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를 인정하고

치유에 힘쓰자

by zejebell

사회가 발전해 나아감으로써 삶은 편리해지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더욱 복잡해지는 측면이 있다. 옛날에는 없었던 전화가 여러 기능으로 발전하여 편리성을 더해주지만 그것으로 인해 연장되는 업무들, 피할 수 없는 연락들, 다수의 삶 속에서 느끼는 소외감, 어쩌면 그 안에서 벌어지는 언어적, 문자적 폭력성 등 이미 많은 사람들이 경험하고 느껴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 문제에 공감하기도 하고 싫어하기도 하는 감정을 가진다. 점점 복잡해지는 삶과 마찬가지로 관계 역시 복잡성을 가지게 된다. 삶에서 만나고 헤어지는 일이 계속해서 반복되지만 현재의 삶에서 제대로 된 헤어짐이 있기도 전에 새로운 만남, 관계들이 늘어만 가게 되는 결과이다. 이것은 인간관계에 복잡성을 더하여 준다.


특히 직장에서 벌어지는 많은 일 중에 특히 사람들이 힘들어하고 상처를 많이 받는 점은 바로 복잡한 관계에서 오는 갈등 상황이다. 직장이 힘든 이유가 일이 힘들어서라기보다는 보기 싫은 인간 때문이라는 말이 있다. 알게 모르게 그런 감정들이 관계 속에서 노출되고 계속해서 부딪치다 보면 상처는 필연적으로 받게 되기 마련이다. 물론, 가족 간에 친구 간에도 마찬가지이다. 선과 악의 이분법적인 구도를 나눌 수 없는 그런 갈등 속에서 마음이 약한 사람은 더 큰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다.


이제까지 살면서 상처를 한 번도 받지 않고 살았다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것은 병에 한 번도 걸린 적이 없다는 말과 같다. 어릴 때 어른들이 하신 말씀 중 아이들은 아프고 나면 큰다는 말이 있다. 반대로 생각해 보면 성장하기 때문에 아픈 성장통일 수도 있겠다. 하물며 몸도 그럴진대 내 정신이 어른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얼마큼이나 아파야 하는 것인지 생각해 볼 문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나를 비롯해) 상처받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상처는 나쁜 것으로 인식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모든 상처가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아무리 나쁜, 엄청나게 큰 상처라 할지라도 그것을 통해 내가 배울 수 있는 것이 있고, 뭔가 지혜를 얻을 수 있는 점이 있다면 우리는 우리가 받은 상처를 성장통이라고 부를 수 있겠다.


모든 상처가 성장통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상처를 상처라고 생각하지 않고,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마음은 상처를 회복시킬 수 있는 시간을 지연시킬 뿐이다. 내가 얼마만큼이나 강한 사람이든, 어떤 것에도 상처받는 약한 사람이든 간에 중요하지 않다. 자신이 받은 상처를 상처로써 인정할 줄 아는 것이 중요하다.


상처가 오래되면 고통이 되고 고통이 오래되면 삶에 다른 부분에도 전염병처럼 퍼져버린다. 그 상처가 내 탓이 아니라 해도 그 상처는 내 삶에 영향을 미친다. 상처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해서 상처가 아니게 되는 것은 아니다. 상처를 입기 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이미 생긴 상처가 나머지 자신의 삶을 잡아먹지 않게 해야 한다.


그것이 혼자서는 불가능할 수도 있다. 도움이 필요할 수도 있다. 상처에 약을 발라 줄 사람이 자신이 아닐 수도 있다. 동물들은 자신이 부상을 입었을 때 숨긴다고 한다. 그 상처가 드러나게 되면 적들에게 표적이 되기 때문이다. 사람도 비슷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위험을 감수하고 내 편이라고 생각되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할 용기를 내보는 것도 좋다. 그렇게 해서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우리는 인간관계에서의 상처를 조금이나마 치유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회복된 상처들은 단단해진 딱지가 앉고 더 이상 아프지 않게 될 때가 올 것이다. 어쩌면 웃으면서 그 상처에 대해 이야기할 날도 있을 것이다.


내가 아무리 열정적이고 적극적이며 삶을 뜨겁게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해도 언젠가는 쉬었다 가야 한다. 쉬지 않고 계속해서 달릴 수 있는 차는 없다. 어쩌면 상처를 통해 매일매일 자신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상처 하나 없이 깨끗한 무릎을 가진 사람은 나 자신 속에 웅크리고 자신의 삶을 토닥이며 되돌아본 적이 없다. 왜냐하면 그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중에 넘어지게 되면 다시 일어나는 방법에 대해 늘 넘어지던 사람보다 잘 일어나기 어렵다.


삶을 온전히 통제하면서 사는 사람이 있을까? 삶은 여전히 불확실성의 연속이고 고난과 고통의 복불복 게임과 비슷하다. 복잡한 삶 속에서도 그것을 몰랐던 어렸을 때 그랬듯 그저 살아가면서 입은 상처를 상처로 인정하고 어렸을 때처럼 충분히 아프고 난 다음 다시 일어나 친구들과 뛰어놀면 되는 것이다.



상처는 당신의 미래에 대한 예측을 위한 참고 사항이 아니다.

당신이 그 상처를 통해 어떤 사람이 될지는 전적으로 당신에게 달려있다.

<존 그리슨>















keyword
이전 13화나는 어른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