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이야기야.
유명한 심리학자가 자신이 사람을 멀리하는 기준을 말한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우리가 멀리 해야만 하는 사람 중 한 명은 다른 사람의 배려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심지어 그것을 별 것도 아닌 것처럼 취급하는 특성을 가진 사람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심각한 사람은 배려를 당연히 여기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아예 그 배려를 배려라 생각하지도 않고 그냥 잊어버리는 사람이다. 그에게는 다른 사람의 배려가 배려라 생각하지도 못하고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일이었을 것이다. 이런 사람들의 특징은 모든 것이 자신만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정도까지는 아니어도 친구 사이에, 지인들 사이에 유독 양보하는 것을 꺼리고 항상 자신이 더 존중받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들은 도대체 왜 그러는 것일까?
그렇지 않아도 살기 힘든 팍팍한 세상이다. 눈 떠보면 달라져 있는 세상에 적응하며 살아나가는 것만으로도 하루하루가 힘들다. 이럴 때일수록 우린 서로서로 좋은 에너지를 주고받을 수 있는 그 누군가가 필요하다. 누구나 방전될 때가 있고 자신의 배터리가 나가면 대신 충전해 주거나 자신의 충전기를 빌려줄 그 누군가가 있어야만 한다. 우리 자신만이 계속해서 다른 누군가의 충전기가 되어 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방적으로 우리의 배려를 받아내려는, 에너지를 빼앗아 버리는 그들은 우리의 배려를 당연히 여기면서 배려라는 생각조차 하지 않고 너무나 당연히 배려받은 사실조차 쉽게 잊어버린다. 그들에게는 우리의 배려는 기억할 가치조차 없는 일인 것이다. 그들이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거나 혹은 불쌍해 보인다 하더라도(아무도 곁에 없기에) 우리 역시 더 이상 그들 옆에 있어서는 안 된다.(아마도 그래서 곁에 아무도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평소에 책임감이 높고 배려심이 많은 사람은 어려운 일이 앞에 닥쳤을 때 그들과는 확연히 다른 행동을 한다. 주변을 먼저 둘러보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의 배려심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자신의 이익도 물론 고려하겠지만 배려심이 있는 사람은 자신의 이익만을 고려하지 않는다. 결과는 별 차이가 없을지라도 과정에서만큼은 큰 차이가 있다.
피곤한데 내 자리를 양보하는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는 것은 아니다.
<배려 없는 사람 특징>
함께 있을 때 무력한 느낌이 든다.
필요할 때, 급할 때만 연락이 온다.
자신이 잘못했던 것은 인정하지 않고 우리의 잘못만 계속 기억해서 이야기한다.
우리를 그들의 들러리로 만든다.
모든 대화를 자신에게로 끌어온다.
공감력이 뛰어난 사람 옆에 존재한다.
사람들과의 관계에 있어 항상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상대와 약간의 갈등의 소지가 있을 때 보통 사람들은 이 문제가 배려하거나 양보할 수 있는 것인지 속으로 생각해본다. 그리고 그것이 가능하다면 충분히 배려할 마음을 가지는 것이 대부분일 것이다. 물론, 더 높은 경지의 사람은 배려에 대한 신념을 가지고 실천하기도 한다. 평범한 우리는 배려할 때도 있고 받을 때도 있다. 그렇게 보통은 다른 사람들과 서로서로 어울려 살아가는 것이다.
이솝 우화에 나오는 낙타와 상인이 사막을 건너는 이야기를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것이다. 낮에는 더운 사막이지만 저녁에 사막은 몹시 추워진다. 그래서 여행하는 사람들은 밤에 천막을 치고 꼭 잠그고 잔다. 그러나 밖에서 자는 낙타는 너무 추워 안에 자는 상인에게 머리만 넣고 잘 수 있게 배려해 달라 부탁한다. 상인은 낙타를 불쌍히 여겨 배려했지만 낙타의 요구는 계속된다. 머리에서 시작해서 앞다리, 가슴, 몸, 엉덩이... 이런 식으로 낙타는 천막을 차지해버리고 오히려 상인을 천막에서 내쫓아버린다. 과연 낙타가 똑똑한 것일까? 상인이 멍청한 것일까?
적어도 배려는 받는 사람이 배려라는 것을 아는 정도의 수준의 사람에게만 베푸는 것으로 기준을 세워보는 것도 방법이다.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는 정말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일이니까.
우리는 허영심에 가득 찬 나머지 심지어 우리가 배려하지 않는 사람의 의견까지도 배려한다.
- 마리 폰 에브너 에센바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