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 무던하게 살아도 망하지 않는다- 망강

뭐 그럴 수도 있지 않나요?

by 망강과 일영

개인적으로 무조건적인 공감을 좋아하지 않는다. 편리하긴 한데 성의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내 이야기를 꺼내며 하이파이브를 날리자니 그건 그거대로 불행배틀이 되어버릴까 봐 망설여 진다. 안타깝게도 이번 답세이는 불행배틀이 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왜냐면 앞의 글에 너무나도 공감했으므로.


특히 최애를 향한 양가적인 감정에 대한 부분을 읽으면서는 반갑기까지 했다. 나 역시 덕질 메이트이자 이 릴레이 에세이의 파트너에게 똑같은 감정을 토로한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당시 나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아이돌이 신인때 보다 예상치도 못할만큼 크게 성공해버리는 바람에 배알이 꼴린 적이 있다. 구찌 티셔츠에 발렌시아가 스피드러너를 맞춰 신고 한 번 입은 명품 코트는 두 번 다시 걸치지 않는 걸 보면서 회의감에 빠졌더랬다. 머리 부터 발끝까지 다 사랑스러워가 아니라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 합해서 천오백만 원. 나도 명품하고 디자이너 제품 진짜 좋아하는데. 막 사랑하는데. 나는 내가 사랑하는 아이돌의 사진을 볼 때마다 내 머릿 속에서는 자연스럽게 계산기를 두드렸다. 그리고 연이어 떠오른 나의 월급과 통장 잔고. 그렇게 때묻은 사회인의 덕질은 지난 7년 간의 연애를 통해서도 느끼지 못했던 애틋함과 사랑을 거쳐 현타로 끝맺음 되는듯 했다 (물론 사랑의 힘으로 극복했다).


지금에서야 고백하건데 나는 이런 비뚤어진 마음을 고백하면서 수치심을 느껴본 적이 없다. 남 잘되는 거 보면 다들 배 아픈 거 아닌가? 하물며 그게 실제로는 단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K-pop 스타라면야. 물론 30대에 들어가면서 밑바닥까지 드러내는 솔직함이 더 이상 위트나 매력 혹은 유쾌함으로 간주될 수 없음을 깨닫는다. 어느정도 숨기고 사는 게 더 현명하고 그걸 꺼내어 보이는 순간 주변 사람들에게 경고 없이 걸러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하지만 내 맞은편에 앉은 상대가 먼저 빤스를 내리고 있다면? 그럼 나도 내리고 머리 위로 흔들어야지. 그리고 나는 이번 글에서 그 시그널을 읽었고 생각했다. 아 지금이구나, 나의 빤스를 휘날릴 때!



나도 자기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들처럼 "제 라이벌은 제 자신이죠” 라고 말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나는 언쿨하다. 그렇다. 나는 정말로 가끔 미치도록 사람들을 이겨먹고 싶을 때가 있다. 그리고 그 것은 평범하게(?) 남들 보다 ‘십원 한 장이라도 더 벌고 싶다’, ‘먼저 승진하고 싶다’부터 ’더 심도 있는 취미를 갖고 싶다’, '남들보다 인격적으로 성숙한 사람이고 싶다'까지 다양한 형태로 발전되곤 한다.


첫 회사에서 친해진 친구 A는 내 인생에서 전혀 만나보지 못한 유형의 사람이었다. A는 사회에서는 꽤 희귀한 타입으로 꼬임이나 구김이라곤 한 톨도 없는 사람이었는데, 그 친구를 보면 천계영 작가의 '좋아하면 울리는'의 주인공 조조는 이런 말이 떠오르곤 했다. "다른사람들이 와서 내게 상처를 주고 발로 차면 내 모습이 일그러 지니까, 자꾸 피는 거야. 나의 모습이 구겨지지 않도록." 내가 지켜본 A는 구겨지지 않는 단단한 하드보드지 같았다. 아니, 아예 아주 말랑하고 폭신해서 아무리 내리치고 구겨도 다시 원형대로 돌아 오고야 마는 탄력성 100%의 잘 부풀어오른 쫀득한 반죽에 더 가까웠다. 그렇게 느낀 건 내가 A와 함께 있던 팀에서 다른 팀으로 전배를 가게되면서 였다. A와 나는 주 5회를 밤 12시까지 야근하는 최악의 팀에 함께 있었고 우리는 그 팀에서 같이 벗어나는 날만을 애타게 기다려왔었다. 하지만 막상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나 홀로 그 팀을 탈출하게되자 나는 마냥 기뻐할 수 만은 없었다. A를 그 팀에 두고 나만 도망쳐야 했기 때문에. 하루 아침에 상황이 뒤바뀐 나는, A에게 이 소식을 어떻게 전해야 할까 한참을 고민했다. 하지만 내 이야기를 들은 A는 정말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내게 먼저 달려왔고 내게 축하한다고 진심으로 말했다. 너무 축하해, 잘됐다 정말 정말로. 질투는 끼어들 자리조차 없단 듯, 1초의 침묵도 없이 나를 보자마자 튀어 나온 축하의 말들, 그리고 순간의 복잡미묘한 감정조차 스치지 않던 친구의 얼굴에서 나는 그 축하가 정말 진심이라고 느꼈다. 그래서 나는 A에게 미안하지 않았다. 다만 고마웠다. 그리고 나도 A가 되고 싶었다. 너무나도 강렬하게 나 역시 꼬임없이 누군가를 진심으로 응원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물론 실패했지만.


이렇게 말하면 내가 질투 덩어리같은데 사실 나는 도와주지 못해 안달난 사람이다. 욕심과 질투가 많으면 타인을 돕는데 인색하다는 학계의 정설을 뒤집고 나는 오지랖이 넓은 성격을 타고났는데, 이 오지랖이 질투와 교차되는 지점에서는 놀랍도록 치졸하게 ‘내가 허용한만큼의 성공’이라는 개념이 탄생한다. 쉽게 말하자면, 네가 잘되길 바라는 마음에 너를 성심성의껏 도와줄 거야. 하지만 니가 나보다는 덜 잘됐음 좋겠어, 혹은 나는 너를 진심으로 응원하지만 (질투 안날만큼만) 적당히 성공했으면 좋겠어-같은 마음이 생겨나는 것이다.


그렇다. 당신이 말한 바로 그 감정. 누군가의 성공과 망함을 동시에 바라는 감정이 내게도 존재한다. 하지만 다행히도 나는 남들을 적당히 도와주는 방법을 모를 뿐더러, 밟고 올라갈 만큼의 배짱도 없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이 사실에 질려서 나를 떠나갈까봐 무서워서 하는 쿠션 문장 맞다. 그럼 어떻게 저 치졸한 개념이 실현될 수 있냐고? 대충 '니가 나보다는 잘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질투를 에너지 삼아 의욕을 불태우는 것이다. 예를 들면, '아니 응원한다고 그렇게 잘되다니? 내가 알려준 방법대로 잘되어 버리다니? 이거 몹시 배가 아프군. 내가 더 성공하고 말겠다! 야근 가보자고!' 정도로 생각하면 되겠다. 아 이 얼마나 건설적인 질투인가. 자발적인 경쟁 시스템의 노예여, 이 조선 사회에 최적화된 적당히 착하고 적당히 질투심 많은 멍청이 같으니.... 아마 나는 Love yourself 같은 유해한 개념이 팽배한 서구권에서는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그치만 난 단지 너의 성공을 응원하는 만큼 나의 성공도 간절하게 원할 뿐인 걸.



사람이 과연 단 한 점의 불순물조차 섞이지 않은 순수한 마음을 갖는 게 가능할까? 불가능하다고 확신한다. 사람은 복잡하고 복합적이므로. 그러한 연유로 아주 순수한 독기 또한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 편이다. 해서 감히 바래보건데, 부정적이고 유해한 감정만 모아놓은 것도 아니고 심지어 부정적인 기운을 독기처럼 뿜고 다니면서 피해를 주고 다니는 것도 아니라면야. 못나고 저열한 마음 정도는 그냥 못본척 그냥 지나가주시면 안될런지. 아 솔직히 그냥 상자에 넣고 얌전히 묻어둔다면 뭐가 문제고 뭐가 이상한가 싶다. 그래서 나는 내린 빤스를 번쩍 들어 머리 위에서 휘두르며 한 번 더 말해보고 싶다. 뭐- 어때요-!

물론 그렇다고해서 이 글을 실명으로 세상에 내보내지도 않겠거니와, 이 글의 존재를 그 누구에도 내 입으로 알리지도 않겠지만


한때 고요한 물같은 내면을 가진 사람들을 동경한 (이라고 쓰고 질투라고 읽는다) 적이 있다. 다른 사람이 던진 돌에도 잠시 흔들리고 말고 싶었다. 혹시나 종교를 골라야 한다면 불교를 택하고 싶었다. 회자정리나 사필귀정을 전두엽에 새기며 세속의 감정과 관계, 경쟁과 질투심에서 벗어나 해탈하고 싶었다. 하지만 질투를 이마빡에 새기면서 본투비 질투쟁이로 태어난 걸 어쩌겠는가. 마인드 컨트롤 해보겠다고 일기도 써보고 심리상담도 받아봤는데 슬프게도 다 소용 없었는 걸. 결국 내가 다다른 결론은 나를 긍정할 것인가 아니면 계속 내 마음을 바꾸려고 노력할 것인가였다. 혹시 이 외에 더 좋은 방법이 있다면 내게 살짝 귀뜸해줘도 좋겠지만, 당분간 나는 좀 더 쉽게쉽게 살아보기로 했다. 세상에 신경쓸 게 얼마나 많으며 고칠 건 또 얼마나 많은데, 남을 해하지도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지도 않는 내 안의 작고 귀여운 나쁜 마음 때문에 괴로워야겠어? 아무도 모르면 이 세상엔 없는 거나 마찬가지야, 하며 나의 찌질한 모습도 긍정해 보는 것이다.


사회가 점점 촘촘해지고 있다. 10년 전, 논술 입시 준비하면서 자주 썼던 도입부 문장이 '교통과 통신의 발달로 사회는 발전했고 관계는 더 복잡해졌다'였는데, 어떻게 된 게 십년 동안 그놈의 교통통신이 더욱 발달해 버린 탓에 사람과 사람사이가 가까워지다 못해서 밀착되고 찌부되고 있다. 인스타를 보면 친구의 애인이 차를 뽑았다는 소식에도 가슴 한 켠이 뜨거워진다. 질투, 경쟁, 미움. 이 모든 건 관계가 구축되지만 않았어도 느끼지 않았을 감정들일지 모른다. 기쁨이나 행복은 날씨만 좋아도 혼자서 느낄 수 있는데 왜 미움이나 질투 경쟁같은 건 상대방이 있어야만 느낄 수 있을까. 타인 의존적인 감정인만큼 시간이 흐르고 세상이 발전할수록 부정적인 마음들의 힘이 더 세지는 건 어쩌면 불가항력적인 일같다. 결국 지저분한 감정들은 필연적으로 인간이 감내해야할 숙명일지도.


고로 나는 그 치졸한 마음을 애써 꺾지도 덮지도 이기려고도 하지 말자고 얘기하고 싶다. 다만 내 마음이 간장종지에서 귀이개로 조금씩 줄어들 때마다, 그때 그때 그릇에 맞게 나 스스로에 대한 기대치도 줄여가면서 살아보자고 다짐해 본다. 뭐 사람이 귀이개만할 수도 있고 대접만한데 물이 반만 담길 수도 있고 그런 거 아니겠나 하면서.


일단 오늘은 나에게 잘합시다 라는 책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해파리에대해 찾아보니 헤엄치는 힘이 약하기 때문에 수면을 떠돌며 생활한다고 나와있었다. 어쩐지 울컥했다. 헤엄치는 힘이 약하면 수면을 떠돌며 살면된다' 라고. 가끔 이런 감정이 감당하기 힘들 때면 그냥 떠다니며 살아봐야겠다. 감정을 이기지 말고 복잡한 감정들 사이로 헤엄쳐서 빠져나가려 하지 말고. 그냥 내 마음이 가실 때 까지 표류해봐야지. 사람이 그럴 수도 있지 안그래? 하며 흘러가다보면 옆에서 같이 떠다니는 해파리 몇을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생각보다 더 자주 만날지도 모르고. 그럴 땐 오늘처럼 하이파이브 하면 조금 덜 외롭게 떠다닐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나는 당신이 괴로울 때마다 함께 의식적으로 해파리가 되기를 권해보겠다.


마지막으로, 앞선 글에서 양가적인 감정을 느낄 때 가장 듣고싶은 말이 '그럴 수도 있지'라고 되어있어 한 번 말해 본다.


뭐 그럴 수도 있지. 안그래요?

아무리 봐도 님만 그런 건 아닌 듯 하며 이건 진심이고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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