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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운트레이크 Apr 22. 2023

연봉은 시간을 잘 보내면 오른다(2)

'몸값 올리기' 고민에서 새로운 시간들로 덮어쓰기

'아.. 근데 이게 돈 되는 거 맞나?' 연봉은 별 차이 없이 업무 강도만 높아졌다.


프로젝트에 투입되어 보내는 시간의 속도나 업무 강도로 인한 스트레스는 일반 업무의 2배가 넘었다. 프로젝트의 결과물이 참신할수록 현업에 피곤한 일이 생길 거라는 인식이 있다 보니 주변에서 불편 아닌 불만을 보이기도 했다. "일이 다~ 먹고살자고 하는 건데 너무 이상적인 결론은 곤란해"


어쨌든 '회사 일'이란 것을 어떻게 풀어가야 하는지 배울 수 있었다. 당시 혁신 프로젝트는 회사 단위 혹은 사업부 단위를 대상으로 문제점과 개선 기회를 찾아 목표를 세팅하는 방식이었다. 특히 새로운 목표를 달성하는데 발생하는 장애요인과 Gap을 정의하고 해결 방안을 찾는 방식은 매우 집요한 과정이라 힘들었다. 하지만 일의 결과물이 보고서란 형태로 출력되고 회사 정책에 반영되는 구체성이 좋았다. 그리고 원하는 Output을 얻기 위해서는 희망이나 기대가 아닌 'Input과 Process에 집중'해야 한다는 '단순한 진리'를 체득했다. 


당시는 지금보다 덜 복잡한 세상이었는지 이 정도 활동이면 개선거리가 엄청 걸려 나오는 '물반 고기반 어장'이었다. 아마 지금은 훨씬 더 어려워져 작은 개선기회를 찾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런 경우에는 판을 다시 그려야 한다. 그래서 부분보다 전체 그림을 보는 시야도 이때부터 트이기 시작했다.


이런 시각으로 돌아보니 회사 시스템이나 업무 형태들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현업에 묻혀 있을 때는 발현되지 않던 문제의식들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그냥 따라가기만 하던 업무 방식에서 의문을 갖고 질문을 하는 경우가 나도 모르게 늘었다. 이런 과정에서 회의나 보고 시 좀 더 주도적인 입장에서 부딪혀보는 자세가 생기기 시작했다. '내가 사장이라면 이건 이렇게 해 볼 텐데, 왜 안 하지?' 이런 다소 '도 넘은 생각'까지 머리에 싹트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목소리나 눈빛도 조금씩 달라졌나 보다. "OO대리 자네 변했어~"


당시 IMF경제 위기가 우리 회사를 강타하던 시기였다. 나는 프로젝트 활동 덕분에 선배와 동기들을 제치고 제때 과장에 승진했다. 일부는 '발탁 승진' 아니냐 볼멘 질투 소리를 내기도 했다. 나는 잠시 일에 미쳐 있었던 것뿐인데 결과는 매우 다행스러웠다. 살아남기 위해 생각의 에지(edge)를 키우고 보고서 한 줄에도 몇 시간씩 그 의미를 확인했다. 현장에서 직접 확인한 사실만을 담아 영혼을 쏟았던 덕분이었다. 그리고 연봉 인상이라는 달콤한 결실과 이 보다 더 중요한 '일 좀 한다'는 평판까지 얻게 되었다. 


'아 이제 좀 돈 좀 되려나?' 근데 한바탕 승진 술파티의 숙취가 끝나갈 무렵 앞으로 갈 길이 깜깜해졌다. 회사는 과장과 부장사이에 차장이라는 계급을 새로 끼워 넣었다. 차장 달고 나서 부장까지 가야 하는데.. 얼마 후 부장 위에 팀장이라는 직책도 새로 생겼다. 부장도 평부장이 생긴 것이다. 부장으로 승진한다고 다 부장이 아니다. 그냥 팀원인 부장이 있고 그 위에 팀장이 되어야 한다.


'헐 이제 팀장까지는 가야 그다음 순서가 임원인가..' 그런 건 또 아니었다. 팀장과 임원사이에 수석부장도 생겼다.




올라갈 계단 그 사이사이 넘어야 할 허들이 계속 늘어나니 나도 숨 돌리며 가야 했다. '이래서 조직 생활이 긴 마라톤이라 했구나..' 그렇게 스스로를 정비하며 관리자로서 일에 몰두할 즈음 IMF 위기가 끝나가고 있었다. 내가 속한 팀의 팀장은 갑자기 바빠지기 시작한 것이 보였다. 회의 중 자주 나가 전화하고 주말마다 바빠 보였다. "팀장님 요즘 바쁘시네요. 무슨 일 있으세요?", "응 집을 큰 평수 새 아파트로 옮겼다. 지금 부동산 가격이 빠져있으니 좋은 기회다. 뭐 하고 있냐?", "요새 일이 정신없어서요..", "일은 일이고 너 그러고 있을 때가 아니야. 정신 차려야지." 


'뭘 또 정신 차려야 한다는 것인가'


팀장은 당시 영동 AID차관 아파트 작은 평수에 살다가 세를 주고 강남구청역 인근에 입주하는 S아파트 30평대를 매수해 입주했다. IMF 시기라 분양가 가까운 가격에 급매로 매수했다. 당시 4억대로 기억한다. 지금은 20억대 아파트가 되었는데 최근엔 리모델링을 추진한다니 시간이 많이 흐르긴 했다. 놀라운 것은 영동 AID차관 아파트를 이때 팔지 않고 보유했는데 이곳은 나중에 삼성동 힐스테이트가 되었다.


평생 한번 올까 말까 한 '경제 위기'와 '기회'가 연이어 닥쳤다. 누구는 주식으로, 누구는 부동산으로 기회를 엿보고 잡아채기도 했다. 하지만 아주 극히 소수였다. 그들은 어떻게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잡았을까. 그 팀장은 사내에서 인정받는 유능한 팀장이었지만 회사 바깥에서는 돈이 흐르는 시기와 장소를 예민하게 쫓고 있었다. 그게 어떻게 가능할지 그땐 남의 한가한 이야기로 들렸다. 나는 매일 보고서 준비에 혼을 불어넣고 있을 때다. 쌓이는 스트레스와 피로로 평일 저녁과 주말은 그냥 녹초가 되어 'TV멍'을 하고 있었으니까.


"팀장님 또 경제 위기가 오면 부동산 가격도 다시 빠지지 않을까요?", "OO과장 맞아, 아무도 몰라 그런데 경제가 성장하는 한 지금보단 오를 거다. 화폐가치가 떨어지니까.", "회사일도 바쁜데 그런 거 까지 신경 써야 하니 뭐 쉬운 일이 없네요", "네 미래를 위해 준비하는 게 있니?. 그게 뭘까? 없으면 주말마다 공부해. 아무도 알려주지 않아." 그러면서 팀장은 자신만의 'My 프로젝트'를 가지라고 강조했다.


"회사 프로젝트만 중요할까? 네 인생 전략을 위한 개인 프로젝트를 생각해 본 적 있니? 일하며 배운 기술을 네 문제에도 적용해 봐라."


대리와 과장 승진의 꿀맛은 달콤했다. 하지만 이 시기에 많은 사람들이 직장을 떠났다. 영원히 함께 일할 거 같은 술자리 다짐과 인연도 남남이 되는 것은 '순삭'이었다. 회사 울타리 안에 있을 때만 끈끈한 관계가 이 인연의 특성이었을까. 아무튼 계속 살아남으려면 '계속 어딘가로 남과 다르게 움직여야 한다'는 압박감이 따랐다. 직장 연봉 인상만으로 돈 문제가 다 해결될 수 있을지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압박감과 함께 오히려 약간의 시들한 매너리즘이 함께 오는 것이었다. '뭐 더 이상 어쩌라고..'


회사 생활이 지겹고 답답해지기 시작할 때다. 나 스스로 열심히 뭔가 하고 싶고, 더 만들어가고 싶은데 성격상 '일과 사람 스트레스'에서 오는 '감정 소모'에서 벗어나기에도 빠듯했다. 그런데 팀장이 말한 '나만의 프로젝트를 만들어보면 어떨까'하는 고민은 그 소모전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다른 문' 같아 보였다.


'퇴근하면 도돌이표 회사 생각 그만하고.. 이런 생산적인 고민으로 덮어쓰기 해보자'


당시 나에게는 노동시간과 자유시간 이 두 가지 시간대만이 존재했다. 자유시간만으로 불안함과 스트레스를 치유하기엔 뭔가 부족했다. 그래서 새로운 시간들이 필요했다. 그 시간들은 어떤 형태든 Input과 Output이 있어야 했다. 막연하지만.. '회사가 아닌 나의 프로젝트'는 생산적인 감정 몰입이 필요했다.


'나만의 프로젝트.. 이게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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