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꿈에서본시인 Sep 29. 2024

신념을 가진 사람으로 오해받기

롤모델이 있다는 불확실한 자신감을 가진 사람들에게

"당신의 롤모델은 누구인가요?"라고 질문지는 묻는다. 

그것은 기업이 요구하는 자기소개서에서도, 누군가를 처음 만난 자리에서도 낯선 분위기와 어색한 공기를 뿜어내며 아무리 친숙해지려 해도 익숙하지 않은 당혹감과 적절하게 어우러지며 매번 나에게 당돌하게 다가왔다. 입시면접을 마주한 학생에게는 롤모델의 대상이 가족이 되면 점수가 깎인다는 영화의 한 장면이 내 기억 속에 강하게 남아있다. 그것은 곧, 이 사회에서 살아간다면 사심은 철저하게 배제되고 훌륭하게 학습된 롤모델이 누구에게나 공평하고도 또렷하게 존재함이 분명했는데 (롤모델의 명확한 답이 있기 때문에 불편함을 느낀다면 대상자는 그것을 학습하지 못했거나, 기억해내지 못한 것) 나는 왜 이런 당혹감을 늘 가지고 있었던가. 


이와는 반대로 새로운 환경에 도달한 나는 늘 주변 사람들에게 당혹감을 준다. 말 그대로 '롤모델이 누구인가요'라는 질문을 그대로 뒤집어쓴 존재처럼 나는 사람들에게 거리껴지는 돌발상황이 된다. 혹자는 이런 나의 독특한 존재를 기이하게 여기며 호기심을 가득 품은 채로 다가오거나, 흥미롭게 지켜보기도 한다. 위험성을 느끼며 나와는 다른 존재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는 건 인간이 가진 본성 중에 하나이기에 나는 타인이 경계심을 가지는 것에 대하여 당혹스러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타인 스스로 앞서서 견해의 차이나 오해를 받는 상황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나는 차이의 거리감을 분명히 한다. 당신과 내 생각의 차이를 분명하게 언급하여 초반에 오해를 하지 않도록 하며. 동시에 추후에 불필요한 설명을 덧붙이지 않도록 나를 설정하는 것이다. 

사고는 변한다. 상황도 변하고 시대도 흐르며, 독단적으로 존재할 수 없는 나도 사회에 기대며 누군가의 삶과 얽히고 연대하며 타인에게 기대며 하루를 살아간다. 때문에 모든 설정값은 변하고 현재의 내가 취한 자세는 과거의 유산이 될 수 있으며 앞으로의 행동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것은 위계를 갖지 않으며, 기준이 되어 타인을 측정하는 논리가 될 수 없음을 분명히 하고자 한다. 이것은 지금의 나이며, 내가 지금을 소비하는 방법인 것이다.  


* 나는 누구나 당연하게 이용하고 있는 기업의 서비스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며, 모든 사람들이 서비스의 대상자가 아닐 수 있음을 보여준다. 

* 나는 기업 논리하에 고객 정보를 편리하게 취사선택하여 사유재산으로 다룬 이력이 있는 기업과, 신속을 제창하며 고객편의를 위한다는 목적을 가장하여 자본논리만을 주창하는 기업의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는다. 

* 나는 삶을 풍요롭게 한다는 정보를 준다며 정보제공의 순수한 의도를 외치면서 상업논리와 광고를 목적을 교묘하게 가린 불필요한 콘텐츠를 학습하지 않는다. 

* 나는 쉽고, 편함을 목적으로 누군가의 노동을 지우고 감추어버린 과정을 눈여겨보며, 그 속에 생략된 환경파괴와 당연하게 지불하지 않았던 (자본주의의 논리로 수치화될 수 없는) 가치를 묵인하지 않는다. 


앞서 언급한 마음가짐에 더하여 나는 내가 살아가기 위해 섭취하는 음식에 많은 관심을 둔다. 현실에서 음식은 기호와 취향에 따른 선택지임에도 사회에서 공유된 고정관념에서는 육식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아직 생선과 계란은 먹는다) 사람들은 열거한 목록과 연관 지어 나를 독특한 신념을 가진 사람으로 분류하지만 그것은 과연 신념이라고 말할 수 있는 대단한 무언가가 될 수 없다. 우습게도 이것들은 어쩌면 사람이 삶에서 누려야 하는 자유를 제한하여 스스로를 억압하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그만큼 지금까지 개개인이 누리고 차지하며 통제할 수 있는 범위가 넓어지고 더 세분화되었다는 점을 명확히 증명한다. 더 좋고 숫자로 측정되었을 때 성장과 발전의 기록이 가시화됨에 따라 대중은 열광하고 마치 치킨게임을 하듯 멈추지 않는 폭주 기관차처럼 주변을 응시하지 않은 채, 앞으로만 나아가고 있는 이런 분위기가 나는 우려스럽다.  


롤모델을 적어내라던 학창 시절의 설문지를 떠올린다. 가족 중에 한 명, 혹은 그 당시 유명했던 사람들을 적어냈던 기억이 있다. 관심도 없고 그 사람이 무엇을 해서 유명해졌는지도 몰랐지만 으레 다들 그렇게 적어내면 부차적인 설명 없이도 모두에게 수긍의 묵인을 받을 수 있기에, 나는 구태여 번거로움을 택할 이유가 없었다. 세월이 지난 나에게 아직도 낯선 롤모델의 존재가 있다. 그는 때로는 누군가의 모습에서 보이기도 하고, 어떤 이의 행동에서 발견되기도 하며 도통 알 수 없는 형태로 다가와 여전히 이방인의 존재 자체로 남아 있다. 그를 알아가는 것은 매우 번거롭고 곤란하다. 명확하지 않은 대상을 그려내는 것은 많은 에너지를 요하기 때문이다. 여전히 나는 과거에 지우기를 피했던 무거운 짐을 아직도 껴안은 채로 남은 숙제를 하는 기분에 사로잡히는건 어쩌면 내가 택한 신념일지도 모른다. 


작가의 이전글 저녁밥 하기 싫은 저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