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어른을 만들어 주진 않는다.
여전히 내 마음은 어릴 적과 크게 다르지 않다. 거짓말도 가끔 하고 몰래 울기도 하며 친구와 다투기도 한다. 내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은 정말 너무 힘든 일이라 사실 잘 인정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이 잘 되는 것에 칭찬은커녕 배가 아프지 않은 것만으로도 나는 잘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렇게 놓고 보니 어렸을 때 생각했던 그런 어른이 난 아닌 것 같다. 그리고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그런 어른들은 사실 세상에 그다지 많지 않다는 것도 알아버렸다. 내가 그런 것처럼 마음은 여전한데 나이 먹고 몸만 커져버린 아이들이 세상에는 많다. 하지만 완전한 사람이 없는 것처럼 완전한 어른은 없다는 것도 알고 이해하게 되었다.
사람이 나이 드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모두 자연스럽게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아이들은 유치하다. 어른들은 성숙하다. 성숙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마음이나 감정을 함부로 휘두르지 않는 행동, 배려와 양보, 갈등을 해결하는 능력, 인내심 등을 지니고 있다. 아이 일 때의 그것과는 확연히 다르다.(달라야만 한다.) 성숙한 사람이 많은 사회는 보다 새로운 것에 허용적이고 안정적이며 평화롭다. 성숙한 어른이 많은 사회 속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더 많은 가능성을 가지고 좋은 어른으로 성장할 기회가 많이 주어진다.
이것은 조직 안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과중한 업무와 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대부분의 사람들은 최선을 다해 버티고 또 열심히 살고 있다. 그러나 불행히도 조직 안에는 필요한 만큼의 어른이 부재하다. 직장에서 어른이란 사람들이 충분히 존재한다면 적어도 같이 일하는 동료들을 따돌리고, 괴롭히고, 갑질하고, 죽음으로 내몰지는 않을 것이다. 조금도 자라지 못한 몸만 큰 나이 먹은 사람들이 조직 안에서는 그런 일들을 버젓이 저지르고 부끄러움 없이 집에 와서는 세상 좋은 가족의 일원으로 행세한다.
그들은 자신이 조금도 성장하지 못했음을 알지 못한다. 그들은 그저 다른 친구보다는 조금, 혹은 많이 공부를 잘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머리가 많이 좋았을 수도 있다. 눈치가 빨라 다른 사람들로부터 호감을 받는 법을 일찍 알아챘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은 그저 머리 좋고, 공부 잘하고, 눈치가 빠른 덜 자란 '아이' 일 뿐이다. 조금도 성숙하지 못한 인간으로 몸만 자라 어른 행세를 한다. 생각이 유치한 아이에게 그들이 생각한 대로 행동할 수 있는 성인 몸이 주어진 결과이다. 당연히 아이는 성숙한 어른의 세계를 모르니 부끄러움도 모른다.
이렇게 놓고 봤을 때 좋은 어른이 되는 여러 가지 요건 중 하나가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이 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행동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지하고 그것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끼게 하는 마음은 다음에는 그렇게 행동하지 않아야겠다는 다짐을 낳는다. 부끄러움은 자기반성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반대로 부끄러움을 모르는 인간만큼 혐오스러운 사람이 없다. 모든 위선과 기만, 비난과 거짓, 남을 짓밟는 것에 대한 잔인한 기쁨을 즐기는 덜 자란 사람들은 자신의 행동에 대해 반성하지 못한다. 그들은 뻔뻔스럽다.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들은 영영 자라지 못한다. 그것이 얼마나 불행한 일인지 인생이 끝날 때까지 알지 못하고 끝날 가능성이 높다. 자기 주변에 모든 잘못된 것들은 자기 잘못이 아닌 다른 사람의 탓이다. 오로지 그들의 부끄러움은 다른 사람의 몫인 것이다.
어쩌면 이 사회에 문제는 점점 부끄러움을 모르는 이런 사람들이 많아져서 생기는 일일 수도 있겠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어른들은 부끄러움을 모르는 아이를 길러낸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한 시인은 이미 이 사회에서 죽은 지 오래다. 오늘날 이 사회는 그런 부끄러움을 느끼는 마음을 유약한 마음이라고 정의해 버린 듯하다. 오히려 부끄러움을 부끄러워해 버리도록 부추기고 뻔뻔스러움을 당당함이라 가르친다.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할 만큼의 용기를 가지고 있는가?
나는 다른 사람에게 먼저 사과할 수 있는가?
나에게 다음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지금과 다르게 행동할 수 있는가?
나는 다른 사람의 실수를 인내심을 가지고 지켜봐 줄 수 있는가?
나는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일까?
나이만 먹은 어른은 부끄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