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 배추 텃밭에서 기르기
배추 속은 꽉 찼어?
계절은 시간과 함께 변하지만, 저는 오늘도 평소와 다름없이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보내고 텃밭으로 갈 준비를 했습니다. 장갑과, 양말, 장화, 그리고 커피를 챙겼지요. 제게도 변한 게 있다면 아이스커피가 아닌 따뜻한 커피를 준비해 갑니다. 이제는 일상이 되어버린, 익숙한 텃밭에 물 주러 가는 길에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김장이라면 양쪽 귀를 쫑긋하시는 엄마에게 텃밭 배추와 무들의 안부를 전해드리기 위해서요. 이번 통화에서도 귀에 딱지가 앉을만한 질문을 받았습니다.
"배춧속은 꽉 찼어?"
김장 배추를 기르면서 여기저기서 가장 많이 들은 질문입니다. 텃밭에서 만난 친구 부모님도, 농사에 필요한 부자재를 사러 들리는 농약사에서도 들어본 질문이지요. 배추 농사를 짓다 보면 여기저기서 꼭 듣는 질문입니다. 이전까지는 그저 '배추 잘 자라고 있니?'라는 의미겠거니 하고 가볍게 넘겼지만, 이번에는 왠지 그냥 넘어가면 안 될 것 같아 엄마에게 되물었습니다.
"배춧속이 꽉 찬 게 도대체 뭐야? 어떤 게 꽉 찬 건지 잘 모르겠어."
엄마의 말에 따르면 속이 꽉 차면 손으로 배추 가운데를 눌러봤을 때 딱딱하다고 합니다. 말 그대로 배춧속이 알차게 여물었냐의 의미인데, 눌러보면서 테스트를 해볼 수 있다고 하더군요. 마치 장미꽃처럼 피어오르는 배추의 가운데 봉우리 모양 부분을 눌러서 확인해 볼 수 있는 거죠. 그리고 눈으로 봤을 때 가운데 배추 속으로 빈 공간이 보이면 안 된다고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희 배추는 아직 속이 차고 있는 중이고, 11월 말쯤 수확할 때 되어야 속이 차지 않을까 싶습니다.
무처럼 뚝심 있고 추진력 있게
씨를 뿌려서 파종한 저희 텃밭 무를 기억하시나요? 부모님의 도움으로 배추를 심으면서 무 씨앗을 파종했습니다. 새싹이 어느 정도 자라고 나서는 제가 솎아주기를 했었습니다. 튼튼해 보이는 무만 골라서 두고, 약해 보이는 무는 모두 뽑아버렸죠. 그렇게 살벌한 무게임에서 살아남은 무들이 어느덧 누가 봐도 무일 것 같은 무의 모습으로 자랐습니다. 무 게임 때 튼튼한 무만 남겼던 것 같은데, 지금 보니 유독 튼튼해 보이는 무와 유독 약해 보이는 무는 여전히 있더군요. 평화로워 보이는 텃밭 세계가 생각보다 치열한 생존 장소인 것 같아 씁쓸해지기도 하네요.
잘 자란 무는 굳어서 딱딱해져버린 땅을 가볍게 밀치고 올라와서, 이미 땅 위로도 상당한 지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실 그동안 무는 왜 위는 파랗고 아래는 하얀지 궁금했습니다. 이제 보니 파란 부분은 땅 위로 올라온 부분이었네요. 땅 위로 올라온 파란 부분이 무에서 유독 달달한 부분인 거 아시나요? 땅 위에서 갖은 추위와 풍파를 견디면서도 그렇게 달달할 수 있었네요.
땅 위로 무섭게 치고 올라오는 무는 크기가 상당히 커다랗습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웅장함에 가슴도 살짝 뭉클해지고요. 작은 씨앗이 이렇게 멋진 무로 자라주니 초 보농부 입장에서는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메말라 갈라져가는 땅 위로, 깊은 땅속으로, 양쪽으로 뚝심 있고 추진력 있게 계속 커가는 무를 보니 저도 저절로 무를 닮고 싶어집니다.
사람도 배추, 무도 매한가지
밭일을 가볍게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중에 우리 딸이 결혼할 만한 사람을 데려온다고 한다면, 딸에게 이 질문은 해보고 싶습니다.
"배추처럼 속이 꽉 차고, 무처럼 뚝심 있고 추진력 있는 사람이니?"
어찌 보면 꼰대 같아 보이는 저 질문에는 미래의 딸아이가 그저 무궁무진할 만큼 좋은 사람을 만나기를 바라는 엄마의 마음이 가득 녹아있습니다. 이제 겨우 4살인 딸아이지만, 미래에 제 곁을 떠날 생각을 하니 갑자기 눈시울이 붉어지네요. 함께 있을 때 사랑을 더 아낌없이 나눠줘야, 나중에 떠나보낼 때 울지 않고 보내줄 수 있겠지요? 딸아이 하원하러 가는 발걸음이 오늘은 즐겁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