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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운트레이크 Apr 15. 2023

연봉은 시간을 잘 보내면 오른다(1)

'몸 값 올리기' 고민 

직장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을 뽑으라면 '승진'과 '연봉 인상'일 것이다. 일에서 보람을 얻는다면 그나마 견딜 수 있지만 승진 없는 직장생활이나 연봉 인상 없는 직장은 끝없는 사막을 행군하는 것과 같다. 중간중간 달콤한 오아시스를 만날 때의 기쁨, 그리고 좀 더 참고 가면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는 더 좋은 오아시스에 대한 기대는 직장생활 여정에 꼭 필요한 추진 '엔진'이다.


어떻게 하면 연봉을 빨리 높일 수 있을까. 나는 입사를 해서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 그 자체를 고민하지는 않았다. 안 했다기보다는 그런 주도적인 고민을 할 수 있는 Capa가 안되었다. 입사 동기들 중에는 그런 고민과 함께 구체적인 로드맵을 세워 보기도 했다. 그런데 나는 얼마나 직장 생활을 할 수 있을지 그것이 더 고민이었다.


대학생활을 마치고 시작한 직장생활은 그냥 나를 소비하는 시간의 연속이었다. 아침 8시까지 출근해서 눈치 보고 배우고 일하고 그리고 저녁에는 다시 회식으로 나를 던져 불살라야 시간들이 지나갔다. 무슨 의미나 생각을 한다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었다. 모두 다 내 통제권 밖의 시간들이었다. 그냥 흘러가는 데로 따라가기도 벅찼다. 끝까지 따라갈 수나 있으려나.


입사 후 첫 관문은 대리 진급시험이었다. 당시 대리-과장-부장-임원의 승진 중 필기시험을 보고 성적순으로 당락이 결정되는 승진 관문은 대리시험이 유일했다. 과장 이후부터는 시험이 없다. 업무 성과와 평판 등이 모두 복합되는 마치 회수해서 뚜껑을 열어보기 전엔 알 수 없는 '블랙박스' 같은 영역이었다. 


내가 다니던 회사는 토익 성적과 함께 경영학원론과 직무별 지식 테스트를 주말에 인근 학교를 빌려 시험을 치렀다. 회사 내 작은 고시와 같았다. 선배들이 시험장 입구에 몰려나와 응원할 때다. 그때는 그랬다. 이런 시험까지는 열심히 하면 통과할 수 있다. 물론 이 시험도 영어 성적 때문에 고생하는 사람들이 있었을 때다. 재수와 삼수 선배도 있을 때 나는 다행히 한 번에 통과했다. 몇 달 동안 주말마다 몰래 도서관에서 고3같이 공부했던 덕분이다.




진짜 어려운 승진 관문은 과장부터다. 과장을 통과해야 부장도 도전할 수 있다. 나는 이 관문이 가장 두려웠다. 흔히 말하는 '만년 대리로 있으면 어떡할까' 하는 또 근거 없는 불안에 휩싸였다. 마치 중고교 시절 중간고사 끝나면 학기말 고사 준비하는 그런 상태의 연속이라고 해야 할까? 직장인의 평가는 수시로 평가가 이루어진다. 그리고 연간 평가 결과가 누적되어 평판이 되어 간다. 바짝 시험공부하듯 벼락치기가 안된다. 그래서 편하기도 하고 어렵기도 했다. 학창 시절 시험을 기준으로 버텨오며 만들어 온 나만의 생존방식이 있다. 그 생존을 위한 '멘털 프레임'을 이제는 다른 식으로 '포맷'해야 했다.


매일 반복되는 직장생활에서 인정받고 성과를 낸다는 것은 나에게 '종합예술'과도 같은 어려운 작업이었다. '직장생활을 어떻게 어찌어찌하면 돈 번다'라고 가르쳐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책을 찾아보면 '세상을 사는 처세법' 정도는 알 수 있었다. 부모님은 "열심히 일하고 상사 말씀 잘 따르면 된다"라고 하셨다. 그런데 주변 선배들은 종종 "직장생활은 '운칠기삼'이야. 운대가 맞아야 되는데 그건 줄을 잘서야 돼"라고 말하곤 했다. 인생을 이렇게 운을 바라며 살아도 되는가? 그때는 받아들이기 힘든 표현이다. 노력보다 운이 더 따라야 한다는 뜻이다. 도대체 뭘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아마 직장 운의 최고봉은 회사가 속한 그룹의 '오너' 일가와 맺게 되는 동아줄(또는 오랏줄) 인연이 될 것이다. 월급을 받는 직장인은 '오너'가 아니면 결국 그 밑에서 일만 하다 때 되면 나가야 하는 '머슴' 같은 존재다. 한정된 조직의 승진 자리는 업무 성과가 기본이지만 위에서 신뢰하고 인정하는 사람들이 줄을 서 가져가게 된다. 그 인정과 신뢰를 얻는 일련의 긴 과정이 '몸값 올리기'의 실체다. 나는 오너는커녕 바로 옆 선배나 맨 뒷줄에 앉은 상사의 신뢰를 얻기에도 벅찼다. 뭘 모르지만 뭔가 해보려고 고군분투는 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운칠기삼이라..'


대리 2년 차 정도 되었을 때 주어지는 일만 따라가서는 제때 과장 승진은 어렵다고 느꼈다. 과장 승진에서 떨어진 쟁쟁한(?) 재수, 삼수 선배들이 대리 때보다 더 많이 포진해서 구제될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때 어리숙한 나를 지켜보던 상사 한분이 계셨다. 같은 부서는 아니지만 옆 부서에 있던 분인데 어느 날 회식자리에서 이런 말을 해주었다. "OO대리, 부모님이 뭐 하시지? 물려받을 사업이나 땅이 있는가? 아님 혹시 오너 일가와 줄이 닿는가?" , "아이고 전혀 아닌데요 그러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하", "그래? 그러면 자네 지금 뭐 하고 있는가?"


뭐 하고 있냐니.. 입사해서 열심히 살고 있는데 갑자기 억울한 마음까지 들었다. 그분은 이렇게 말했다. "이제 너만의 승부구를 만들고 던져야 한다. 지금은 눈에 안 보여. 휩쓸려 일하다 보면 남는 거 없다." 제법 그럴듯해 보였다. '나만의 승부구'가 도대체 뭘까.

 



당시 회사는 외부의 컨설팅을 많이 받기 시작했다. 기존의 업무 방식을 바꾸고 새로운 사업을 확대하기 위한 다양한 프로젝트가 시작되고 있었다. 그런데 직원들은 자기 부서를 떠나 그런 단기적인 프로젝트 활동에 참여하기를 원하지 않았다. 선배들에게 물어보면 "한번 저기로 가면 프로젝트 기간이 끝나고 답이 없어. 다른 부서를 떠돌아다닐지 몰라."라고 말렸다. 


당시 새로운 프로젝트 활동은 야근도 많았다. 자리에서 밀린 사람들이 배치되는 기피 부서 같은 인식도 있었다. 하지만 난 현 위치에서 다른 변화나 기회가 별로 보이지 않았다. '지금보다 손해 볼 거는 없어 보이는데 일단 도전해 볼까', '이게 다른 기회를 불러올 수 있지는 않을까' 생각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반복되는 술자리가 나를 지치게 했다. 프로젝트는 야근은 많아도 네버엔딩 저녁 회식은 적었다. 차라리 정신없이 흘러가는 일에 나를 던져 놓고 싶어졌다. '이 지겨운 시간들이 빨리 지나가겠지' 이런 고민 끝에 소속된 둥지를 떠나 불확실한 프로젝트 활동에 지원키로 했다. 물론 '과장 승진에 약간의 가점도 있지 않을까' 이런 얄팍한 희망과 계산이 깔려 있었다. 


이런 의도와 내 안의 '노매드 기질'이 함께 발동되어 전사 혁신 프로젝트 중 하나에 들어갔다. 그 프로젝트의 꼭대기 멘토들은 외부에서 온 글로벌 컨설팅사 맥킨지였다. 내가 갖고 있었던 고정관념들, 알고 있었던 생각프레임들이 해체되고 다시 구성되는 강제 '포맷'이 일어나 버렸다. 야근과 주말까지 갈아 넣으며 시간은 프로젝트 시계 추에 쫓기며 지나갔다. 사계절 시즌 중 한 두 개 시즌은 지나가는지도 모르고 사라졌다. 봄이 온 거 같았는데 가을이 가고 있었으니까.


'아.. 근데 이게 돈 되는 거 맞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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