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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미리 Feb 28. 2022

또 봄이 오려나 봐

          

  

  섬진강을 향해 달린다. 또 봄이 오려는지 온몸의 세포들이 꿈틀거리기 시작한다. 정확히는 봄강이 나를 부른다. 내 귀에는 들리지 않지만 몸이 먼저 알아차리고 들떠있다. 요 며칠 따스한 햇살이 메마른 숲속을 벗어나더니 텅 빈 들판을 지나 강 속으로 사라졌다는 소식만 들렸다. 쫓아가 보니 그 강에 자리를 잡고 버들강아지를 흔들어 깨우고 있다. 칼바람도 잠재우고 강은 투명한 얼굴로 바닥까지 다 보여준다.     


  그 속에는 수많은 돌멩이들과 바위들 작은 물고기들이 가득하다. 하루가 저물도록 앉아 있어도 셀 수 없을 것 같다. 복수초가 피었다는 어느 시인의 소식을 전해 듣고부터는 아직 봄은 멀었는데 마음속으로 봄이 들어앉아 버렸다. 또 봄이 오려고 한다. 늘 처음인 것처럼 봄은 온다. 매번 봄이면 겪었던 일인데도 봄은 낯선 얼굴을 들이민다.     



 봄을 찾아 나서다 보면 그 낯선 얼굴이 여러 모습을 하고 있다. 오늘은 금지면을 통과하다가 우연히 김주열 열사 기념공원에 들르게 되었다. 언제가 이야기를 들었는데 깜빡 잊고 있었다. 한 번쯤 가보리라는 생각을 하다 이제야 들르게 되었다.     


  김주열 열사는 1960년 3·15 부정선거 규탄 시위에 참여했다가 행방불명되어 실종된 지 27일 만에 4월 11일 창원시 마산중앙부두 앞바다에서 눈에 최루탄이 박힌 변사체로 발견되었다. 4월 12일 부산일보 허종 기자의 기사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김주열 열사는 마산상업고등학교에 원서를 냈는데, 3월 14일 합격자 발표를 앞두고 형과 함께 마산에 갔지만, 3·15 부정선거를 앞두고 합격자 발표가 3월 16일로 연기되었는데 바로 내려오지 못했다.     

 

  마산에서 부정선거로 인해 학생들과 시민들이 마산 시내에서 시위를 하자 시내에 나갔다가 형은 돌아왔으나 김주열은 행방불명이 되었다. 형과 함께 시위에 참석했는데 김주열 열사는 경찰이 발포한 최루탄에 맞아 죽게 되었는데 그의 나이 16살이었다. 그 후 경찰서장의 명령으로 마산항 바다에 버려졌다고 한다.     


  그의 어머니는 마산에 가서 아들을 찾기 위해 수소문했지만 찾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오던 중 마산중앙부두 앞바다에서 왼쪽눈에 최루탄이 박힌 시신이 떠올랐다. 바닷물이 너무 차가워 김주열의 시신은 부패되지 않았다고 한다. 용공분자의 난동과 폭동으로 내몰린 마산 시민은 김주열의 시신을 확인하고 울분이 터져 올랐다고 한다.     


  그 후 부정선거 무효와 재선거를 주장하는 학생들의 시위가 전국적으로 확대되어 이승만 정권의 독재에 항거한 4·19 혁명으로 번지게 되었다. 그 결과 이승만 대통령은 4월 26일 하야를 발표하고 정권이 교체되었다.      

  이와 비슷한 사건이 있다. 1987년 6월 9일 머리 뒤쪽에 최루탄을 맞고 7월 5일에 사망한 이한열 열사도 고작 20살이었다. 이는 6·10 민주항쟁의 정점이 된 사건이다. 그는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연세인 결의대회에서 전경이 쏜 최루탄을 맞고 요절하였다. 이 사건이 전국적으로 알려지면서 시민과 학생들이 민주화를 외치며 거리로 나오게 되었고, 결국 군사정권의 항복 선언인 6·29 선언의 도화선이 되었다.      


  그 후 그의 어머니 배은심 선생은 삶이 바뀌어 전국민주화운동유가족협의회를 만들어 서로 위로하고 자식의 뜻을 잇는 활동을 하게 되었다. 그의 어머니는 35년간 아들을 가슴에 묻고 민주화를 위해 헌신하면서 살다 얼마 전 2022년 1월 9일에 돌아가셨다.      


  김주열 열사의 기념공원에 앉아 느닷없이 이한열 열사를 생각하게 되었다. 얼마 전에 우연히 들렀던 이한열 열사의 생가터가 스친다. 내가 화순에 살고 있기 때문에 더 애틋하게 다가왔는지도 모르겠다. 그 세월이 가고 금남로 도로에 앉아 최루가스를 맞아가며 함께했던 친구들은 이순을 넘기지 못하고 먼저 가버렸다. 최루가스와 전경들을 피해 숨어들었던 원각사만이 남아 그날을 증명해주고 있다.     


  김주열 열사 기념공원을 나와 섬진강 맑은 강가를 거닌다. 강물처럼 흘러가면 좋았을 일들이 거슬러 오르다 보니 많은 희생을 낳게 되었다. 세상사 모든 일은 감추려고 해도 시간이 흐르면 맑은 강물처럼 모든 것들이 드러나게 되어있다. 문득 표지석밖에 남지 않는 표지석이 없으면 아무도 모를 이한열 열사의 쓸쓸한 생가터가 생각난다.      


  봄을 찾아 나서면 봄은 낯설게 나를 덮친다. 찾아 나선 봄이 김주열 열사의 기념공원으로 나를 이끌었다. 아무 관계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쩌면 이한열 열사의 생가터가 있는 화순에 살기에 봄은 나를 이곳으로 인도했는지도 모르겠다. 두 분 열사는 제대로 된 봄을 보내지 못하고 이승을 떠났지만, 또 봄이 와서 잊지 않고 기억하게 하니 그래도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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