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기 전부터 혹시 내가 아이를 낳는다면 꼭 '아들'이었으면 좋겠다 라는 막연한 생각이 있었던 터라 의사 선생님이 뱃속의 아이가 딸이라는 힌트를 주셨을 때 정말 많이 서운했었다.
'딸이 최고야'
'엄마는 딸이 있어야 해' 등의 위로(?)를 들었다.
글쎄, 난 우리 부모에게 최고인 적이 있었던가.
내 아이가 나를 위해 존재해야 하는가.
마음속에서 그 아이러니한 위로들을 바로 잡았다.
내 욕심에 낳은 아이가 스스로 행복할 수 있게 도움을 주는 엄마가 되자, 아이에게 기대하고 기대지 말자 다짐했다.
하지만 내게 온 딸은 고작 5년을 살았을 뿐인데 출산한 그날부터 지금까지 내게 희망적인 시그널이다.
엄마와 비밀 없이 돈독했던 내가
그런 엄마 없이 아이를 낳고 키우는 현재가 힘들긴커녕
'내 엄마와 나처럼 지낼 수 있는 존재가 생겼구나',
'나와 엄마가 그랬듯이 내 평생에도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고받을 사람이 생겼구나' 하는 든든함이 매일같이 커진다.
엄마가 돌아가신 뒤 나쁜 생각 없이 온전히 집중할 회사가 생겼을 때 엄마가 준 기회라고 생각했던 것처럼
내게 힘들지 않게 와준 '딸'은 엄마가 준 선물처럼 여긴다.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내겐 새로운 삶의 목표가 생겼다.
이 아이가 20살이 지나 집으로 친구들을 초대해도 불편하지 않게끔 젊은 엄마가 돼줘야지
열심히 일하고 노력해서 덜 늙어버린 엄마가 돼줘야지 하는 목표
그리고 어떤 날, 내가 우리 딸 옆에 있을 수 없는 날이 오더라도
늘 날 응원해줬던 우리 엄마의 기억으로 잘 견뎌냈던 나처럼
나도 이 아이에게 그런 응원이 되어줘야지 하는 목표
기억나지 않는 유아시절까지 20여 년의 시간을 나와 함께 해준 엄마
엄마는 내게 실망인 적 없었다.
순간의 실망이 되었던 날들은 엄마를 납득할 수 있는 대화가 오고 갔고
엄마 역시 내게 받은 상처를 대화로 풀 수 있는 기회를 만들었다.
딸을 낳은 것만으로 난 '엄마와 나'를 되돌아본다.
딸을 키우는 것만으로 난 '엄마와 나'를 생각한다.
내 딸은 결국 내가 성장하기 위한 목표가 되어주었다.
이젠 엄마를 그리워하는 시간보단 내 목표를 위해 열심히 살아간다. 내 예쁜 딸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