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 존엄한 인간
존엄이란 예전에는 나라에서 오직 한 사람뿐인 임금의 지위를 이르던 말이었지만 현재는 인간이라면 누구라도 그 존엄과 권리에 있어 동등하게 존중받아야 마땅함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모르는 사람이 있을지도.) 적어도 자신의 존엄성이 무시당한다고 생각되는 순간 기분 좋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더 나아가 화를 내도 이상하지 않다.
그럼에도 더 속이 상하는 일은 자신 스스로가 자신의 존엄성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신을 함부로 대하는 것이다. 누구나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사랑받으며, 존중하고 존중받는 그런 가치를 인정받는 삶을 살길 원한다. 그러나 삶을 살면서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와 이해관계 속에서 몇 번이고 방향 감각을 상실하며 길을 헤매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하늘의 북극성처럼 방향을 알려줄 무언가가 우리에게는 필요하다. 여러 가지 나름대로의 기준이 있겠지만 가장 염두에 두어야 하는 것 중 하나가 자신이 가고자 하는 길이 바로 인간의 존엄(자신의 존엄)을 지킬 수 있는 방향인지 아닌지 판단해 보는 것이다.
우리의 삶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계속하여 바뀌고 변하는 자신의 마음과 방향, 생각, 가치 등으로 인해 발전하기도 하고 퇴보하기도 하게 된다. 그럴 때마다 북극성 같은 그 무엇이 확실한 판단을 하게 도와주거나 누군가가 대신 결정해 주길 바랄 수도 있다. 그러나 확실한 것 한 가지는 자신의 존엄을 지키기 위한 최선의 선택이란 것은 자신이 스스로 정한 가치와 기준에 기꺼이 책임을 지려는 자세를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때로 정말로 힘든 상황에서 다른 사람을 탓하거나 환경을 탓할 수도 있다. 대부분 사람들은 그렇게 탓하며 살아간다. 그 사람들은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 자신의 존엄을 스스로 지키고 있는 것이라 착각하고 있거나 다른 사람의 존엄을 지키는 것보다 자기 자신의 이익이 우선되는 가치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혹은 다른 사람을 생각할 여유 따윈 없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힘들 때마다 그렇게 자신이 져야 할 책임을 다른 곳으로 돌려버리게 되면 자신의 가치를 증명할 기회를 점점 놓치게 될 뿐만 아니라 자신의 존엄 또한 결국 지키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반대로 우리 역시 다른 사람의 평가에서 그리 자유롭지 못하다. 권위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로부터 배척당하거나 그들의 눈 밖에 벗어나는 것을 두려워하기도 한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탓한다는 것은 우리의 존엄에 크나큰 손상을 주기 때문이다. 어쩌면 스스로도 자신의 가치를 의심하게 되기도 하고 수치심을 느끼게 되기도 한다. 그렇기에 속으로는 다른 생각과 기준을 가지고 있더라도 그들에게 솔직하게 표현하기가 어렵다. 두려움이 크면 클수록 자신의 가치에 맞지 않는 행동과 말을 하게 됨으로써 마찬가지로 자신의 존엄을 지키지 못하게 된다.
세상에 자신이 하고 싶은 말과 행동을 다 하며 사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 만은 적어도 최소한의 자신의 가치, 양심을 버리게 되는 선택을 강요받는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당연하다. 자기 스스로 자신이 원하는 삶의 방향을 결정해 나가는 것은 자신의 존엄을 지키기 위한 것뿐만 아니라 자신의 행복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지는 삶은 당연해 보이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현재의 사회에서 책임지는 사람, 조직이 많이 보이지 않는 것이 그 이유이다. 어렵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존엄이나 자신의 존엄에 대해 눈감아 버리는 것이, 바로 눈앞의 이익에 좀 더 집중하는 것이 훨씬 쉬운 길처럼 보인다. 하지만 삶이란 늘 그렇듯이 대가가 없는 것이라곤 존재하지 않는다. 보기에는 쉬운 길처럼 보여도 후에는 결과에 따른 그 무게에 한없이 후회한 경험이 많다. 가치 있는 것일수록 그 무게는 더 무겁다.
우리가 내팽개친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였던 많은 가치들이 사실 살면 살수록 우리의 선택에 대한 그 대가를 지불할 것을 요구하며 시시각각 다가오는 것을 느끼며 그제야 진짜로 중요한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어렴풋이나마 깨닫게 되는 것이다. 오는 것이 있으면 가는 것이 있고 주는 것이 있으면 받는 것이 있는 것이 인생이다.
그 시기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잊어버리고 넘어가 버리는 것이지 인생에서 공짜라던가 그냥 주어지는 것 따위는 없다. 그렇기에 쉬운 길이라는 것이 사실은 존재하지 않는다. 지나고 나서 후회해도 소용이 없는 것이다. 우리의 삶에서 자신에게 진정으로 가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것은 그래서 중요하다. 그리고 그 가치를 정하는 것은 바로 나 자신이다. 그것이 자신의 존엄을 만들고 지켜낸다.
“다수는 그저 많은 숫자일 뿐, 많다고 정의가 되는 건 아니다. 적음을 무능력하다는 편견으로 뒤집어씌우는 것에 반대한다. 윽박질러도 따라가지 않겠다. 그것이 ‘도덕!’이라고 외쳐도 듣지 않겠다. 여기가 내 한계라고 한다면, 한계라는 사물을 결정하는 건 오직 나의 인식뿐이라고 가르쳐 줄 테다.”
<쇼펜하우어>
세상은 단순하지 않다. 삶도 그렇다. 이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인간으로서 존엄을 잃지 않으면서), 자신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 해야만 하는 일들이, 배워야만 하는 것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평생을 배워도 여전히 알 수 없는 것투성이다. 세상의 발전 속도를 따라잡기란 요원한 일처럼 느껴지고 삶의 복잡성 속에서 때로는 길을 잃어버리기 일쑤이다. 그래서 그런지 어려워 보이는 결정들 앞에서 누군가 대신 결정해 주길 바라기도 하고 정말 결정을 맡겨버릴 때도 있다. 또다시 쉬운 길로 빠지게 되는 것이다.
자신의 자유와 선택 의지를 포기함으로써 얻게 되는 것은 생활의 단순함에서 오는 편안함, 자신이 선택하지 않음에서 오는 책임감의 부제는 사람이 자신의 존엄성을 포기하고 얻게 되는 삶의 부스러기 같은 것이다. 당장은 생각할 필요가 없으니 고통스럽지 않을 순 있지만 곧 자신의 잘못이 무엇이었는지 깨닫게 되는 순간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뇌과학자 게랄트 휘터는 자신의 존엄성을 인식하게 된 인간은 결코 현혹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의 존엄성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자신의 가치를 인식하고 선택에 기꺼이 책임을 지려고 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다. 결코 다른 그 무엇에게도 자신의 책임을, 선택의 자유를 거기서 오는 고통을 외면하기 위해 넘기지 않는다.
점점 심해지고 있는 경쟁사회에서 그저 살아남는 것만이 우리의 목적이 아니라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같이 있어야 하는 이유이다. 우리의 인간다움을 끝까지 버리지 않는 것이 살아남는 것에 당장은 도움이 되는 것처럼 보이지 않더라도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것들을 지키며 사는 것에서 오는 자신에 대한 존엄은 결코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닌 것이다.
인생의 바다에서 길을 헤매게 되더라도 앞서 이야기했던 북극성과 같은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또한 진실로 자신의 존엄을 마주한 사람은 결코 다른 사람의 존엄을 가볍게 여기지 않을 것이다. 나의 존엄이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닌 다른 사람들의 존엄과 맞닿아 있음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수감자가 어떤 종류의 사람이 되는가 하는 것은 개인의 내적인 선택의 결과이지 수용소라는 환경의 영향이 아니라는 사실이 명백하게 드러난다. 근본적으로 어떤 사람이라도 심지어는 그렇게 척박한 환경에 있는 사람도 자기 자신이 정신적으로나 영적으로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를 선택할 수 있다는 말이다. 강제 수용소에서도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다.”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결국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정하는 것은 자신이다. 주변 환경이 어떠하든, 다른 사람이 어떤 사람이든, 자기 자신의 존엄을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은 결코 다른 사람의 존엄을 손상시키는 일을 할 수 없다. 누군가 자신의 존엄성을 해치려 할 때 그 사람은 그것을 가만두고 보지는 않을 사람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 그 결정권이 자신에게 있는 것을 알기에 어떤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힘내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