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프로젝트는 즐거운 공부가 될까
회사를 위한 프로젝트를 열심히 했었다. 회사가 원하는 성과를 달성하기 위해 결성된 프로젝트팀은 일정기간 오로지 그 과제에만 매달렸다. 프로젝트를 이끌어가는 팀 리더가 있지만 그 뒤엔 막강한 글로벌 컨설턴트들이 있었다. 방향을 수시로 제시하고 중간 결과물들을 제삼자의 관점에서 검증했다.
때로는 내가 보기에 허접한 조사 결과도 그들의 손을 거치면 기가 막힌 리포트로 탈바꿈하곤 했다. 많은 관심과 챌린지를 받으며 갈 수 있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행복한 것이다. 내부에서 의견충돌로 서로 싸우기도 하지만 'teamwork'이라는 이름으로 뭉쳐 개인은 외로울 틈도 없다. 늘 프로젝트 외부 바깥의 적(?)들을 상대해야 했다. 붙으면 일단 이겨야 하니까.
'회사를 위한 프로젝트는 이렇게 열심히 하고 있으니 이제 나를 위한 프로젝트를 해봐?'
근데 이건 첫출발부터 외로운 선택이다. 내 프로젝트는 대략 이런 것이었다. '돈'이란 Output을 위해 기본적으로 나의 '시간'을 추가로 Input 해야 하는 것. 지금 직장을 다니며 돈을 벌고 있지만 돈을 더 벌기 위한 프로젝트다. 그래서 '자발적'이고 '비강제적인' 특성을 갖는다. '자유'가 있다는 것은 한편 피곤한 일이다. 하다가 지치면 당장 안 해도 그만이다. 누가 방향을 가르쳐 주거나 중간 검증을 도와주지도 않을 것이다. 나 스스로 혼자 관심과 챌린지를 쏟아부어야 한다.
'헐, 아직은 모르겠지만 혼자 무슨 재미로 이걸..'
과장 시절 선배 한분이 계셨다. 당시 고객사들을 함께 인터뷰하며 현장의 개선사항들을 조사할 때였다. 선배의 차는 당시 갤로퍼라는 SUV차량인데 이 차량으로 정말 여기저기 많은 사업장을 돌아다녔다. 어느 날 수원시 외곽의 설렁탕집에서 점심 한 끼 먹고 식당에서 나올 때다. 나는 처음엔 메뉴 고민과 식당을 찾느라 주변을 인식도 못했는데 바로 옆에 아파트 모델하우스가 있었다.
그가 말했다. "OO과장, 여기 모델하우스가 있었네, 소화시킬 겸 한번 들어가 보자", "네, 근데 아파트 분양받으시게요?", "아니 나 얼마 전 집 샀어. 언젠가를 대비해서 그냥 둘러보자. 그리고 여기 들어간 인테리어와 자재를 살펴봐라. 이게 최신 트렌드야", "네?", "우린 모델하우스를 둘러보면 이게 꿩 먹고 알 먹는 거야. 주변 부동산 개발 호재를 알 수 있고 동시에 제품 시장 조사를 겸할 수 있어"
내가 다니던 회사는 건축자재와 인테리어를 다루는 회사다. 그때만 해도 일은 책상과 사무실에서 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회사에서 만드는 제품도 회사라는 울타리 안에서 그저 숙지해야 하는 일의 대상이었다. '아, 이 자재가 들어가는 곳은 결국은 집이지.. 가만있자 우리 집에는 무슨 자재가 들어갔나? 그리고 여기는?' 갑자기 관심이 생겼다. 정말 종이 한 장 차이였다. 마침 그 모델하우스에는 자사 제품은 없고 경쟁사 제품으로 잔뜩 반영되어 있었다.
'이 지역 보고되는 내용과 좀 다른데.. 이유가 뭘까?' 이때 우연히 방문한 모델하우스 조사가 미리 계획했던 고객사 인터뷰보다 훨씬 임팩트가 있었다. 사무실로 돌아와 둘이 좀 고민하다가 쓴 신랄한 현장 리포트가 상당히 먹혔다. 그때는 본사에서 현장을 잘 안 나가던 시절이라 운 좋게 통했다.
그런데 창피하게도 나는 당시 모델하우스에 반영된 제품이 자사 것인지 타사 제품인지 잘 구별하지 못했다. 우리 제품이란 집의 구성 재료였다. 이것이 삶의 공간에 구현된 상태로 소비자관점에서 들여단 본 것은 처음이었다. 같이 간 선배 도움으로 제조자 관점의 제품을 소비자 관점으로 식별하고 구별하여 비교할 수 있었다.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지식들은 현장에서 다시 가공해야만 쓸 수 있다.'
선배의 '꿩 먹고 알 먹기'는 여기서 확실히 통했다. 모델하우스에서 아파트 주변 인근 개발 계획과 도로망 계획을 상세히 브리핑받았는데 나에게는 새로운 세상으로 보였다. 이걸 공짜로 이야기해 주는 것도 신기했다. 선배가 말했다. "여기 이쪽으로 도로가 난다.. 그럼 저쪽이 돈 좀 되겠어."
'돈이 된다고요?'
그 갤로퍼 선배는 회사일과 개인의 부동산 관심이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있었다. "난 모델하우스가 보이면 지나가다 들어가 본다. 좀 먼 곳은 주말에 가족 드라이브 삼아 들를 때도 많아.", "주말도요? 이게 재미있으세요?", "놀이공원만 갈 수 없잖아, 이건 돈도 안 들어 공짜니까.. 근데 돈 공부가 되거든.", "형수님도 좋아하세요?", "내가 처음엔 꼬셨지.. 돈 벌어준다고. 이젠 나보다 더 좋아해"
'이런 관점으로 자기 시간을 쓰는 분도 있구나' 이 분은 어쩌다 이런 선택을 하게 되었을까? 혼자 모든 것을 스스로 깨우치며 살아갈 수는 없다. 항상 주변의 누군가로부터 자극을 받는데 이걸 받아들이고 해석하는데 다 차이가 있는 거 같다. 다행히 나는 새로운 삶이나 생활 방식을 선택하고 받아들이는데 열심이었다. 다소 내성적인 나는 이런 식으로 생산적인 자극을 찾으려 했다. 에너지를 분출하고 다시 공급하려면 작은 변화를 계속 시도해야 했다.
덜덜거리는 오래된 갤로퍼 차량 안에서 주고받던 대화가 당시 무료하던 내 감성과 고갈 상태의 에너지를 조금씩 건드렸나 보다. 당시 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 서울 강남아래 분당을 지나 경부고속도로를 따라 '경부라인' 주변이 한창 개발될 때였다. 자고 나면 길과 도시가 새로 생길 때다. 그냥 지나다니던 길들도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저 길 옆에 공사장엔 무엇이 들어서나', '어디로 도로 개발 계획이 또 생겼나?'
어느 주말 집에서 쉬는 시간에 나도 모르게 지도책을 펼쳐보고 있었다. 당시 신문 경제란 한쪽에는 아파트 시세표가 있었는데 이걸 옆에 펼치고 지도와 맞춰보고 있었다. '여기 아파트가 새로 분양하는데 주변 시세는 이렇구나.. 근데 여긴 왜 싸지?' 관심과 의문점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단계가 되었다. 시간이 '순삭'이었다. 지도를 보다가 현장에 바로 가보고 싶어졌다. 신기했다. 회사에서 시킨 일도 아닌데..
'그저께 회의 후 떠돌던 감정의 부산물들이 사라졌다.. 이게 그 몰입의 순간인가.'
아내가 물었다. "뭘 그리 집중해서 봐요? 회사일도 아닌 거 같은데..", "주말인데 드라이브나 하고 올까?", "와우, 좋지 어디 좋은데 있어?", "여기 용인인데 아파트 모델하우스 가보자"
"드라이브 가자며 뭔 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