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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도 May 16. 2023

이혼신청서와 사직서

왼편엔 이혼신청서가, 오른편엔 사직서가 있다. 오랜 시간 그 둘을 번갈아 바라본다. A4 용지 한 장씩, 각 만 7년과 만 4년의 시간이 있다. 시작하고 지속하기는 어렵지만 끝내는 건 이리도 간단하다. 이 두 서류를 한날한시에 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가족, 결혼, 회사, 사회, 역할, 돈, 명예, 평판, 성취, 소유, 제도, 관습, 예의, 도덕, 관념, 개념, 의미, 이상이라 부르는 것 모두 한때의 꿈이었다. 허상의 궤도, 상징의 수레바퀴 위에서 허깨비들에 봉사하는 삶, 눈먼 노예의 삶이었다.


상징은 실상이 아니다. 상징은 환상이다. 더 이상 이것들에 목줄 묶인 개처럼 휘둘리며 살지 않겠다. 내 목에 둘러진 굴레는 내가 깨부순다.


거울에 비친 굴레에 손을 갖다 댔더니, 만져지지 않는다. 왼쪽에도 오른쪽에도. 그럼 거울 속 저 굴레는 대체 무엇인가?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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