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아주소서
한없이 가벼운 조언과 첨언, 섣부른 판단과 유행 혹은 다수에 따라 손바닥 뒤집 듯 순식간에 뒤집어지는 의견들은 비단 직장 생활에서 뿐만 아니라 사회에 전반적인 분위기 같아 보이기도 한다. 그래도 조금 더 가까이 우리의 주변부터 살펴보자면 성급하게 조언하는 사람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조언이 진짜 조언이 될 수도 있지만 대부분은 조언을 가장한 '참견', '짜증', '고나리'-인터넷 게시판 따위에서, 지나치게 아는 체하거나 이래라저래라 한다는 뜻으로 쓰는 말. '관리'를 자판으로 빠르게 치면서 생긴 오타에서 비롯되었다.(한국어 사전)- 그리고 '지적질'에 가깝다.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 내가 추구하는 가치, 내가 원하는 그 무엇이 다른 사람들도 그러하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이미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특히, 일하기 위해 오는 직장에서 자신의 온전한 가치관을 드러내는 사람은 없다. 나부터도 그렇다. 내가 보는 그 사람의 모습이 그 사람의 전부가 아니라는 뜻이다. 이 쉬운 진리를 많은 사람들이 알고는 있지만 또 많은 사람들이 거의 잊고 지낸다. 다들 비슷한 생각을 하고 산다고 착각한다. 물론, 비슷한 지점도 있을 수 있지만 모든 사람은 조금씩, 많이 다 다르다. 세상에 내 마음과 같은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 부모님도 나를 모르겠다고 하신다. 내 자녀도 내 마음 같지 않다.
내 자녀도 내 마음 같지 않고, 나를 낳아준 부모님도 내 속을 모르는데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 알맞은 조언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대부분 조언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착각하는 부분은 그 사람은 틀리고 내가 맞다고 생각하는 것에 있다. 내가 가진 생각의 기준으로 그 사람에 대한 성급한 판단을 먼저 해버리는 것이다. 어쩌면 평소 그 사람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었을 수도 있다. 그랬기에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 그에게 조언하고 싶어 입이 미치도록 달싹거리는 것일 수도 있다. 아니면 그 사람을 좋게 봤기 때문에 특별히 내가 조언을 해줌으로써 도움을 주고 싶었을 수도 있다. 그 사람이 나의 조언에 대해 진심으로 고마워할 것이라는 상상을 하면서. 그 사람이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왜 일을 저런 방식으로 처리하는지? 내 생각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더 좋은 방법이 있는데 왜 이렇게 하지 않는지 조언에 따르지 않는 그 사람이 어리석어 보이면서도 고집만 센 밉상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내가 모르는 그 사람만의 상황이 있을 수도 있다. 그렇게 내가 보고 있는 그 사람의 겉으로 나타난 부분만으로 그 사람의 상황을 판단해 버리는 것이다. 그렇게 일을 처리한 이유가, 그렇게 행동한 이유가 나는 모르지만 그 사람에게는 그렇게 일을 처리한 자신만의 분명한 기준이 있을 수 있는 것이다. 그 사람의 입장을 한 번쯤은 들어볼 가치가 있다는 판단이 든다면 조언을 하기 전 그의 입장과 이유를 들어볼 수 있다. 물론 직장은 그렇게 여유가 있는 곳은 아니라는 반박이 나올 수 있다. 직장이란 곳은 한정된 시간 내에 한정된 정보와 자원으로 빠르게 판단하여 일을 처리해야 할 때가 더 많기 때문이다. 그러니 어쩌면 급박한 상황에서 내가 건넨 조언은 더 이상 조언이 아니라 명령이 되어버릴 수도 있다.
현대 사회는 많은 가치가 나타나고 빠르게 확산되며 사라지기도 한다. 내가 어렸을 때 배웠던 가치들과는 상당 부분이 다르게 바뀌었다. 나와 다른 사람의 가치관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예의를 지키며 안전하게 상대방과 대화를 하기 위해서는 새롭게 배워야 할 것들도 많이 있다. '올바른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 시대인 것이다. 예를 들어 나도 모르게 성차별적인 느낌을 주는 단어를 사용하지는 않는지? 인종차별적인 대화를 무심코 하고 있지는 않는지? 다른 사람의 자율성을 무시하는 말을 하지 않는지? 칭찬이라고 건넨 말이 사실은 외모지향적인 가치를 전달하는 말은 아닌지? 조언이라고 건넨 말이 상대방의 상황도 제대로 모르고 그에게 상처를 주는 말은 아니었는지?
한 마디의 대화에서도 신경 써야 할 것들이 늘어가고 있는 요즘, 하물며 섣부른 조언이라니...
나 자신이 조언이 아니라 하면서도 과거의 이야기를 주저리주저리 늘어놓고 있는 모습을 문득 발견하게 될 때마다 놀라서 말을 멈추곤 한다. 오히려 무신경하게 아무 말이나 조언이라 내뱉고 그것이 쓰레기 인 줄도 모르는 사람들을 반면교사 삼아서 언제나 자신의 입단속을 하는데 긴장을 늦추지 말아야 한다.
그러니 어쩌면 이 까칠한 작은 사회, 직장, 조직에서 필요로 하는 것은 나의 조언이 아니다. 그보다 다른 사람들이 저지르는 어리석은 실수에 대한 너그러운 마음, 다른 사람의 입장에 서볼 수 있는 공감 능력, 다른 사람에게 조언하고 싶을 때 참을 수 있는 인내심, 화가 날 때 잘 누그러뜨릴 수 있는 분노 조절 능력 등이 더욱더 중요할 것이다.
내 마음의 그릇이 커졌을 때, 다른 사람에 대한 연민을 비로소 느낄 수 있게 되었을 때, 누군가 나에게 지혜를 빌려달라 진심으로 부탁할 그때쯤이면 조언이란 것이 가능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