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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운트레이크 Apr 04. 2023

시간, 뒤가 아닌 앞으로 감아보기

'초안'이 있다면 천천히 앞으로만 

지나간 시간은 나도 모르게 정제되어 기억에 남는다고 한다. 정제되는 과정에 힘들었던 기억도 서랍에 들어갔다 다시 나올 때는 미화되어 나타나기도 한다. 그러니 우리가 '기억한다는 것'이 얼마나 정확한 건 지 어떨 때는 잘 모르겠다.


누구나 크고 작은 트라우마를 끼고 살아간다. 물론 심연의 아픈 트라우마는 예외다. 넷플릭스 시리즈 '더 글로리'는 그런 트라우마를 극적으로 활용한 이야기다. 학폭의 트라우마를 스토리로 엮어내고 감정이입을 최대치로 끌어올렸다. 그리고 드라마라는 안전장치를 통해 치밀하고 통쾌한 복수를 하고, 상처와 정의를 치유하는 자유를 주었다.


현실에서는 지나간 과거를 복수하거나, 되돌아가 원하는 방향으로 새로 고치기는 어렵다. 보통 사람은 자기만의 트라우마도 이리저리 그냥 덮고 살지 않을까. 그냥 대충 끼고 살 수 있는 정도면 그나마 행복한 무리에 속하기 때문이다. 트라우마까지는 아니어도 '아쉬움과 후회'란 생채기는 누구나 시간의 매듭 사이에 여러 군데 남아 있다. 


예를 들면 학교 다닐 때 '전공 선택을 왜 그렇게 했을까'부터 직장을 다니면서 '그때 왜 그렇게 행동했을까'하는 여러 아쉬움들이 생긴다. 아이를 키울 때는 처음이라 겪었던 여러 후회들이 남는다. 그리고 투자에 실패했을 때 잠 못 이루고 끙끙대던 칠흑 같던 밤들도 생각난다.


그 당시 어떤 선택을 했던 그때는 그게 정답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선택 뒤에는 항상 불안도 있었던 거 같다. '내가 잘하고 있는 건가' 이런 불안들 말이다. 일생 중 청년기 스트레스가 최고조로 높다고 한다. 젊은 시절은 백지상태나 마찬가지로 무한한 가능성이 열려있다. 하지만 새로 사회적 경력과 자산을 만들어 가야 한다는 불확실성으로 부담감이 제일 높은 시기이기도 하다. 


서울대 이은봉 박사가 미국 학술지 연구를 소개한 적이 있다. 사람은 살아가는 날 중 39% 기간에서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한다.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스트레스받는 날이 점차 감소해서 노인의 경우는 청년기대비 38%나 적어진다고 한다. 그리고 일단 54세를 넘으면 스트레스에 대한 감정 반응 정도가 안정화된다는 연구다.


시간이 지나면 다 해결된다는 게 이런 걸까.




한때 외국계 보험회사의 종신보험이 인기였던 적이 있다. 내가 만났던 보험사 직원은 상세한 분석 그래프를 보여주며, 나의 아내와 어린아이를 위해 앞으로 얼마나 돈이 더 필요할지 '심각한 데이터'로 보여주었다. 그땐 그럴듯했다. 나도 미래에 대한 불안을 방치만 할 수 없었다. 그때 가입한 종신보험은 20년 이상 유지했는데 그 당시 필요하다고 제시한 보장 금액을 보면 지금은 턱 없이 부족한 엉터리였다. '돈의 가치'는 예상보다 더 빨리 떨어졌기 때문이다. 


막연했지만 그때 가장 큰 걱정은 '미래의 돈과 불확실한 건강'에 대한 것이었다. 그걸 종신보험으로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다면 그거 하나만으로도 마음의 위안이 되던 시기였다. '건강은 어떻게 지켜가야 할지' 이건 그래도 명확한 편이었다. 관련 정보나 지식이 넘쳤다. 모른다기보다는 실행의 문제였다. 그런데 돈은 어떻게 모아 가야 할지 방향이나 방법이 잘 보이지 않았다. '그냥 어떻게 되지 않을까?' 그래서 직장을 다니며 휴일에 놀 때도 마음 한 구석이 불안했던 것인지 모른다.


그런 불안은 열심히 일해도 '노동 시간' 외에 '자유 시간'만 있었기 때문 아니었을까. 이 두 가지 시간 투입만으로는 그 불안을 풀 수 없었다. '투자 시간'이 반드시 따로 있어야 했다. 하루 24시간인데 투자 시간을 어디서 또 만들어 낸단 말인가? 그러면 '노동 시간 + 자유 시간 = 투자 시간'이 되게끔 만들어야 했다. 그러면 인생 시간을 '복리'로 돌릴 수 있으니까.


지나고 보니 투자는 돈보다 시간이 더 중요함도 알게 되었다. 그걸 좀 더 일찍 알았더라면 정말 좋았겠지만 시간이 지나며 마음의 내성도 같이 커 버렸다. '그럴 수도 있지..' 이렇게 말이다. 


아들이 회사생활을 몇 년 전 시작했다. 힘들게 입사했는데 벌써 연봉이나 승진 등으로 스트레스받고 조급해할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해 주고 싶은 말이 있다. "괜찮아 OO아, 천천히 앞으로만 가면 돼."라고. 물론 아직은 그의 귀에 뭔 말인지 들리지 않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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