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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WT Nov 04. 2022

속이 꽉 차는 게 그렇게 중요한가요?

김장 배추 텃밭에서 기르기

배추 속은 꽉 찼어?


계절은 시간과 함께 변하지만, 저는 오늘도 평소와 다름없이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보내고 텃밭으로 갈 준비를 했습니다. 장갑과, 양말, 장화, 그리고 커피를 챙겼지요. 제게도 변한 게 있다면 아이스커피가 아닌 따뜻한 커피를 준비해 갑니다. 이제는 일상이 되어버린, 익숙한 텃밭에 물 주러 가는 길에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김장이라면 양쪽 귀를 쫑긋하시는 엄마에게 텃밭 배추와 무들의 안부를 전해드리기 위해서요. 이번 통화에서도 귀에 딱지가 앉을만한 질문을 받았습니다.


"배춧속은 꽉 찼어?"


김장 배추를 기르면서 여기저기서 가장 많이 들은 질문입니다. 텃밭에서 만난 친구 부모님도, 농사에 필요한 부자재를 사러 들리는 농약사에서도 들어본 질문이지요. 배추 농사를 짓다 보면 여기저기서 꼭 듣는 질문입니다. 이전까지는 그저 '배추 잘 자라고 있니?'라는 의미겠거니 하고 가볍게 넘겼지만, 이번에는 왠지 그냥 넘어가면 안 될 것 같아 엄마에게 되물었습니다.


"배춧속이 꽉 찬 게 도대체 뭐야? 어떤 게 꽉 찬 건지 잘 모르겠어."


엄마의 말에 따르면 속이 꽉 차면 손으로 배추 가운데를 눌러봤을 때 딱딱하다고 합니다. 말 그대로 배춧속이 알차게 여물었냐의 의미인데, 눌러보면서 테스트를 해볼 수 있다고 하더군요. 마치 장미꽃처럼 피어오르는 배추의 가운데 봉우리 모양 부분을 눌러서 확인해 볼 수 있는 거죠. 그리고 눈으로 봤을 때 가운데 배추 속으로 빈 공간이 보이면 안 된다고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희 배추는 아직 속이 차고 있는 중이고, 11월 말쯤 수확할 때 되어야 속이 차지 않을까 싶습니다.


속이 꽉 차고자 열심히 노력하고 크고 있는 배추



무처럼 뚝심 있고 추진력 있게


씨를 뿌려서 파종한 저희 텃밭 무를 기억하시나요? 부모님의 도움으로 배추를 심으면서 무 씨앗을 파종했습니다. 새싹이 어느 정도 자라고 나서는 제가 솎아주기를 했었습니다. 튼튼해 보이는 무만 골라서 두고, 약해 보이는 무는 모두 뽑아버렸죠. 그렇게 살벌한 무게임에서 살아남은 무들이 어느덧 누가 봐도 무일 것 같은 무의 모습으로 자랐습니다. 무 게임 때 튼튼한 무만 남겼던 것 같은데, 지금 보니 유독 튼튼해 보이는 무와 유독 약해 보이는 무는 여전히 있더군요. 평화로워 보이는 텃밭 세계가 생각보다 치열한 생존 장소인 것 같아 씁쓸해지기도 하네요.


잘 자란 무는 굳어서 딱딱해져버린 땅을 가볍게 밀치고 올라와서, 이미 땅 위로도 상당한 지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실 그동안 무는 왜 위는 파랗고 아래는 하얀지 궁금했습니다. 이제 보니 파란 부분은 땅 위로 올라온 부분이었네요. 땅 위로 올라온 파란 부분이 무에서 유독 달달한 부분인 거 아시나요? 땅 위에서 갖은 추위와 풍파를 견디면서도 그렇게 달달할 수 있었네요.


땅 위로 무섭게 치고 올라오는 무는 크기가 상당히 커다랗습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웅장함에 가슴도 살짝 뭉클해지고요. 작은 씨앗이 이렇게 멋진 무로 자라주니 초 보농부 입장에서는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메말라 갈라져가는 땅 위로, 깊은 땅속으로, 양쪽으로 뚝심 있고 추진력 있게 계속 커가는 무를 보니 저도 저절로 무를 닮고 싶어집니다.


뚝심 있고 추진력 넘쳐보이는 건장한 무



사람도 배추, 무도 매한가지


밭일을 가볍게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중에 우리 딸이 결혼할 만한 사람을 데려온다고 한다면, 딸에게 이 질문은 해보고 싶습니다.


"배추처럼 속이 꽉 차고, 무처럼 뚝심 있고 추진력 있는 사람이니?"


어찌 보면 꼰대 같아 보이는 저 질문에는 미래의 딸아이가 그저 무궁무진할 만큼 좋은 사람을 만나기를 바라는 엄마의 마음이 가득 녹아있습니다. 이제 겨우 4살인 딸아이지만, 미래에 제 곁을 떠날 생각을 하니 갑자기 눈시울이 붉어지네요. 함께 있을 때 사랑을 더 아낌없이 나눠줘야, 나중에 떠나보낼 때 울지 않고 보내줄 수 있겠지요? 딸아이 하원하러 가는 발걸음이 오늘은 즐겁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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