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WT Nov 09. 2022

겨울 텃밭은 영업 중

텃밭과의 이별을 앞두고

겨울 텃밭은 영업 중


눈도 오지 않은, 크리스마스도 지나지 않은 겨울 초입입니다. 비록 겨울이 눈옷은 아직 입지 못했지만, 아침저녁으로 살결에 느껴지는 찬 바람을 맞아보니 겨울이 맞긴 맞는구나 싶더군요. '겨울인데 아직도 밭일을 해?'라고 생각하는 분도 계실 테죠. 저희 텃밭은 겨울임에도 아직 영업 중입니다. 물론 여름이라는 싱그러운 계절만큼 많은 농작물을 키우고 있지는 못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농작물의 생장도 여름만큼 활발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 추운 계절을 좋아하는 농작물들이 있기에, 겨울에도 텃밭은 여전히 움직이고 있습니다. 이달 말에 텃밭 농작물을 수확해서 김장을 하고 나면, 겨울 텃밭은 드디어 문은 닫겠지요.


겨울이 되고 달라진 점이 몇 가지 있는데요. 매일 내려가던 커피가 달라졌습니다. 얼죽아까지는 아니지만, 시원한 커피를 좋아하던 저도 이제는 따뜻한 커피를 내려갑니다. 작업복으로 입는 바지도 달라졌습니다. 매번 물 기르는 일을 하면서 저는 밥 먹듯이 바지를 적십니다. 이제는 바지도 두툼한 기모 바지로 입고 다닙니다. 위에 가볍게 걸쳐 입던 외투도 상당히 두툼해졌죠. 힘든 일이 아닌, 비교적 가벼운 농사일로 가득한 제 텃밭에서는 추위에 맞서는 것도 중요합니다. 


겨울 텃밭으로 나가는 옷차림


마지막으로, 이제 텃밭과 거리를 두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곧 있으면 텃밭과 이별을 하게 되기 때문이죠. 겨울이라는 추운 계절 동안 잠시만 헤어지는 것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영영 이별일지도 모릅니다. 친구 아버님 밭의 모퉁이를 빌려 쓰는 저는 그저 소작농이니까요. 갑자기 이별에 닥치면 우르르 무너져버릴지 모르는 제 마음을 다잡기 위해서, 미리 텃밭과 거리를 두려고 제 자신을 준비시키고 있습니다. 



크리스마스 소원


'겨울에 농사를 쉬면 참 편하겠다'싶은 마음보다, '겨울이 돼서 농사를 짓지 못하면 나는 어떡하지?'라는 걱정이 먼저 앞섭니다. 육아 스트레스를 한가득 들고 와서, 농사를 지으며 땅속에 그 스트레스를 묻어버리고 상쾌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가곤 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조만간 저만의 스트레스 해소 창구도 사라지는 격이네요. 그동안 텃밭을 가꾸며 우리 집 식탁은 물론 제 마음까지 풍요로워지는 신기한 경험을 했는데, 이제 그 마음의 풍요로움을 느낄 수 없다는 사실이 벌써부터 속상하기만 합니다. 


아쉬움을 곱씹으며 농사를 짓고 있는 겨울 텃밭


제 욕심만 챙기자면 겨울에도 쉬지 않고 밭에서 농사를 짓고 싶습니다. 하지만 그동안 제게 많을 걸 내어준 텃밭의 흙들도 쉼의 시간이 필요하겠지요. 겨울 동안 쉬면서 그동안 내어준 에너지를 다시 회복해, 내년에 다시 저희에게 아낌없이 내어주겠지요. 이별이라는 단어 말고, 내년을 위해서 잠시 한 발짝 물러설 시간이 다가온다고 생각하니, 이별을 앞둔 마음이 한결 편안해지는 것 같습니다.


몇 달 전에는 주위에 농업용 토지를 사고자 부동산까지 드나들 정도로 저는 텃밭에 진심인 사람입니다. 텃밭이라는 공간에서 그동안 얻은 게 너무 많았기에, 적어도 당분간은 텃밭을 계속 일구며 살아가고 싶습니다. 내년에도 텃밭을 일구게 된다면, 맨땅에 헤딩 수준이었던 올해보다 더 잘 지을 수 있겠다는 자신감도 있고요. 물론 내년에도 저만의 이 브런치 공간을 더 즐겁고, 새로운 이야기로 채워갈 마음의 준비도 되었습니다. 산타에게 소원을 빌기에는 너무 어른이 되었지만, 올해에는 딸과 함께 산타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소원으로 빌려고 합니다. 내년에도 일굴 수 있는 텃밭을 소원으로요! 

작가의 이전글 속이 꽉 차는 게 그렇게 중요한가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