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의 기운을 빼앗고 정신을 혼미하게 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어디서나 존재하기 마련이다.
과거 내가 같이 일했던 사람 중에 이런 사람이 있었다. (심지어 상사였다.) 그와 같이 일하는 시간은 1년 정도였지만 내 정신은 누더기가 되어버렸다. 상사였음에도 모든 결정을 내게 미뤘고 일이 조금이라도 틀어질라 치면 그 책임을 나에게 전가했다. 또한 일이 잘 되었을 때조차 이것이 잘못될 것을 걱정하며 나를 들들 볶았다. 심지어 나와 둘이 있을 때마다 다른 직원들의 흉을 보았다. 정말 같이 있기 싫은 사람이었다. 그와 같이 일한 1년 동안 난 그가 행복해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나 역시 행복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를 악물고 버텼다. 언제나 열심히 일해도 모든 잘못이 내 탓이 되어버리는 환경에서 일한다는 것은 참으로 피곤하고 지치며 불행한 일이었다. 한 번도 일로써 존중받지 못했던 나는 1년 뒤 퇴사를 했다. 그런데 나에게 같이 일했던 그 상사가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냐고 묻는다면 그는 그리 나쁜 사람은 아니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는 그저 나약한 사람이었을 뿐이다. 그리고 그런 그에게 휘둘릴 수밖에 없던 나 역시 나약한 사람이었다.
전통적이고 보수적이며 우리가 안정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사회, 조직에서 대부분 개개인의 역할은 제한적이고 그 역할에 대한 기대가 고정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조직, 사회에서 개인 선택의 자율성이란 부분에서 그 기대 수준이 낮을 수밖에 없다. 외부의 부당함에 대해 정당한 개인의 권리를 주장한다는 것 자체가 그 조직, 사회에서 그 근간을 위협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조직, 사회일수록 개인들의 자기중심적인 생각은 위험하게 본다. 그렇기에 그들은 애국심이나 애사심, 그래도 안되면 더 나아가 인류애까지 동원해 개인의 자율성을 어느 정도 제한할 수 있길 바라고 그런 행동을 마치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한, 숭고한 그 무엇으로 우상화시키기도 한다. 물론 다른 이들을 위한 희생과 봉사, 배려 등 그런 고귀한 마음과 행동을 구시대적인 사고로만 치부하고 싶지는 않다. 그런 정신과 행동이 없었다면 인류는 발전해 올 수 없었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런 행동은 적어도 스스로의 마음에서 자연스럽게 우러나와야 하는 것이지 그런 것이 강요되는 분위기라면 사람을 도구로써만 보는 그것과 다르지 않다.
그 어떤 사회이더라도 개인이 인간으로서 존중받아만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이 당연한 사실은 오늘날의 현실에서도 당연하게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세상에서 인간의 삶이란 생각보다 복잡하다. 여러 이해관계들과 사람들의 감정들, 권력과 욕망, 먹고사는 문제 등은 인간으로서 존중보다 앞서 있을 때가 대부분이다. 이런 문제들로 우리가 정작 잊고 있는 것은 나 자신조차 스스로를 충분히 존중하지 않을 때가 많다는 것이다.
앞에서 이야기했던 나와 직장 상사와의 문제에서 내가 나를 약자의 위치로만 두었던 것을, 나 자신의 존중받아야 되는 권리를 그냥 버려버렸던 것을 후회한다. 자기애가 너무 강한 것도 문제이지만 없는 것도 문제이다. 다른 사람보다 더 나은 대접을 받으려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동등하게는 존중받을 권리를 너무 쉽게 다른 사람에게 넘겨 버리지는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세상에서 사회가 비약적인 발전을 이룩할 때 그 발전이 인류에게 그냥 주어진 시기는 없다. 누군가의 희생, 투쟁, 피가 그 밑바탕에는 흐르고 있는 것이다.
우리 자신 역시 마찬가지이다. 우리의 권리를 위해 누군가 우리를 대신해 싸워주기를 바라는가? 그 투쟁이 설혹 자신의 그 어떤 희생 없이 이루어져서 다행이라 안심하는 마음을 가진다는 것은 무임승차 후 걸리지 않았다고 좋아하는 사람의 양심과 다를 바 없다. 무엇이든 가치 있는 것은 그것대로의 값을 치러야 하는 것이 세상의 이치이다.
자신의 양심이 존중받기 위해서는 자신이 스스로를 존중할 수 있는 마음을 먼저 가져야만 한다. 자신을 소중히 여길 줄 알고 자신의 정당한 권리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자신이 반드시 지켜야 할 '무엇'이 있다면 그것을 자신 스스로도 존중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어제와 오늘이 다르게 변한다고 해도 자신의 '무엇'이 지킬만한 가치가 있는지 스스로 알고 있어야 한다. 우리는 그 '무엇'을 양심 또는 자시만의 기준이라 할 수 있다.
군주의 권력남용과 그에게 노출된 권력의 유혹에 굴복하는 일을 막아줄 유일한 것은 양심이다.
<양심이란 무엇인가/마틴 반크레벨들/니케북스>
우리가 스스로를 존중하고 다른 이로부터 존중받기 위해 노력할 수 있는 것은 우리에게 지켜야 할 '양심', 또는 '기준'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불합리한 상황에서 우리의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면 우리는 존중받는 삶을 앞으로 살기 어려울 가능성이 크다. 약자들은 대부분 힘이 없기에 약자라고 불린다. 우리는 대부분 약자이다. 그러나 그런 힘이 없다고 존중받을 가치가 없다거나 그럴 가능성이 없다고 스스로 받아들여 버리면 안 된다. 우리가 우리의 작은 목소리라도 낼만큼의 용기를 가진다면 그 누구도 우리를 존중할 가치가 있는지에 대해 적어도 생각해볼 여지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경험들이 쌓여 사회가 좀 더 앞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세상은 여전히 불평등할 것이고 우리가 이렇게 행동한다 하더라도 당장 달라지는 것이 없어 힘이 빠질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그마저도 노력하지 않는다면 바뀔 가능성은 제로로 수렴하게 된다.
지금의 시대는 혐오의 시대라 말할 수 있다. 세대, 성별, 빈부, 장애 이런 것은 그냥 나누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나누는 것이고 그저 사람들이 사람들을 미워하는데 붙인 이름들일뿐이다. 그러나 그 밑바닥을 들여다보면 미움을 나누는 사람들 각자 자신이 충분히 존중 맡지 못하고 있다는 울분이 깔려있음을 알 수 있다.
"존중은 누구나 누릴 자격이 있어요. 그리고 존중은 누구나 가진 힘이기도 하지요. 하지만 이 힘을 무시하면 두려움에 빠진 사람이 되고, 이 힘을 지나치게 과시하면 무례한 사람이 되어 버려요. 그럼 절대로 다른 사람에게 존중받지 못할 거예요." <나는 너를 존중해/ 소피아 힐>
먼저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존중받을만한 가치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누군가가 함부로 대하도록 놔두어도 되는 그런 사람이 아님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마음으로 세상에 모든 사람들을 똑같이 존중해야 만한다. 나 역시 세상에 가장 약한 사람에게조차 함부로 할 권리가 없음을 알아야만 할 것이다.