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이직한 회사는 강도가 높았고 아이를 좋아하지 않는지라 자연스레 3년에 가까운 신혼을 갖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다 보니 자연스레 결혼을 했듯 자연스레 아이를 가질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난 손, 발은 물론 몸도 차고
우리 엄마도 잦은 유산을 했으니 막연히 임신이 쉽지 않겠다 생각했지만 아이는 마음고생 한번 없이 나를 찾아와 주었다.
시어머니는 꽃바구니를
시누이는 케이크를
"하 스트레스 줄까 봐 말은 못 했는데 얼마나 기다렸는지!"라며 우리 아빠는 함박웃음을 건넸다.
내 임신소식을 들으며 기분 좋게 취한 아빠를 본 지 1주일 만에 피가 비쳐 찾아간 산부인과에서 절박유산끼가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래, 난 엄마 딸이니 유산 한 번쯤은 할 수도 있지'라며 덤덤한 척했지만 엄마에게 임신을 알릴 수도 없는데 엄마에게 이 상황을 위로받을 수도 없다니 마음속에 상처가 되었다.
2주 가까이를 꼬박 누워만 지냈다. 다행히도 그 아이는 별 탈없이 쑥쑥 자라 안정기가 되었다.
당시 일이 많고 휴일에도 쉴 수 없던 회사는 퇴사했다.
20살부터 일했고 엄마가 돌아가신 지 3개월 만에 재취업을 하여 일했으니 공식적인 휴식은 처음이었다.
이제 아이를 낳으면 고된 육아가 시작될 테니 푹 쉬자 하는 마음뿐이었다.
하지만 뱃속의 아이가 건강하게 커갈수록 생각이 많아졌다.
수원에서 결혼하고 나를 낳았던 우리 엄마조차
아이를 낳자마자 그 멀고 먼 상주까지 내려가 몸조리를 하였는데
거의 모든 산모들이 조리원을 나오면 친정에서 한 달은 몸조리한다던데
난 친정 없이 몸조리를 하고 육아를 해야 한다는 걱정이 깊어졌다.
친정엄마가 없어 서러울 모든 상상 속 임신과 육아는 없었다.
맘 카페와 인터넷에 '엄마 없는 육아, 엄마 없이 아기 키우기'와 같은 검색어들을 수없이 검색해보았지만
'몸조리하러 친정에 왔는데 엄마와 육아가 맞지 않아야 스트레스받아요' 등의 '친정. 엄마, 육아'의 키워드로만 검색된 게시물들만 나올 뿐이었다. 그러한 글들은 부러움이었다. 그리고 이번 역시 엄마가 없는 건 나뿐이구나 하며 참담한 마음이 들 때도 많았다.
평소 아이를 좋아했더라면 육아 예능이라도 즐겨봤을 텐데
아이를 낳았던 친한 언니가 어찌 육아를 하는지 간접경험이라도 했을 텐데
난 아이를 좋아하지 않았던 터라 아는 것이 없었다.
결국 친정엄마 없이 출산과 육아를 할 대비란 것을 하기 시작했는데 그 역시 다양한 경우를 상상하고 그에 따른 대비를 해두는 것뿐이었다.
임신 내내 불면증을 겪었다. 원래도 잠에 예민한 편이라 신체적 변화에 따른 불면증이었다.
하지만 다른 산모들과 달리 긴 새벽 동안 나는 합리화를 해야만 했다.
'할 수 있다', '이제껏 엄마 없이 잘해왔으니 못할 게 없다'
내게 체면을 걸듯 주문을 외우다 보면 아침이 밝아오던 날들도 수두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