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아웃

나를 갈아 넣은 결과

by zejebell

나는 31살에 업무에 있어서 더 높이 오를 준비가 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직장에서 돈을 적게 받나 많이 받나 내가 받을 스트레스는 정해져 있다고 생각했고 그럴 바에는 돈이나 많이 받자는 나름의 계산이 있었다. 그러나 업무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잘못 계산한 나는 33살에 번아웃을 맞이했다. 그때는 번아웃이란 말도 생소한 때였다. 나는 갑자기 탈진한 느낌에 당황스러웠고 무엇보다 일을 할 수가 없었다. 더 이상 일할 힘도 의지도 없었고 건강도 점점 나빠졌다. 결국 34살이 되기 전에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퇴사를 결정했다.


처음 입사해서 일을 배우기 시작했을 때 성공하기 위해서는 무조건 열심히 해야 한다는 직장 내 분위기가 있었다. 근면성실이란 말은 직장에서 무엇보다 고귀한 가치였다. 남들과 똑같이 일하면 성공할 수 없다는 말을 수없이 들었다. 또한 나를 대신할 사람은 많다라거나 내가 아니더라도 회사는 아무 문제가 없다는 암묵적인 분위기 속에 일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누가 더 업무에 자신을 갈아 넣고 있는지를 직장에 잘 보이기 위해 노력하는 식이었다. 번아웃이란 단어는 그때 나와 아무런 상관도 없었고 그런 것이 존재하는지 알지도 못했다. 직장에서, 업무에서 인정받는 것이 목표였다. 운이 좋다면 위로 올라가 능력을 인정받고 동시에 더 많은 연봉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고작 그 정도가 내가 생각하는 성공의 기준이었다.


"번아웃은 노동자의 인간성을 존중하지 못한 윤리적 실패의 결과물이다."

<번아웃의 종말/조나단 말레식>


일을 통해 성장하고 자신의 꿈을 성취하면서 건강한 사회의 일원으로서 사회에 기여하면서 살아간다는(중학교 사회시간에 배웠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것에 얼마나 많은 현재의 사람들이 공감할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자신의 일에 전혀 아무런 애착이 없다면 그것은 그것대로 불행한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일에 너무 매달려 자신의 한계를 무시할 수밖에 없다면 그것 또한 자신에게는 불행한 일이다.


문제는 왜 우리가 우리 자신의 한계를 무시할 정도로 업무에 매달려야만 하는가이다. 이것은 단순히 개인적인 문제로 치부할 수만은 없는 점이 분명히 있다. 때때로 아무리 내 능력껏 일해도 부족한 것 같은 느낌에 일부러 일에 자신을 구겨 넣는 것 같을 때도 있고 반대로 직장에서 내가 일한 만큼 성과로 돌아오지 않을 때도 있다. 혹시 위에서 자신에게 어떤 문제를 발견하고 있지는 않는지 걱정이 앞서기도 한다. 그러나 가장 고민이 되는 것은 직장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문제를 직장 안의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지 않고 (어쩌면 회사에서 모르게) 스스로 해결해 나가야만 한다는 점이다.


직장에서 받는 압박감과 과중한 업무, 스트레스, 인간관계 문제 등은 자신의 컨트롤할 수 있는 한계를 벗어나 버리게 되면(직장을 그만두지 않는 한) 심리적, 신체적 증상으로 나타나게 된다. 문제가 직장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 문제를 노동자 개인이 스스로, 회사 모르게 해결해 나가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노동자를 생각하는 회사는 아직 본 적이 없다.(내 시야가 좁은 탓일 것이다.) 노동자, 직원들은 회사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필요 도구이다. 물론, 이 원리로 사회가 돌아가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우리가 꿈의 직장이라고 부르는 그런 곳 역시 최고의 성과를 얻기 위해 노동자들을 좀 더 세련된 방식으로 쥐어짜는 것일 뿐이다.


성공한 사람들(CEO 혹은 어떤 위치, 전문가, 부를 이룬 사람들)은 자신은 일과 생활을 구별하지 않고 한동안 일에 계속 집중해 왔음을, 그것이 성공의 비결이라 이야기한다. 최근에도 이런 이야기를 뉴스를 통해 들었다. 어떤 CEO가 워라밸을 추구해서는 결코 성공에 이룰 수 없음을 강조하며 자신이 얼마나 업무에 시간을 많이 투자해서 성공에 이르렀는지 이야기하며 워라밸과 복지, 근무시간에 대해 불만을 표시하며 많은 노동자들을 잘랐다. 그러나 성공했다는 사람들은 그들의 환경과 상황이 바뀌었음에도 여전히 일이 우선인가? 그들은 성공하기 전 과거 5년 동안 전혀 쉬지 않고 일만 했을까? 10년 동안?, 20년 동안? 성공한 후에도 계속해서 쉬지 않고 일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여전히 삶의 균형은 성공한 이후에만 논의할 수 있는 것일까? 그들이 생각하는 성공에 다다르지 못한 노동자들은 회사로부터 존중받는 것이 어려운 일인 것일까?


번아웃되기 전에 내가 회사로부터 업무적으로 충분히 존중받고 있다고 생각했다면 회사를 그만두지 않을 수 있었을까? 물론 과거를 가정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내가 아무리 열심히 일하고 있다고 회사에 호소할지라도 나의 효율성이 그들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면 회사의 입장에서 나는 잘리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번아웃이 된 직원은 효율성이 떨어진다. 그런 직원들은 자르고 다시 새 직원을 뽑아 교육시키거나 적응이 될 때까지 시간을 들여 다시 생산성을 높이는 것이 더 경제적인 것일지는 잘 모르겠다.


하루아침에 잿더미가 되어버렸다는 말이 있지만 늘 그렇듯이 무언가를 한순간에 잿더미로 만드는 것에 시작은 있는 법이다. 번아웃에도 시작이 있다. 자신을 너무 몰아붙이는 것을 일을 잘하고 있는 것이라 착각하면 안 된다. 과중한 업무를 자신의 능력이 높기 때문이라고 착각해서도 안된다. 회사가, 조직이, 사회가 아직은 번아웃을 개인의 문제로만 치부하고 잘못된 회사 내 문화를 바꿀 생각이 없는 한(노동자를 좀 더 존중해 주지 않는 한) 자기 스스로 자신을 지켜야만 한다.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은 칭찬받아 마땅한 일이지만 일에 매몰되어 버리는 것은 나에게 좋은 일이 아니다. 가장 유능하고 빛날 수 있는 시간이 자기 치유의 시간으로 바뀔 수 있다.


일은 내가 아니다. 일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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