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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희 Dec 10. 2021

엄마는 제왕절개 나는 자연분만

출산예정일 10일 전 양수가 터져버려 출산을 하게 되었다.

진통으로 고통을 겪는 동안 시어머니는 회사에서 조퇴를 하시고 곧장 병원으로 오셨다.

친정엄마가 없으니 옆에 있어주시려던 생각이셨겠지만 내겐 친정엄마는 함께 할 수 없는 불편한 상황이었다.

그 모습을 보던 나이가 지긋한 간호사 선생님은 한마디 하셨다.


"어머님! 산모님 진통 중인데 친정엄마도 아니고 

시어머니가 옆에 계시면 산모님 불편하죠! 저기 나가 계시다가 애기 나올 때쯤 오세요!"






아빠는 휴가로 인해 큰맘 먹고 포항까지 쉬러 갔다고 했다. 

하지만 남편에게 내 진통 소식을 듣고 바로 시동을 걸었다고 했다.

나는 "뭐야. 포항까지 갔는데 놀다 와!!"라고 말했지만 출산 후 내가 병실에 올라왔을 때 아빠는 헐레벌떡 문을 열고 들어왔다.


"아빠 지금 애기 볼 수 있대 지금 못 보면 몇 시간 기다려야 한대"라는 내 인사에

"내가 애기 보러 왔냐 너 보러 왔지!"라며 소변줄을 매달고 불편하게 누워있는 내 모습을 훑었다.


내가 죽는 줄 알았다며 너스레를 떨며 웃자 아빠는 그제야 웃었다.

출산예정일이 10일 뒤니 걱정 없이 떠난 휴가.

포항에 갈 때, 다시 내게 올 때 하루에 10시간 가까이 운전을 한 아빠는 전혀 피곤한 기색이 없었다.


"네 엄마가 너 낳을 때 너무 고생해서 너도 제왕 절개할까 봐 걱정했는데 자연 분만해서 더 기분 좋다. 수술 그게 얼마나 고생인데"라며 아이를 보러 갈 생각 없이 한참을 병실에 앉아 좋아했다.


어릴 적부터 엄마 배의 기다란 제왕절개 흉터를 보고 자란 나는 

'내가 아이를 낳을 때도 제왕절개를 하게 될 수도 있겠구나'라는 막연한 생각을 했었는데 아빠 역시 같은 생각을 했었나 보다.


남편이 아기도 보셔야 한다며 모시고 나가기 전까지 아빠는 '엄마'의 얘기를 실컷 했다.

'엄마는 이랬는데, 저랬는데'하며 그리움도 슬픔도 없이 행복한 표정으로.

엄마가 있었더라면 엄마도 저런 모습으로 날 걱정하고 함께 기뻐했겠구나 상상했다.






아이를 먼저 보고 올라온 시댁 식구까지 양가 가족들은 모두 병실에 모였다.

아직 어린이인 조카들까지 함께 모여 출산을 기뻐해 주었다.

막 출산을 마쳐 초췌한 꼴이었지만 이렇게 축하받을 일이구나 하며 기분이 좋아졌다.


오랜만에 만난 양가 가족은 모두 함께 저녁을 먹으러 나갔고 나 홀로 1인실에 남았다.


많던 가족이 병실에서 쑥 빠져나가자 우리 엄마는 저들과 함께 내 출산을 기뻐할 수 없다는 생각이 스쳤다.

결혼식 때와는 다른 기분이었다. 엄마의 딸이 무려 '엄마'가 되었는데 우리 엄마는 그 사실을 알 수도 기쁨을 함께 할 수도 없다는 느낌이 서운했다.


그럼에도 나는 나의 출산을 누구보다도 기뻐하고 있었다.

10달 동안 기다린 아이를 만나서도 불편했던 만삭에서 벗어나서도 아니었다.


정말이지 이 날은 내 가정을 꾸렸어도 어딘가 허전했던 내 마음이 변화된 날이었다.

엄마 없이도 여기까지 씩씩하게 잘해왔다는 뿌듯함. 그 마음이 시작된 날이었다.

그날 밤 나는 나 스스로가 기특하고 대견하여 몇 시간 전 출산을 한 '산모'임에도 3시간도 채 잠들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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