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과 공간이 행복의 재료가 되는 곳
어릴 때 아버지 직장 발령을 따라 이사를 많이 다닌 편이었다. 부모님은 직장 발령을 이용하여 그 당시 재테크를 하신 듯했다. 어린 기억에 이사 갈 때마다 다행히도 조금씩 좋은 곳으로 갔던 거 같다. 작은 방에서 마당이 딸린 집으로, 조금 더 새집으로, 그리고 작지만 2층집으로 그리고 어느 시점부터는 아파트로만 이사하셨다.
어느 날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새 아파트로 이사했는데 집 내부에 수세식 화장실이 있는 것을 보고 어린 나이에도 큰 충격(?)을 받았다. '이런 게 원래 있었나. 이게 가능한 거구나..' 이곳은 과거 잠실 주공 4단지로 지금은 사라지고 재건축되어 잠실 레이크팰리스라 불리는 곳이 되었다.
아파트 펜스 넘어 바로 호수가 있었다. 그것도 두 개의 호수가 서로 마주 보고 있었다. 단지 출입구가 따로 있었지만 친구들과 펜스를 바로 올라타고 넘어가, 호숫가로 놀러 다녔다. '집 옆에 호수가 있다니..' 호수 주변은 백사장과 뽕밭이 많았는데 마치 서부영화의 사막지대 비슷해서 좋았다.
각종 물고기와 잠자리가 넘쳐나서 수렵활동에 정신없던 시절이다. 아무리 어려도 그 시절 나름의 속상함도 많기 마련이다. 뭔가 답답할 때 쳐다본 호수의 눈부시고 푸른 물빛은 모든 것을 품어 버릴 정도로 깊고 강렬했다. 시간이 지나 그 호수는 롯데월드타워가 있는 지금의 석촌호수가 되었다.
나에게 아파트란 공간이 집으로 다가왔던 곳이다. 아파트란 집 형태만 새로웠던 것이 아니라 집이 있는 주변의 공간도 대비되어 더 좋았다. 반듯하고 정형화된 단지 바로 옆은 버려진 듯, 방치된 듯 하지만 여유로운 자연 그대로가 있어 좋았다. 집은 주변의 공간이나 자연환경과 별개로 있을 수 없다.
그때부터 그냥 뭔가 품고 있는 듯한 호수를 좋아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중고등학교 시절 주말마다 아버지를 따라 전국의 저수지 낚시터를 쫓아다닌 이유가 이것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입시 스트레스에 눌려있던 그때 그냥 '멍 때리기'하기에 저수지만 한 게 없었다.
또 하나 기억나는 공간이 있다. 나는 건축자재와 인테리어 관련 회사를 다녔지만 내 집 인테리어 공사는 한 번도 안 해보고, 그저 남의 집 인테리어만 논하던 시절이 있었다. 이것이 늘 찜찜했다. 그래서 어느 날 작은 집으로 이사하며 큰 마음을 먹고 소위 토털 인테리어 공사를 감행했다.
어느 노부부가 살다가 시골로 내려간다고 내놓은 집이었다. 분양 입주 당시부터 10년간 살던 집이라 적당히 낡았는데 그동안 손 보고 산 흔적이 전혀 없어서인지 노부부의 시간들이 그대로 머물러 있었다. 당시 이 집을 산 이유는 동향이지만 거실창으로 보이는 산 뷰가 너무 시원했다. 분당의 빽빽한 아파트 속에서 확 트인 산 전망을 영구적으로 보며 4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좁은 집을 조금이라도 넓게 쓰고자 거실 발코니와 작은 방 발코니를 확장하기로 하고 한바탕 철거 작업에 들어갔다. 그야말로 벽만 남기고 모두 뜯어내고 철거했다. 철거가 끝난 직후 퇴근하면서 저녁때 둘러보았다. 그 공간에는 콘크리트와 시멘트 덩어리만 있었다. 발코니창도 철거하고 비닐로 막아 놓은 상태였는데 밤이라 바깥 풍경도 잘 보이지 않았다. 욕실은 변기가 철거되니 바닥에 구멍만 보였다.
'이게 수억짜리 집이란 말인가?' 갑자기 이 공간의 정체가 낯설게 느껴졌다. 아파트의 민낯을 본 느낌이랄까. '이런 게 건축물의 재료 상태 그대로구나' 그리고 추가되는 인테리어 자재란 것도 그저 공간 재료의 일부인 것이다. 이런 '날것의 덩어리들'을 보면서, 공간을 무엇으로 채워 간다는 것은 물질적 재료 이상의 무언가가 더 필요하다고 느끼게 되었다.
'어디서 살 것인가'의 저자 유현준 교수는 "사람들은 건축물을 물질과 재료 덩어리라고 말한다. 하지만 건축물의 진정한 의미는 건축물이 사람과 맺는 관계 속에서 완성된다."라고 했다.
인테리어 공사가 모두 끝나고 이삿짐까지 다 들어오고 난 후, 가족이 모인 공간은 그날밤에 본 그 공간과 완전히 다른 공간이었다. 거의 '공간 창조' 수준이라 할 것이다. 그곳에서 여러 번의 4계절을 보내고 아이는 초등학교를 다니며 청소년으로 성장했다. 즐겁고 때론 답답하기도 했던 인생의 한 번뿐인 시간의 기억들이 그 공간에서 촘촘히 새로 만들어졌다. 그때 그 집의 내부공간과 거기서 바라보던 산자락은 하나의 공간으로 묶여있다. 그렇게 집은 추억을 소비하는 공간이자 만들어 가는 곳이었다.
그런 추억과 시간을 창조하는 곳이 또 있다. 바로 카페다. 커피를 좋아한다. 커피를 마시기 위해 새로운 뷰맛집 공간을 찾아가면 즐겁다. 새로운 공간이 뇌를 자극하고 함께 하는 사람과 즐거운 기억을 만든다. 강릉의 테라로사 본점을 자주 가곤 했다. 수년 전 운 좋게 테라로사 김용덕 대표를 만나서 잠깐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커피산업의 본질이 무엇일까요? 원두의 품질인가요?" 이렇게 질문드리니 그분 말씀은 "커피산업을 이해하려면 먼저 공간의 가치를 알아야 합니다."였다. 그렇다. 그래서 어떤 장소인지에 따라 같은 커피맛도 다르게 느껴지는 것이다.
커피도 공간사업이다. 집은 대표적인 나의 공간이다. 늘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이 공간의 가치를 얼마나 즐기고 있나. 지루한 일상이 스며든 이 공간도 카페가 될 수 있을까? Why not?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다른 것일 수 있다. 집구석 한쪽에 조그마한 커피 공간을 정리해 본다. 음악과 약간의 조명도 필요하다. 그리고 오늘 아침, 커피 원두를 수동으로 드르륵 푸르륵 갈며 냄새를 맡아본다. 그 커피 향이 매번 다르고 새롭다. 잠깐이어도 좋은 시간이 예상된다.
집은 커피를 느끼고 즐길 수 있는 그런 곳이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