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초희 Dec 08. 2021

시어머니와 시누이

아빠와 연락을 끊고 사는 1년의 시간은 나쁘지 않았다.

아빠의 슬픔이 무거워 자는 척을 할 필요도

가족들에게 짐이 될까 봐 울지 않은 척을 할 필요도 없던 시간

즐거우면 즐거운대로 가족이 그리우면 그리운 대로 내 맘을 온전히 나를 위해 쓸 수 있었다.


그 시간들로 인해

사소한 일도 '난 엄마가 없고 아빠는 우리를 배신했어'라는 결론으로 극에 달했었던 나는 없었다.


그렇게 1년이 지난 어느 날 밤 아빠에게 전화가 왔다.


"아빠 본 지 오래됐지?"


자연스레 아빠와 다시 만나게 되었다. 1년 만에 보는 아빠였지만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밥을 먹고 술을 마셨고 평범한 가족처럼 원망 없는 대화를 나눴다.

'이게 가족이구나'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나 역시 새 가족을 만들 준비를 했다. 

늘 대비해 온 단어인 '친정엄마'가 필요한 결혼

어찌나 걱정하고 대비해 온 덕인지 '친정엄마'없이 씩씩한 결혼 준비는 단숨에 흘러갔다.



난 많은 대비를 한 결혼이지만 아빠는 달랐다.

난 '엄마'가 아닌 '친정엄마'에 대한 대비를 따로 해두었지만 여전히 아빠는 '아내'를 잃은 사람인채로 내 손을 잡고 결혼식 입장을 하였다. 내 손을 남편에게 건넨 아빠는 바로 울음을 터뜨렸다. 짧은 버진로드에서 어떤 감정이 치밀었는지 후드득하고 떨어지던 눈물.


아빠는 그날 밤에도 남동생 앞에서 정말 많이 울었다고 한다.

엄마에 대한 그리움과 나에 대한 아쉬움 그 모든 복합적인 마음을 여린 아빠가 견디긴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날 이후 아빠는 지금까지의 모든 시간을 잘 견디고 있다. 

언젠가의 미래에 내 동생이 결혼을 하여 다시금 '아내'가 그리워지는 때

아빠는 흐른 시간만큼 단단해져서 울지 않을 수 있을지 궁금하다.




신혼이 시작되었다.

친정과 같은 도시에 살며 결혼을 하니 오히려 더 아빠와 만나는 날이 많아졌대도

'출가외인(시집간 딸은 친정 사람이 아니고 남이나 마찬가지라는 뜻으로 이르는 말)'이라는 섭섭할 수 있는 말이 내게는 누구도 강요하지 않았던 장녀의 책임감에서 벗어나 여느 신혼부부처럼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게 해 주었다.




결혼 1년 뒤 시댁과 가까운 곳으로 첫 여행을 떠났다.

가볍게 떠난 여행

함께 맛집을 찾아갈 때도 바비큐를 할 때도 마냥 재밌었다.


하지만 그날 저녁

난 또다시 '친정엄마의 부재'로 나 자신을 괴롭히는 일이 생겨버렸다.


글을 쓰면서도 민망할 만큼의 사소한 일이었다.

'엄마! 내 폼클렌징 써요~'라고 시누이가 시어머니를 챙긴 일.


딸이 엄마를 챙기는 일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니 시누이가 시어머니를 챙기던 순간은 결혼 1년간 숱하게 많았다. 결혼하자마자 시누이가 3년 후 있을 시어머니의 환갑을 위해 함께 돈을 모으는 건 어떠냐고 물어 왔을 때도 내 앞에서 수없이 엄마를 불렀을 시누이를 볼 때도 나의 '친정엄마'를 떠올린 적은 없었다.


시댁과의 첫 여행

그토록 오랜 시간 상상하며 대비한 '친정엄마의 부재'는 

고작 딸이 엄마에게 폼클렌징을 챙겨주는 사소한 일로 또 한 번 내 가슴을 쿵하고 내려앉혔다.


그날 이후 꽤 오랜 시간 시어머니와 시누이를 볼 때마다 나도 엄마가 있었더라면 나는 어떤 모습일까 상상하는 날들이 반복되었다. 그리고 당연히 그 상상은 행복할 수 없었다.


이전 13화 모든 시간 나를 버티게 한 엄마의 말로 버텼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