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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수 May 26. 2024

ep.4 언젠가는

그런 생각을 자주 했었던 것 같다. 

'음... 나도 쫄지 않는 날이 오겠지?'


그럴듯한 말로 포장해보고 싶기도 하지만, '쫀다'는 표현보다 정확할 수 있을까 싶어 작게 한숨을 내쉬고 글을 마저 써본다. 


엄마 아빠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내 부모님에게 자주 쫄았다. 

대단한 문제였다기 보다는... 단순히 말하면 난 눈치를 좀 많이 보는 아이였던 것 같다. 

눈치를 많이 봐서 상대방의 감정에 영향을 많이 받기도, 그래서 내가 '말하고 싶은 것'에 집중하기보다 내 말이 '어떤 뜻으로 들릴지'에 더 신경을 썼다. 


나는 겨우 그 작은 '눈치'라는 문제 하나가 날 그토록 외롭게 만들지는 몰랐다. 

내 눈앞에 사람의 감정을 자주 짚어보던 나는 그래서 더 사랑받기도, 의지 받기도 했으나, 그만큼 더 많은 기대를 받기도, 더 많은 화를 받아들여야 하기도 했다. 


엄마는 자신의 기준에서 벗어나면 쉽게 화를 냈다. 

아빠는 대부분 무관심했고, 그의 어떠한 예민한 부분을 잘못 건드리는 이야기를 하면 화를 터트리곤 했다.

물론 나의 부모님은 훌륭하며, 나를 위해 희생하며, 나를 사랑한다.

그걸 모르지 않았기에 나는 더 괴로웠다.


여느 부모님들이 그렇듯 통금 문제로, 연인 문제로, 취업 문제로 부딪히게 될 때면 더더욱 난 아주 큰 방에 고립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본래의 집과 격리된 아주 큰 방. 

아무것도 없는 텅 빈, 잠깐의 자유를 얻은 대가로 지불해야 하는 숨 막히는 공기로 가득 찬. 

나는 그 안에서 질식하기 직전 문을 부수듯 뛰쳐나온다. 내 손으로 직접 문을 열고 집으로 돌아간다.


나의 부모님은 나와 생각이 전혀 다른 문제를 마주하는 순간 나를 '기대의 울타리' 안에 넣어둔 채 소리쳤다. 바깥으로부터 그 울타리 안으로는 수만 가지의 가시 돋친 엉쿨들이 떨어졌다. 나는 그 엉쿨들을 풀어보려, 던져버리려, 피해 다니려 아무리 노력해 봐도 그저 눈을 감는 것 외에는 선택이 없었다. 


그 울타리 안에서 숨죽이고 우는 시간들을 보내며 나는 울타리 바깥에 사람들을 질투했다.

울타리 바깥에서 사랑받는 아이들. 상처받을까 쫄지 않아도 되는 아이들. 우쭈쭈 격려받는 아이들. 


그 아이들이 부럽다 못해 미워졌으며, 그래서 더 들키고 싶지 않았다.

차라리 우월감으로 메꿔버리고 싶었다.

'우리 집도 똑같아. 말만 그럴 뿐이지 얼마나 완벽한데.'

'아, 아니지. 그냥 나는 다 알아. 나에게 왜 그러는지 다 알아. 걱정하는 거지 뭘 그래?'


나는 정상적으로 사고하고 이성적인 판단이 가능하다는 우월감.

나에게 날아드는 날카로운 덩쿨들은 그저 걱정일 뿐이라고. 나는 다 품어줄 수 있다는 우월감.


정말 그럴까? 나는 나에게 묻고 싶다.

그래서 그렇게 꾹 참고 지내오며 난 정말 괜찮았는지. 


모든 걸 담담히 읊어내리면서도 울지 못하는 내가, 그런 날 보며 눈이 벌게진 선생님이.

여전히 내가 뭘 원하는지 찾는 게 너무도 어려운 내가.

내가 정말 이때까지 괜찮았는지. 

나는 아직도 나의 진심에 다가가기가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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