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을 인정하는 성숙한 인간이 되자.
이 시대는 틀린 사람이 없는 시대이다. 자신이 하는 말이 다 맞고 다 옳다. 자신이 틀렸다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의 의견은 존중받아 마땅하다. 머릿속에 생각을 생각으로만 끝내는 사람이 점점 없어지고 있다. 인터넷 세상엔 전문가들이 넘쳐난다. 우리 회사도 그렇다. 내 주변도 그렇다. 내게 자신의 틀림을 인정하는 사람은 나보다 권력에 있어 아래에 있다고 여겨지는 사람들뿐이다.(사실 그런 사람은 없다.) 그렇기에 나와 동등하거나 나보다 큰 권력을 지닌 사람 앞에서 나 역시 늘 틀린 사람이 된다.(진짜 내가 틀렸을 수도 있다.)
이렇게 권력과 상황에 따라 다르고, 옳고 그름이 결정되는 환경에서 업무적으로 자신이 틀렸을 때 그것을 인정하고 책임지는 사람은 많지 않다. 나 자신부터도 혹시라도 내 잘못을 인정하게 될 때 책임져야 할 부분에 대해 먼저 걱정이 되기도 하고 내가 감당할 수준의 책임인지도 잘 가늠이 안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또한 내가 책임질 부분과는 달리 회사 내에서 다른 불이익을 감수해야 할 경우까지도 생각해봐야 한다.
그러나 회사 내에서 크게 책임을 져야 하는 정도까지의 큰일이 꼭 아니어도 업무상 의견의 충돌,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이해의 충돌에 있어 분명히 잘잘못을 짚고 넘어가야 할 때가 있다. 그럴 때 자신이 틀렸음을 인정한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때론 이것을 단순히 관점의 차이로 바꿔 대충 넘어가려 하기도 한다. 그러나 누구나 속으로는 알고 있다. 관점이 다른 것과 일적으로 틀린 것은 분명 다르다는 것쯤은 대충 넘어가려는 자신조차도 알고 있다.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어려운 이유는 그것이 자신의 감정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내가 틀렸다는 인정과 자기비판은 스스로를 부끄럽게 느끼게 하고 괴로운 감정을 갖게 한다.
그러나 자기비판이 괴롭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필요한 행위이다.
때로 자신이 틀렸다는 것에 자존심이 상해 스스로 상처를 받고 오히려 다른 사람들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리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분노를 퍼부으면서 그들의 두려움, 공포, 좌절, 반항심 등을 이용해 자신이 틀렸음에도 그들이 자신을 존중하게 하기 위한 잘못된 방법을 시도한다. 결국 그들은 주변에 아무도 남지 않게 되거나 그들을 공격할 타이밍을 보고 있을 적들만이 그들을 주시하고 있게 될 것이다.
잘못된 일에 있어서 다른 사람을 탓하는 것은 쉽다. 그것은 내가 책임져야 할 부담보다 남을 탓하는 부담이 가볍기 때문이다. 그저 자신에게 쏘아진 화살을 다른 사람에게로 살짝 돌리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태도를 보일 수 있다. 그저 그 일에 대해 냉소적으로 바라보거나 비판함으로써 오히려 자신을 현명한 것처럼 보이게 꾸밀 수 있다. 때로 자기 암시가 지나쳐 자기 자신조차 속아 넘어가기도 한다.
사람들은 자신의 전문 분야가 아닌 것에서는 놀랄 만큼 무지하다. 어쩌면 일에 일부분만 알면서 전체를 아는 척할 때도 많다. 그리고 진짜 알고 있다고 착각하기도 한다. 자신의 무지를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자신만만하게 다른 사람을 지적하기도 한다. 자신이 문제가 되는 일에 대해서 무지하거나 잘못 알고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의 의견이 옳다고 우길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무지와 불평, 비난, 똥고집으로 결국 속아 넘어지는 것은 자신뿐이다. 자기 자신에게 스스로 다리를 걸어 넘어뜨리는 것과 같다. 이런 사람은 결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부끄러움조차 스스로의 몫이 아니게 되어버린다.
반대로 사람이 자기 스스로 잘못에 대해 책임지고자 할 때가 바로 크게 성장할 수 있는 때라고 한다. 자신의 잘못을 숨기고 내 욕망에 따라 행동하고 싶어 할 때 그 마음을 억누르고 잘못을 바로잡으려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잘못된 일을 바로잡는 과정에서 뼈아픈 경험을 기억하고 다시는 이런 일을 만들지 않기 위해 앞으로 더 노력을 기울일 것이 분명할 것이다. 그것은 개인에게도 조직에게도 좋은 일이다.
내가 지금 틀린 것을 인정한다고 해서 내가 틀린 것이 박제되어 영원히 남는 것은 아니다. 나의 흑역사가 어쩌면 나의 성공 스토리의 밑거름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