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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WT May 09. 2023

사서 하는 고생

숨 쉬기 좀 벅차도 괜찮습니다. 가슴도 함께 벅차오르니까요.

또 뵙네요. 식자재 가드너입니다.


안녕하세요. 정말 오랜만에 브런치에 들어와 봅니다. 작년에는 텃밭 농사를 짓고, 브런치에 그 기억을 하나씩 남기며 한 해를 즐겁게 보냈었죠. 마지막 글이 작년 11월 28일이니, 5개월이 넘어서는 이제야 다시 맥북을 두드리고 있는 셈이네요.


저는 진정한 '서프라이즈'로 찾아온 셋째를 뱃속에서 키우며, 사랑하는 두 아이, 그리고 남편과 함께 잘 지냈습니다. 코로나19의 감소세 덕분에 감사하게도 온 가족이 해외여행도 다녀올 수 있었고, 텃밭농사를 쉬면서 생긴 시간을 이용해 코딩 공부도 하며 지냈습니다. 큰 아이는 올해부터 유치원을 다니며 한 뼘 성장했습니다. 마냥 아이 같고 내가 케어해줘야 하는 존재에서 벗어나, 나중에 커서 나의 든든한 벗이 돼줄 것 같은 듬직한 존재로 변해가고 있죠.


5살 첫째 아이가 주는 기쁨과, 3살 둘째 아이가 주는 기쁨의 색은 정말 다릅니다. 5살 첫째는 성장한 의사소통을 스킬을 뽐내며 가끔씩 엄마를 챙겨주는 감동 포인트를 보여주는 반면, 3살은 어디서도 찾아보기 힘든 "귀요美"를 질질 흘리고 다닙니다. 이미 남산만해진 배를 잡고 아이들을 챙기며 정신없는 하루를 보내면서도, 두 아이의 서로 다른 매력이 주는 에너지로 하루하루를 넘길 수 있게 되더군요. 아이들 때문에 힘들지만, 아이들 덕분에 힘이 납니다.



사서 하는 고생.


4월 10일의 기억


텃밭 농사를 시작해도 된다는 친구 아버지의 연락을 받고, 텃밭 농사의 기초 단계인 멀칭(비닐 치기)을 하러 갔습니다. 멀칭을 하면 텃밭 속 수분이 오래 유지되고, 병충해도 막아줍니다. 그렇기 때문에 텃밭농사를 시작할 때면 제일 먼저 하는 작업이지요. 오랜만에 만난 텃밭은 친구 아버지의 땀과 배려로 땅도 곱게 일궈지고, 깨끗이 단장한 모습으로 저를 반겨주었죠. 목욕탕에서 목욕재계를 깨끗이 마치고 바나나우유를 하나 물며 집으로 가던 제 어린 시절이 생각나는 모습이었습니다.


두 번째로 해보는 멀칭 작업은 이번에도 어려웠습니다. 사실 멀칭은 농사 중 제가 제일 꺼려 하는 작업입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제가 어지간히 못합니다. 가뜩이나 못하는데 이번에는 임신으로 몸까지 무거우니, 얼마나 못난 멀칭이 될지 보나 마나 뻔했지요. 그래도 피할 수 없으니, 힐링한다는 마음으로 하나하나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인고의 시간이 지나고 텃밭 세 고랑의 멀칭을 마칠 수 있었지요.



멀칭을 마치고, 그중 한 고랑에 미리 준비해 둔 감자를 심었습니다. 친구 아버지께서 흔쾌히 나누어 주신 감자를 싹이 잘 트도록 흙과 물속에 저장해 두었다가, 갓 멀칭 한 텃밭에 심어주었죠. 시기상 조금 늦게 심었기에, 괜히 심었나 고민도 잠시 했었습니다. 하지만 엊그제 장에 갔다가, 감자값이 고구마값보다 비싼 귀한 몸으로 환골탈태한 걸 보니 잘 심었나 싶기도 하더군요.




숨 쉬기 좀 벅차도 괜찮습니다. 가슴도 함께 벅차오르니까요.


가족을 비롯한 주위의 많은 분들이 임신 중에도 텃밭을 가꿀 생각인지 물어보시더군요. 저는 사실 일말의 흔들림도 없었고, 고민도 하지 않았던 질문을요. 저는 당연히 텃밭을 올해도 가꾸기 시작했습니다. 저도 물론 몸이 너무 힘들지 않을까 염려는 했지만, 제 마음속에 정답은 '그래도 당연히 해야지!'였습니다.


사람은 신체적 건강도 중요하지만, 정신적 건강도 그만큼 중요합니다. 특히 요즘 현대시대에는 두말할 나위 없이 정신 건강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지요. 텃밭 농사를 다시 시작하면서 신체적으로는 조금 힘들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텃밭을 다녀오고 다음날이면, 허벅지 주위로 젖산이 뭉친 통증이 올라옵니다. 통증이 '너 어제 텃밭 다녀왔잖아.'라면서 어제의 일과를 느닷없이 제게 상기시켜 주죠. 하지만 텃밭을 다녀온 날은 자연 속에서 보낸 시간 동안 스트레스도 많이 해소되고, 편안한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어 좋습니다. 몸이 무겁다는 핑계로 가만히 소파에 기대어 넷플릭스만 보며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 훨씬 건강한 하루를 보내게 되는 거죠.


다른 사람들 눈에는 괜히 사서 하는 고생으로 보일지 몰라도, 제게는 돈을 주고서라도 하고 싶은 그런 소중한 취미이자 제 삶의 일 부분이 바로 텃밭입니다. 제 몸이 어디까지 버텨줄지는 모르겠지만, 올해도 열심히 텃밭을 통해서 건강한 정신도 가꿔나가 보고자 합니다. 올해는 혼자 하는 텃밭 농사가 아닌, 뱃속의 셋째와 함께하는 농사가 되겠네요. 텃밭의 건강한 기운 많이 받고, 몸도 마음도 건강한 아이를 낳을 수 있길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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