 않겠는가. 그 어떤 상실감보다 깊고 공허한 엄마와의 이별 앞에서 무너지는 상황은 셀 수 없이 많았다.


난 어떤 엄마와 딸의 사이보다 엄마와 가까웠다.

못 할 이야기가 없었고 나누지 못할 고민이 없었다.

그런 엄마가 없으니 너무나 힘들어서 살아내지 못할 것 같았다. 

어찌해야 다시 엄마를 만날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빠져있을 때가 많았다.


엄마의 말대로 엄마도 죽고 싶다고 생각한 시간이 있었을 것이다.


엄마는 누누이 농담처럼 말했다.

아빠와 선을 봤을 때 들었던 아빠네 땅 면적이 실제 시집와보니 너무도 작아 사기 결혼을 당했다고. 그래서 정말 가난한 결혼생활을 시작했다고.

이것은 고지식하고 부잣집 딸이었던 엄마에겐 아마도 큰 스트레스였으리라.


없이 시작한 결혼.

빠는 주 6일 새벽부터 야간근무까지 직장에 있어야 해서 홀로 나를 키웠어야 할 때도,

고향과 멀어져 낯선 동네에 살림을 차리고 선 본지 얼마 안 된 아빠와 부부싸움을 했을 때도, 

소심해서 식당 종업원조차 못 부르는 엄마가 늦은 맞벌이를 시작하여 사회생활을 해야 했을 때도.


엄마가 없어 어떤 순간 엄마는 죽고 싶게 힘들었냐고 물어볼 수 없지만 

이 외의 어떠한 순간에도 엄마는 '힘들다. 어렵다. 살기 싫다'라는 생각을 했을 수 있다.


물론 내가 생각하는 모든 순간들에

"야! 너 엄마 그런 사람 아니야!"라고 말해 줄 수 있는 엄마가 없어 나의 오해라 한들

엄마도 사람이기에 힘들어 죽고 싶단 생각을 했을 텐데 정말 죽고 싶지 않던 순간 죽어야만 했다.


엄마는 제일 살고 싶을 시간 죽었다.

부부가 힘을 합쳐 대출을 모두 갚고 저축도 한다며 기뻐하던 시절

아들에게 바랐던 성실과 상위권 성적을 모두 유지하던 시절

내 딸과 아들이 TV에 나오는 연예인들보다 더 예쁘고 멋있다며 늘 우리 얼굴을 바라보며 행복해하던 모습

때가 되면 외식을 하고 나들이를 다니며 일과 가정의 조화가 완벽하던 시기 갑자기 죽게 되었다.


난 힘들었던 모든 시간에 "세상에 죽고 싶다는 생각 안 해 본 사람이 어디 있니?"라고 아무렇지 않다는 듯 말하며 나 역시 그 물음에 yes를 체크했음에도 대수롭지 않아 하던 엄마를 떠올렸다.


그 속의 엄마는 결코 "너 힘들면 삶을 포기해도 돼"라는 말을 하고 있지 않았다.

"다들 그래, 심지어 엄마도 그래"라며 따뜻한 햇볕처럼 날 위로하고 있었다.


그 위로는 '지금의 힘든 시간 나쁜 생각이 드는 건 당연하다', '내가 미쳐버린 게 아니고 모두 그럴 수 있다',

'지금은 다른 때보단 좀 더 큰 시련일 뿐 시간이 지나 극복될 것이다'라는 생각으로 버틸 수 있는 시간을 주었다.


난 반쯤의 시간은 씩씩한 척으로

나머지의 시간은 실제 씩씩하고 단단해져 가며 엄마가 그려온 매일의 내일을 살아갔다.


엄마가 보고 싶었을 웨딩드레스 입은 나의 모습도 마주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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